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사태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개성공단은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적어도 지금 남북관계에서는, 개성공단보다 중요한 존재는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이 폐쇄를 향해 끌려가고 있습니다.
4월 29일 MBC경남 라디오광장, 제가 나가서 하는 ‘세상 읽기’에서는, 그래서 개성공단 문제를 다뤘습니다. 충분히 깊이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준비는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서수진 아나운서랑 함께 얘기를 주고받았지요.
서수진 : 오늘은 무슨 주제로 얘기를 해 볼까요?
김훤주 : 남북 합작으로 건설한 개성공단 문제를 갖고 한 번 얘기해 보죠.
1. 남북 협력과 공동발전의 터전 개성공단
진 : 개성공단, 북한이 4월 3일 통행제한을 한 이래 남북이 공방을 주고받다 남쪽이 체류인원 전원 철수를 결정했네요.
주 : 마지막까지 있던 남쪽 사람 126명이 27일 돌아왔고, 남은 50명도 오늘 오후 돌아오려 했으나 실무 절차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연합뉴스 사진. 아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보니까 50명 가운데 43명은 돌아오고 7명은 남았습니다. 남북을 이어주는 끈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은 셈입니다. 다행입니다.) 토지주택공사, 한국전력 직원 등 관리직과 인프라 담당 인력들인데 개성공단관리위원장도 포함돼 있습니다.
진 : 언론에서는 날마다 개성공단, 개성공단 하지만 실제로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개성공단에 대해 한 번 짚어봐 주시죠.
주 : 안 그래도 저희 경남도민일보에서 개성공단 사태 핵심을 짚어보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초청 강연회를 엽니다.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싶어서요. 5월 2일 목요일 오후 7시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합니다. 예, 많이 참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개성공단은 개성시 봉동리 2000만 평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남쪽의 풍부한 기술과 자본과 북쪽의 값 싸면서도 질 좋은 인력, 입지 여건이 좋은 토지를 결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진 : 남쪽은 인력난 해소로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북쪽은 인건비 등 수입 증가로 경제발전을 이루는 상생 효과를 낸다는 것이군요.
주 :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남북공동선언이 출발점인데요, 현대아산이 8월 북을 만나 개성공업지구 건설운영에 합의하면서 추진됐습니다. 2002년 북쪽이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했고 착공식은 이듬해인 2003년 6월에 이뤄졌습니다.
2004년 6월 업체가 들어서기 시작한 이래 2006년 북쪽 노동자가 1만명을 넘어섰고 2012년에는 5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생산액은 2007년 1억 달러, 2008년 5억 달러, 2009년 6억 달러, 2010년 10억 달러, 2011년 15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진 : 적지 않은 성과군요. 그래서 공동번영의 상징이 된 모양입니다.
2. 대륙 해양 교통의 거점이 될 가능성도
주 : 그런ㄷ 이 성과는 1단계 남북경협 기반 구축만 된 상태에서 나왔거든요. 계획대로 2단계 수도권 금융·물류 협력 체계 확보를 통한 세계적 수출 기지 육성, 다국적 기업 유치와 통신전자설비 복합공단 개발을 통한 동북아 거점 개발까지 된다면 더 엄청난 결과가 나오겠죠.
개성공단은 서울이나 평양과도 가깝습니다. 서울에서 60km, 평양에서 160km. 그래서 교통 거점 잠재성도 인정받고 있어요. 한반도와 중국, 시베리아 등지를 종횡하는 철도 계획이 가시화되면 대륙 진출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같은 북한의 해주항이 멀지 않은데다 남쪽의 인천항과도 50km 거리에 있는 등 바다도 가깝습니다. 해양 진출의 거점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책임은 북쪽이 크지만 풀기는 남북이 같이 풀어야
진 : 그나저나 지금 개성공단 사태의 책임은 어느 쪽에 있다고 봐야 할까요?
주 : 개성공단만 보면 북쪽 책임이 크지 않을까요? 북이 먼저 통행제한 조치 등을 했으니까요. 물론 배경에는 남한과 미국의 군사훈련도 있고, 북핵이라든지 미사일 발사 같은 것이 있는데요, 그에 대해서는 남쪽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쪽 책임이 크다고 해서 그쪽에 알아서 풀어라 하는 식으로는 할 수 없다고 저는 봅니다.
진 : 책임 있는 남북 당국자들이 함께 풀 문제라는 얘기죠?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강경 대응만 일삼아서는 안 된다는 그런 취지고요.
주 : 그런데 실제로는 남북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끝장을 보겠다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남북 모두 상대방이 먼저 변해야 사태를 풀 수 있다고 우깁니다. 사실은 자기만 바뀌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북이 조건 없이 공단 문을 열거나, 남쪽이 북쪽 요구를 받아들이면 그만이거든요.
