지역에서 본 세상

우리는 왜 논에는 벼만 자란다고 여길까?

김훤주 2013. 6. 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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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들판은 모내기철입니다. 갓 심긴 모가 옅은 초록색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아직 모를 심지 않은 논도 남아 있습니다. 물은 봇도랑을 흘러다니고 여기저기 논을 안팎으로 넘나들면서 곳곳을 적셔 줍니다.

 

1. 논이 사람에게 과연 무엇일까?

 

이런 논이 우리 사람에게 무엇일까요? 식량인 쌀을 생산해 주는 일만 할까요? 아닙니다. 닥치는대로 꼽아보겠습니다. 해마다 이렇습니다. 홍수 저장 36억t, 기온 떨어지는 효과를 불러오는 수증기 증발 효과 8070만t, 토양 쓸려 없어짐 방지 효과 2596t, 오염 정화 효과 5조9600억원이랍니다.

 

또 이산화탄소 제거 효과 4178억원, 산소 공급 효과 5조2795억원, 지하수 머금는 효과 157억5000만t 등입니다. 그리고 숱한 야생 동물과 식물의 삶터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논이 현실에서는 천덕꾸러기가 돼 있습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그에 걸맞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리 잘린 황새 이야기를 동화로 만든 재일교포 3세 김황 작가.

 

이런 가운데 작지만 아주 중요한 행사가 우리 경남에서 열렸습니다. 논의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짚어보는 행사였습니다. 논을 우리가 중요한 교육 현장이자 놀이터로 삼으면 좋겠다는 행사였습니다. 6월 17일 저녁 MBC경남의 라디오광장 세상읽기에서 이를 한 번 짚어봤습니다.

 

2. 논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숨결을 찾아

 

서수진 아나운서 : 지난 주 13일과 14일 창녕군 부곡면 일대에서 재미있는 행사가 열렸다지요? 논이 과연 무엇일까 알아보는 나름 중요한 행사였다고 하는데요.

 

김황 작가의 동화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연극 표지.

 그림연극 소개 화면.

 

김훤주 :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대표이사 고재윤)에서 주최했는데요, ‘제2차 논습지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한·일 지자체 네트워크 회의’였습니다. ‘논의 생물다양성 향상 10년 프로젝트 - 지자체와 NGO의 책무’가 주제였습니다.

 

일본 사도시청의 ‘따오기와 사람이 공존하는 사도섬 만들기’, 창녕군청의 ‘따오기 복원 현황과 야생 복귀 계획’ 등이 발표됐습니다. 이튿날에는 ‘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숨결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일본에서 온 세 사람이 강연을 하고 이어서 현장을 찾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2012년 4월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주관했던 한·일 지자체 논습지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세미나에서 ‘생명을 살리는 농업의 촉진과 습지생태계로서 복원을 위한 한·일 민·관 공동선언’을 채택한 데 따른 것입니다.

 

진 : 그렇군요. 첫째 날이 강의 발표 위주였던 반면 둘째 날은 그렇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주 : 그래서인지 첫날은 옷을 제대로 차려 입은 사람이 많았던 반면 이튿날은 옷차림이 가벼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여자분들이 많았고요. 이 날 발표는 모두 일본에서 온 분들이 했는데요. 먼저 재일교포 3세인 김황 동화작가가 능숙한 우리말로 '동화 속에서 본 논의 생명'을 말해줬습니다.

 

3. 황새나 따오기가 사라진 까닭은?

 

진 : 재일교포 3세라면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일본에 건너간 셈인데, 2세만 돼도 우리말을 잘 못하는 처지에서 보면 아주 특별한 노력을 했겠어요.

 

주 : 김황 작가는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갖고 동화를 만들었는데, 그 동화가 나중에는 일본 초등학생 윤리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도 바로 그와 관련돼 있었습니다.

 

진 : 재일교포 3세의 동화 작품이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고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지는데요.

 

초등학교 윤리 교재로 채택됐다는 소개.

 

주 : 1970년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황새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한 마리가 부리가 아래위로 모두 잘려 있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들이 관찰을 맡았는데 제대로 먹이를 먹지 못하니까 나날이 말라갔다고 합니다.

 

진 : 진짜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어른이 모두 결정하고 말았을 텐데요.

 

주 : 어른들이 나서서 부리가 잘린 황새를 데려갔습니다. 데려가서는 암컷인 이 황새를 결혼시키려고 나섰습니다. 첫 번째는 수컷이 내쫓아 실패했고 두 번째 성공합니다. 첫 번째는 멀쩡한 수컷이었고 두 번째는 날개를 다쳐서 날지 못하는 황새였습니다.

