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황풍년, “‘지금’ ‘여기’에 진짜 문화가 있다”

김훤주 2013. 5. 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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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 겸 발행인을 모시고 강연회를 했습니다. 서른 사람 남짓 참여를 했습니다. 황풍년 선수는 전라도 토종입니다. 4월 30일 화요일 저녁 7시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이었습니다.

 

1. 요즘 문화 생활과 텔레비전

 

문제제기를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요즘 문화생활이라 하면 대중적으로는 텔레비전입니다. 텔레비전에 장악돼 푹 빠져 있는 것이 첫째가 드라마입니다. 요즘은 좀 주춤하는 것 같지만 잘 나가면 50% 시청율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구조는 빤합니다. 부잣집 아들이나 재벌2세 남자랑 가난하지만 똑똑한 예쁜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순수하게 두 사람이 사랑하지만 재벌 집에서 반대하고 방해 공작이 이어집니다. 재벌집은 돈으로 무마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안 받았지만 받은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고요.

 

 

이런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진행이 되는데 결국 결혼이 깨지고 여자는 외국으로, 대부분 미국으로 갑니다. 프랑스 파리로 이태리로 가기도 하지만 미국으로 대부분 보냅니다. 미국은 파라다이스로 상정됩니다.

 

세월이 20년 정도 지나가지고 잘 생긴 청년 하나가 돌아가 취직을 합니다. 생부의 회사로 취직합니다. 대한민국에 회사가 매우 많은데도 꼭 그렇습니다. 사랑을 합니다. 누구랑 합니까? 생부의 딸이거나 배다른 여동생이죠.

 

서로 알게 되는 과정을 거치고 당사자에게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반대를 하고 그러죠. ‘출생의 비밀’입니다. 그러면서 줄거리를 이리 꼬고 저리 꼬고 합니다. 이제는 그런 출생의 비밀조차 하나로는 모자라는지 둘, 셋으로 꼬아 버립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제가 아들이 주말에 가도 귀한 아들은 안 보고 드라마를 봅니다. 개만치도 못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근친상간 아슬아슬 넘나들고 겹사돈이 될 듯 말 듯하는 그런 병리현상 같은 것을.

 

그런데 우리 시청자들이 거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것들 눈이 빠져라 봅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저는 외모라고 봅니다. 남자가 장동건이고 여자가 김태희고 하기 때문에 이런 주인공들이 방송 3사 돌아다니고 더 나아가 빌어먹을 종편까지 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내용은 보지 않습니다. 외모지상주의 막장 드라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내용보다는 겉치장과 포장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결말은 아버지가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부를 차지하게 됩니다.

 

외모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돈 신앙이지요. 2중3중 꼬게 만들고 어찌 보면 극약 같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섭취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2. 모두를 구경꾼으로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

 

둘째는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입니다. <무한도전> <러닝맨> 같은 것, <승승장구>니 뭐니 해서 잡다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희희낙락합니다. 이 방송국 저 방송국 돌아다니면서 같은 대사만 읊어대고 있습니다.

 

‘뽀시락’ 장난 같은 것, 놀이 이런 것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 푹 빠져 있는 현상입니다. 텔레비전에서 강호동이나 유재석이 하고 있는 장난 놀이는 우리가 옛날에 다 했던 것입니다. 썰매타기, 자치기, 깡통 돌멩이로 맞히기 등등.

 

이제 우리가 몸으로 하는 것은 사라지고 우리는 완전 구경꾼이 돼 버렸습니다. 마산에 NC다이노스가 생겨나 갖고 야구 붐이 생겨나고 있나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씨름 같은 것은 우리가 다 직접 했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스포츠광 가운데서도 뚱뚱한 사람이 번듯하게 존재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옛날에는 스포츠를 몸소 했기 때문에 스포츠광은 비만이 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구경만 하면 되기에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돈과 물질이 최고의 가치로 설정됩니다. 아무런 의심이나 설정 없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구경꾼이 됐습니다. 사람 관계에서 내면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좋아하게 되는 그런 것은 있지 않습니다.

 

3. 뉴스 정보도 사람을 구경꾼으로 만들고

 

직접 하기보다는 뭐든 구경하기에 익숙해져 버리는 굉장한 폐해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뉴스 정보도 똑같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우리가 주로 어떤 뉴스를 접하는가요. 서울 중심 뉴스, 서울에서 일어나는 큰 일 이런 게 대다수입니다.