진 : 언론에서는 한미 합동 독수리 군사훈련, 중국 중재 노력,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을 변수로 보고 있죠?
주 : 대한민국 국민 처지에서는 참 갑갑한 상황입니다. 우리 국민과 아주 밀접한 문제인데도 국민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거든요. 우리 정부도 국민 여론을 살피지 않고요. 이런 국면을 저는 거꾸로 개성공단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진 : 국민 대다수가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여기면 정부 당국도 마구잡이로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시군요.
개성공단으로 전기를 보내는 한전의 송전탑.
주 : 그렇습니다. 물론 짐작하시는대로, 유권자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지금 당장은 정부 당국이 자기 뜻대로 몰아가겠지만, 길게 보면 그게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이죠. 어느 누구도 유권자의 투표를 거치지 않고서는 집권할 수 없으니까요.
4. 교류를 통해 민간 차원에서까지 믿음을 쌓는 현장
진 : 그렇다면, 개성공단이 갖는 가치가 무엇이죠? 앞에서는 경제 가치, 대륙과 해양 진출 효과 등을 얘기하셨는데…….
주 : 먼저 인적 교류·협력을 꼽고 싶습니다. 제가 어릴 때 북한 사람은 머리에 뿔이 달린 줄 알았습니다. 학교에서 인간도 아닌 것처럼 가르쳤기 때문에요. 북한 사람들도 남쪽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고 미국 괴뢰 도당으로 알았겠지요.
개성공단에서는 남북이 함께 지냅니다. 서로 상대방이 도깨비가 아니고 사람임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남쪽 1000명 안팎, 북쪽 노동자 5만명 남짓이 주거하면서 말입니다. 일상적 상호관계와 문화적 상호 침투, 새로운 생활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북쪽 노동자들은 물량, 상품, 판매, 납기, 성과급, 생산성 등등 시장경제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4월 22일 모습.
진 : 그렇군요. 돈으로 따질 수는 없겠지만 그런 공동생활이 서로에게 주는 영향력이나 신뢰는 상당하겠죠. 다음은요?
5. 포병 화력을 북으로 물리는 군사 효과도
주 : 군사적 효과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서울에서 60km 인천에서 50km밖에 있습니다. 군사분계선, DMZ에서도 5~6km 거리고요. 개성공단 자리에는 원래 북한 포병이 있었습니다. 공단 때문에 북한 2군단·6사단 포병화력은 15km 북쪽으로 물렸습니다.
포병화력은 어디를 겨냥하고 있었을까요? 남쪽 수도권입니다. 서울입니다. 그만큼 전쟁이 멀어지고 평화가 다가왔다는 얘깁니다.
진 : 그런데 그렇다면 거꾸로 개성공단이 폐쇄될 때면 북한 포병이 전진 배치된다는 얘기로도 들리는데요?
주 :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보도를 따르면,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을 자본주의 황색 바람의 진원지라고 비난해왔다고 합니다. 개성공단 노동자가 늘면서 남쪽의 좋지 않은 자본주의 문화가 들어온다는 인식인데요, 이런 군부가 폐쇄를 마다할 까닭은 없겠지요.
6. 개성공단 깨지면 누가 좋아할까?
진 : 이번에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은 남쪽 기업인들과 북쪽 노동자들이겠죠? 지금 발생하는 손해가 얼마나 되는지 짚어보면 반대로 개성공단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가 거꾸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주 : 남쪽 기업인들은 피눈물을 흘리죠. 텔레비전에서도 연신 눈가를 훔치는 모습이 자주 나오지요. 정부는 남쪽 기업의 피해 규모가 1조원이라 했는데, 실제로는 적어도 6조원이 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
북쪽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5만3000명 노동자들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임금이 1000억원인데, 가족까지 치면 25만 명 안팎이 수입이 없어지는 것이죠.
진 : 남북간, 그리고 국제적인 신뢰가 깨지는 손해도 엄청나겠죠?
주 :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 같은 데서 선전을 하면 국가 이미지 브랜드가 몇 조원 어치 올라간다는 계산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식으로 보면 지금 개성공단 사태는 남북 모두에게 몇십 조원 손해를 끼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개성공단이 올해 10년째인데요, 엄청난 일이 많았는데도 멈춘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중단됐습니다. 남북은 서로에게 믿지 못할 상대로 찍혔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개성공단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겠죠. 물량 수주도 어려워지겠죠.
7. 남쪽 수구집단조차도 개성공단은 반대 안해
진 : 개성공단은 이대로 영영 가동을 멈추고 말까요?
주 : 남북 양쪽이 모두 크게 손해기 때문에 극단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저도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눈여겨 볼 대목은, 남한 수구세력조차 개성공단은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이미 폐쇄된 금강산 관광은 수익금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 자금원이 된다며 중단을 요구해왔습니다만 개성공단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익금이 북한 정부에 가지 않고 노동자들 임금으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운신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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