 

진 : 동병상련인가요?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수컷이랑 부리를 다쳐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암컷이군요.

 

주 : 동화작가 눈에 그렇게 비쳤나 봅니다. 처음 수컷은 암컷을 내쫓았지만, 두 번째 날개 다친 수컷은 암컷을 제대로 보호했다고 합니다.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괴로움이 부리를 다쳐 제대로 먹지 못하는 고달픔을 이해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랬다고 합니다.

 

4. 논이 줄어들고 제 구실도 못하게 되니까

 

진 : 그렇게 해서 어떻게 마무리가 되나요?

 

주 : 알은 해마다 낳았지만 부화는 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23년 세월이 흐른 뒤에 드디어 새끼가 태어났는데, 날지 못하는 부모를 대신해 지금도 두 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황새.

그림연극에서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하늘을 나는 장면.

 

진 : 그런데 황새가 그렇게 멸종하는 지경까지 간 까닭이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에도 예전에는 흔했다고 들었는데, 사냥꾼들 때문일까요?

 

주 : 물론 사냥꾼이 박제를 한다고 많이 잡은 까닭도 있겠지만, 근본 원인은 자연에서 찾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잡아도 자연 환경이 살기 좋다면 그렇게 짧은 기간에 씨가 마를 리는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진 : 그러면, 오늘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황새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환경이 논이었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요?

 

주 : 그렇습니다. 일본에서 부리 잘린 황새가 사람한테 발견된 곳도 바로 논이었습니다. 그리고 황새가 하루에 먹는 양이 5kg인데, 이게 미꾸라지로는 하루에 80마리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김황 작가 발표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진 : 그러니까 논이 갈수록 줄어들어 미꾸라지가 살 수 있는 근거지가 사라지는 데 더해, 농약 같은 오염물질 때문에 논이 있어도 미꾸라지는 자라지 못하는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얘기겠군요.

 

5. 논=자연환경+문화환경+사회환경+경제

 

주 : 그렇습니다. 이어서 등장한 슈사쿠 미나토라는 일본 선생님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논 교육자라고 할 수 있는데요, 1981년부터 어린이들에게 30년 넘게 논과 환경보전을 교육해 왔고, 2011년부터는 간사이대학교에서 환경교육을 하고 있다는 분이었습니다.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 미나토 선생.

 

진 : 어떤 내용이었나요? 논이라 하면 일단 물이 있을 테고, 사람의 손길이 끼쳐졌을 테고, 그리고 벼가 자라고 있고 또 요즘은 우렁이다 미꾸리다 해서 일부러 집어넣기까지 하는데, 그런 여러 생물도 있겠네요.

 

주 : 그것을 두고 미나토 선생은 자연환경과 문화환경과 사회환경과 경제의 총합이라 했습니다. 이 네 가지가 모두 논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논을 제대로 공부하면 한 나라의 자연과 문화와 사회와 경제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제대로 놀아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논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갖가지 것들을 갖고 그렇게 놀아야 논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체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논이 얼마나 줄어들었고 그 때문에 황새나 따오기 같은 것들이 살기 어려워졌고 그런 얘기는 곁가지였습니다.

 

6. 5668가지 생명과 함께하는 놀이터이면서 학교

 

5668가지 생명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논.

 

진 : 미나토 선생은 놀이 속에서 논의 값어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깨달을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겠습니다.

 

주 : 논은 사람을 기르는 장소이면서 다른 생명도 함께 키우는 공간이었습니다. 벼 문화를 키워온 장소이면서 우리 모든 생명에게 소중한 물을 머금어 주는 습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과 농업과 경제와 인간 생존이 지속 가능해지도록 하는 공간이 됩니다.

 

교육활동 과정에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 : 이어서 현장 체험도 했다고 하셨잖아요?

 

주 : 저도 이 날 함께했는데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논과 논 주위 생명체가 무려 5668가지나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나토 선생이 30년 동안 조사 연구한 결과였습니다.

 

진 : 저도 무척 놀라운데요, 그렇다면 논 체험은 바로 그렇게 무수히 많은 생명에 대한 체험이 되겠습니다.

 

행사장을 꽉 매운 사람들.

 

주 : 바탕은 그렇겠지요. 그렇게 많은 생명들이 만들어놓은 갖은 현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가장 중심은 놀라움과 기쁨이었습니다.