 

제가 사는 광주에 10명이 신문을 본다면 80~90%는 서울에서 나오는 이른바 중앙지를 봅니다. 지역신문은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역신문은 자체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거나 의제를 만들 힘이 전혀 없어요.

 

140만 명이 사는 광주에 그런 이야깃거리가 없는가? 아닙니다. 광주 140만 명 사는 도시가 뉴스가 하루에 한 꼭지 나올까 말까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한 가지 사건에 울고 웃고 흥분하고 그럽니다.

 

 

뉴스 정보도 이렇게 너무 왜곡이 심합니다. 서울 중심 미디어 폐해가 엄청 큽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런 것 나눠 보면 다 그렇습니다. 정치 보도에서 핵심은 선거 보도입니다. 옥석을 구분하는 정보를 주는 것입니다. 이게 선거 보도의 핵심이고 따라서 정치 보도의 핵심입니다.

 

서울 쪽 매체의 경우는 그런 정보를 전혀 줄 수도 없고 실제로 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서울 매체들은 선거를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듭니다. ‘여’가 이기느냐 ‘야’가 이기느냐 하는 게임으로 갑니다. 그런 신문을 열심히 봐 갖고는 좋은 사람을 뽑아서 국회로 보낼 수 없습니다.

 

4. 서울 매체들은 누구에게나 달콤한 사탕만 준다

 

정치인 뒷담화나 정계 개편의 커다란 구도 이런 것만 나옵니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국회에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런 것은 못합니다. 왜 못하느냐.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려면 서울 매체들이 마산에도 필요한 정보를 주고 광주에 사는 황풍년에게도 필요한 정보를 줘야 합니다.

 

그러나 서울 매체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그냥 어느 지역에서든지 혹하고 재미있을만한 정보만 줍니다. 입에 달콤한 사탕을 주지 몸에 좋은 약이나 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서울 매체들을 사람들이 열심히 보면 볼수록 헛똑똑이가 됩니다.

 

실제로 필요한 정보는 구할 수 없으면서 세계 정세를 논하고 거대한 정계 개편은 논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까 지방자치가 요 모양 요 꼴입니다. 너무 큰 뉴스에 익숙해져 있어, 청와대 뉴스에 익숙해져 있어, 국회 뉴스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사람들 눈에는 시의회가 시시해 보이는 것입니다. 재미있고 뭔가 있어 보이는 그런 뉴스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5. 깊숙하게 들여다보지 않는 보도들

 

경제지는 한결같이 우리나라는 땅은 좁고 인구는 많고 수출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나 자동차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농업이나 축산업의 희생은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말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데서 나오는 얘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그러니 실제 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세계적인 식량 위기 같은 것을 보더라도 공업은 희생을 하고 농수축산업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매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합니다. 처음에는 지금 수입돼 들어오는 사료가 풀보다 쌌습니다. 사람들이 풀은 안 베고 사료를 사다 먹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료가 점점 올라가서 우리 목줄을 죄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 농림부를 출입했는데 거기서 쌀나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가 보도자료를 보고 베낍니다. 이렇게 해서 기자들의 검증 없이 보도가 나와 버립니다. 사회 문제도 그렇습니다. 큰 사건이 또 큰 사건으로 묻혀서 갑니다.

 

씨랜드 화재 사건, 단체로 놀러 간 아이들이 불에 타 죽는 너무나도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신문 방송에서 다루지만 그런 사고는 또 재발됩니다. 떠들썩했는데 깊숙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소비하고 맙니다. 온 나라가 전부 흥분하고 다른 사건으로 또 흥분하고 뉴스가 뉴스를 덮고, 이런 식으로 넘어갑니다.

 

6. 가짜는 아니지만 1등은 아닌, 세계적인 것들

 

문화도 그렇지요. 책은 베스트셀러, 영화는 블록버스터, 누구나 다 부를 줄 아는 노래, 누구나 다 보는 영화, 나만 안 보면 안 되는 영화, 이런 식으로 보도가 나와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되고 있습니다.

 

스포츠광인데도 비만이 많고 말입니다. 대중문화나 뉴스 정보들이 왜곡되게 소비되고 있습니다. 좋은 뉴스란 정보란 구체적으로 내 삶의 조건을 조금씩이라도 개선해 주는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짜릿하고 재미있는 감각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고요.