 

진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신다면요.

 

현장 체험 행사장 풍경.

 

주 : 일단 논에 가서 밭두렁에 앉아 3분만 들여다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많은 생물들이 요렇게 조그만 데서 꼼지락거릴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고 했습니다. 거울을 갖고 우리가 눈으로 보는 그 뒷면을 보는 것도 해 보라고 했습니다.

 

오른편에 대나무로 표적을 세워놓고 풀을 뽑아 던져 맞히는 놀이.

 

이파리 냄새를 맡고 그 주인 되는 풀을 찾아오는 놀이도 했습니다. 그밖에 풀잎으로 배를 만들어 봇도랑에 띄우거나 표적을 만들어 세워놓고 풀을 뽑아 던져 맞히는 등등 다른 많은 놀이도 소개해 줬습니다.

 

작은 통 속에 풀을 집어넣고 냄새를 맡은 뒤 그 주인 되는 풀을 찾아오는 놀이.

 바삐 찾아와 미나토 선생(오른쪽에서 세 번째 하늘색 옷을 입은 사람)에게 확인을 받습니다.

7. 진리를 몸에 새기는 훌륭한 수단이 바로 놀이

 

진 : 말하자면, 논에서 나는 모든 것을 갖고 그냥 즐겁게 놀자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주 : 맞습니다. 진리는 숫자나 문장에 있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 진리는 오로지 자기 몸에 새겨져야 진짜 진리가 되는데, 그렇게 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 놀이라는 얘기였습니다.

 

풀잎으로 배를 만들어 봇도랑 물에 띄우고 있습니다.

 돌에 물길이 막혀 풀잎배가 걸려 있습니다.

풀잎배 경주에서 1등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 풀잎배는 예쁘고 다양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른쪽 손은 미나토 선생의 것입니다.

 

진 : 저도 놀랍습니다. 논에서 사는 생물이 5668가지나 된다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해 봤습니다. 저도 틈이 나면, 일부러라도 틈을 내어서 논에 한 번 나가 봐야 하겠습니다.

 

앞이나 뒤로 손을 오무려서 귓가에 대는 등 3분 동안 듣기. 소리를 네 개밖에 듣지 못한 사람에서 열한 개나 들은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저는 헤아리지 않아서 몇 가지나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들판에서 들리는 갖은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습니다.

미나토 선생.

 

주 : 이렇게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미나토 선생은 오감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감성만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나 자연에 대한 인식 그러니까 사람들이 보통 과학이라고 하는 영역도 풍부해진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지식이 책 속 활자가 아니라 생활 속 경험으로 이어지다 보니까 더욱 구체적으로 남는다고도 했습니다.

 

거울로 비춰 평소 못보던 뒷모습 보기도 했습니다. 그 느낌을 이렇게 한 낱말로 나타내 봤습니다. 싹이 트는 콩의 아래쪽 모습이 거울에 비쳐 있습니다.

논물 속에 이렇게 거울을 담갔더니 논이 아니라 하늘에 모를 심은 것 같은 느낌이었답니다. 여기 거울에는 '하늘모'라는 낱말이 적혔습니다.

 

진 : 놀이가 감성뿐 아니라 지식까지도 늘려준다는 얘기인데요, 이 얘기 듣는 학부모들은 아이들 데리고 하루라도 빨리 벼가 자라는 논으로 나가봐야 하겠습니다.

 

주 : 그렇습니다. 참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좀 버려도 좋을 옷차림이 좋겠지요. 저도 아이들이랑 함께 나간 적이 있는데, 돌아올 때 오늘 여덟 가지 새 울음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그렇게 섬세하게 구분해 내는 힘을 자연 체험이 길러주더라고요.

 

 

진 : 재미있는 체험 사례네요. 그런 얘기를 좀 더 자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8. 우리 경남과 논의 각별한 인연

 

논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하나를 찾아 그리는 놀이.

 

주 : 논은 우리 경남하고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논이 습지로 인정된 때가 2008년인데요, 그렇게 인정한 회의가 바로 그해 11월 경남에서 열린 제10차람사르협약당사국총회였습니다.

플랑크톤 개구리 황새 같은 열 가지 정도 생명과 물이 맺고 있는 먹고 먹히는 관계를 따라 고무줄로 잇는 놀이입니다.

 

당시 찬반 논란도 있었는데 어쨌거나 세계 곳곳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이 논을 습지로 인정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경남 사람들이 이런 논 습지 체험을 좀더 많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진 : 예, 오늘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을 갖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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