 

 

이런 뉴스는 지역 안에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화다양성을 서울에 있는 것들이 챙겨 줄 수 있는가요? 문화 다양성을 콘텐츠로 만들어서 제공해 줄 수 있는가요? 서울 매체들은 이런 것들을 뉴스로 다룰 수 없습니다. 광주 대구 마산 이런 데 곳곳에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서울 매체들은 어느 지역에 살든지 모든 사람들이 다 재미있어 할 만한 것으로 꽉꽉 채우고요, 그렇게 재미있어하고 좋아하고 흥분해 할 만한 것들을 그들은 팔아먹는 것입니다. 문화를, 그런 사례를 많이 듭니다.

 

문화생활 잘 한다 하면, 유명한 거장의 전시회 같은 것, 세계적인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것들 보고 넥타이 메고 가서 숨도 못 쉬고 그럽니다. 저는 이런 것이 가짜는 아니지만 최고는 아니라고 봅니다. 내게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가까이 있는 것이 일등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개인적인 소비로 그칩니다.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똑같습니다. 엄청나게 이름난 오페라를 보고 나서 나올 때는 서로 먼저 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이런 데서는 소통과 공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7. 일상이 중요한데도 비(非)일상만 다루는

 

제가 어릴 때 마을에서는 열 개 자연 마을 사람들 나와 갖고 마을마다 풍물패가 떠 가지고 함께 어울려서 신나게 놀고 회포를 풀고 새로 시집 온 새댁 인사 시키고 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먼 데서 온 마을 먼저 가소, 이러지 아무도 먼저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풍물을 치면 어릴 때 듣다가 고개 끄덕끄덕 하면서 장단 맞추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몸소 치고 놉니다. 일등 문화생활은 이런 데 답이 있지 않을까요?

 

문화 선진국이라는 데를 다녀 보면 핀란드나 노르웨이나 다녀 보면 이런 데 서울 중앙지라는 개념이 없어요. 5만~10만 도시를 보면 1만 부 이상 발행되는 신문이 있습니다. 늘상 챙겨가는 것들을 신문에서 보면서 삽니다.

 

우리 사회는 뉴스라는 것도 왜곡돼 있습니다. 그 쪽은 지역 미디어라는 것이 그만큼 활성화돼 있습니다. 식품 안전성 유해성 발표한다 하면, 한국 신문들은 유명 회사가 걸려들어 발표에 나온다면 모이지만 별 것이 없으면 아예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진국에서는 별 것이 없어도 옵니다. 왜냐, 식품 안전성이 중요한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신문들은 죄다 비일상적인 것만 다룹니다. 일상적인 것은 다루지 않습니다.

 

문화 선진국이라는 데는 1등 베스트셀러만 잘 팔리는 그런 시스템이 아닙니다. 베스트셀러의 그림자가 없습니다. 2등 아래로는 죽어나가는 그런 구조가 아닙니다.

 

8. '지금' '여기'를 초라하고 비루하게 만드는 것들

 

<전라도닷컴> 하면서 한국 사회의 서울 중심, 자기가 발 딛고 사는 여기 보다는 멀리를 바라보고 동경하는 문화 현상 이런 것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여기를 떠나서 서울 방송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서울 강남 압구정 그런 데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여기’서 이뤄지는 삶을 초라하고 비루하게 만듭니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데를 중심으로 비추지 않습니다. 문제가 뭔가, 지역에서 언론 이런 데서부터 제대로 된 것을 보여주고 그것에 공감하게 하는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전라도 신문에 전라도 이야기가 결핍돼 있었어요. 전라도 사람한테 전라도가 없었고, 그래서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만족이나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말입니다. 전라도 말을 쓰면 허투루 여기고 뭔가 못 배운 사람 취급하는 그런 것을 벗어나야 한다고 봤습니다.

 

지역 매체에서도 주인공은 돈이 많거나 출세한, 이른바 ‘완장’들입니다.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 민중, 민초 이런 사람들을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뭐가 잘 나서가 아니라, 옛날부터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는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주인공이 되는, 관객과 주인공과 객석이 서로 넘나드는……. 내가 전라도에 사니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으니까 전라도 이야기를 전라도 사람이 그대로 풀어내는 매체지요. 진짜 매체는 이런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전라도닷컴>을 보고 이를테면 경상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경상도 사람들이 제대로 풀어내는 식으로 퍼져나가지 않을까 여겼습니다. 그래서 지역닷컴 도메인을 다 갖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른 지역에서 이를테면 <강원도닷컴> 하겠다는 사람이 찾아오면 나눠주고. ‘팔도닷컴’도 갖고 있습니다. 돈을 생각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세계적인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는 다 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나 아이들이 아플 때 이렇게 말합니다. “워메 난 까마득하게 몰랐네.” 그게 자랑입니까. 이런 생각으로 <전라도닷컴>을 만들었습니다.

 

9.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무대, 지역

 

외면 겉치레 포장 이런 것 말고 안, 내면 들여다보고 영혼과 영혼이 만날 수 있고……. 그런 것 말고, 구경 말고 우리가 직접 해 보는 것. 직접 하는 것에 대한, 그러니까 우리가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지역말을 매체의, 지역의 중심으로 놔야 하겠다 여겼습니다. 전라도 지역말이 우습습니까? 하하. 경상도 말도 서울 가면 천덕꾸러기예요. 깡패 아니면 밑엣것들 이야기에나 지역말이 쓰입니다.

 

<춘향전> 드라마나 연극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춘향이가 전라도 말 쓰는 것 봤어요? 못 봤을 것입니다. 성춘향은 전라도 가시나 아닙니까? 향단이나 방자만 지역말 씁니다.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이것을 광주시립 민속박물관이랑 같이 하는데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로 하겠다고 했더니 그쪽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전라도 사투리 경연대회'로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는 못한다, 이랬습니다. 사투리 경연대회는 너거가 해라 우리는 자랑대회를 하겠다……. 그런데 저거는 애정이 없어서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로 하게 됐지요.

 

<전라도닷컴>은 따옴표 안에는 원단 그대로입니다. 그대로 써줘야죠. 그런데 다른 매체들은 읽기 편하도록 쓰기 편하도록 다 고쳐 버립니다. 이거 왜곡 아닌가요. 언어라는 것은 단순히 문화를 다루는 도구가 아닙니다. 문화 그 자체예요.

 

지금 사람들은 전부 “대박이다” 이래요. 노래를 잘 해도 대박이다, 춤을 잘 춰도 대박, 물길이 높이 치솟아도 대박, 이래 버려요. 하지만 원래 그런 상황마다 다른 말이 더 있어야 하잖아요?

 

지역말을 서울 아이들이 쓴다는 표준말로 바꾸는 그 순간, 다 죽어 버립니다. 정운현 선배가 우리 <전라도닷컴>의 두(남신희·인희) 기자보고 할머니 전문기자라 했을 정도입니다.

 

‘노랗다’는 말,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해 냅니까? 놀짱하다, 노릿노릿하다, 누리끼리하다, 누르스럼하다, 뇌랗다, 이런 다양한 표현들이 문학이고 다양성입니다.

 

누군가가 제게 공식으로는 표준말을 쓰고 사적으로만 지역말을 써야 한다고 했어요. 왜 전라도 말 경상도 말을 쓰면 안 되는가요? 김대중은 심지어 영어도 전라도 말로 했습니다. “암시랑토 안해요.”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10. 결핍 부족조차 소통과 연대로 채워내는

 

진정한 지역성은 지역 문화에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무한한 모델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공동체의 영역이 바로 지역입니다. 손을 뻗으면 잡히고 발로 밟으면 밟히는 데가 지역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직접 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지역입니다.

 

늘상 부대끼기 때문에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삶이고 진정한 문화입니다. 겉모양에 취해 갖고 좋다, 휘딱 변해 갖고 또 바뀌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도 결핍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결핍이나 부족을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채워주는 것이 지역입니다. 옛날에 서울 유랑극단이 휩쓸고 간 것 같지만 사실 우리한테 부족한 것을 채워줬을 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진정한 지역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른 지역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보편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11. 정의를 공유하는 지역이라야 한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저거 동네 예산을 쪽지 예산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서울 신문들은 막 비판합니다. 그런데 지역 매체들은 침묵합니다. 정의로워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을 만들어내고 공유해야 합니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지역성이 아닙니다.

 

보기를 들겠습니다. 빌어먹을 MB가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과학특구인가 하는 것을 대전에 주겠다고 했다가 철회하고 공모를 했습니다. 싸움 붙이는 것이죠. 그러니까 광주도 대구도 서로 나를 달라, 이건 진정한 지역성이 아닙니다. 이런 이기주의가 어디 있습니까?

 

또 지역을 모르는 것들이 지역을 꿰차고 있습니다. 서울 있으면서 해먹을 것 다해먹고 내려와 갖고는 ‘고향을 위해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겠다’고 그러면서 선거에 나와요. 사실 고등학교만 지역에서 나오고는 서울 가서 잘 지내다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역 사람들이 용인해요. ‘장관 출신이잖아, 힘이 있을 거야.’ 고등학교 학벌, 광주일고 몇 회 선배님이시고 어쩌고 합니다. 온 나라가 다 그런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선거 끝나면 가버려, 집도 없어, 지가 잘 났기 때문에 지역 사람 다 무시해요. 이런 지역성이 어디 있어요.

 

12. 정말 필요한 인문학은 지역 안에 있다

 

지금 유행이 되고 있는데, 인문학 자체의 폐해도 심각합니다. 그 사람들 전혀 모르지요, 알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시스템 자체가 아주 더러운 것이 돼 버려요. 인맥을 타고 이름난 사람 불러내립니다. 인문학을 주관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 인문학 담당자의 인맥 과시용은 하지 말라고 저는 얘기합니다.

 

정말 필요한 인문학은 지역 안에 있습니다. ‘나도 들어봤다, 진중권이 강의’ 이런 것은 필요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모르고 삽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아요. 시험에 안 나오니까 그렇습니다.

 

보기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일제는 아니고요, 미국·유럽에서 수입됐다고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새끼들 때문에 절딴이 났습니다.

 

<전라도닷컴>을 하면서 옛날 동학꾼들 이야기, 의병들 이야기, 매천 황현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웁니다. 동학이나 의병을 거치는 동안에 민중들 삶이 이미 신분제를 타파 다했어요.

 

동학농민혁명 당시 집강소가 나주·남원·운봉을 제외하고는 다 설치됐습니다. 집강소가 부패 관리는 징치를 했지만 대체로는 다 합리적으로 처리를 했어요. 민주주의지요.

 

매천 황현이 동학을 비적이라 했지만 1905년 이후 항일 의병은 긍정했어요. 항일 의병은 그 안에서 신분제가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의병대장을 보잘것없는 상놈이 하고 그 아래에 의병으로 양반들도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중의식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다가온 것이 아닙니다. 동학의 혁명지 이런 데를 짚어보고 하면 우리가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를 공부를 더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광주천변에 5일 장터가 있습니다. 여기서 일제강점기 만세운동을 벌였다는데, 우리가 그런 역사를 알면 어디 천변에서 오줌을 싸고 하겠는가. 아닙니다. 어디서 고개를 숙이고, 언제 옷깃을 여며야 하는가는 고담준론을 통해 형성되지 않습니다. 지역에 대한 앎에서 생깁니다.

 

13. 더불어 사는 법을 맞춤형으로 가르치는

 

학교를 공교육이라 하고 학원을 사교육이라 하는데 저는 좀 다르게 나눕니다. 같이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공교육, 혼자 잘 사는 법을 가르치는 사교육…….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데가 없어요. ‘동생한테는 성적 좀 다그치지 말라’는 유서를 쓰고 중학생 하나가 광주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공교육을 학교가 안 하기 때문에 지역 사회가 해 줘야 합니다. 공교육이 필요한 장면은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술 마실 때인데, 우리는 ‘야메’로 배웠습니다. 이성간 교제도 마찬가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군대 고참이나 학교 선배한테서 배웠습니다.

 

여럿이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가 없습니다. 지역의 언론이나 단체 같은 데서 가르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비싼 서비스가 뭐예요? 맞춤형 서비스입니다. 서울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해 줄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음식 만들 때, 우리 어머니들이 집안에서 ‘소금 조금만 넣어, 많이 넣으면 못써’ 이러는 게 맞춤형입니다.

 

세계적인 것 이런 것이 결코 문화의 중심일 수는 없습니다. 전주에 가면, 전주가 옛날에 전라도의 중심이었잖아요? 한지 부채로 유명합니다. 부채 공납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채를 의인화해 갖고 선자(扇子)라 하면서 선자창(倉)을 두고 그걸 모아서는 임금한테 갖다 바쳤습니다.

 

그러면 임금이 누군가가 순천부사로 간다 하면 부채를 주면서 선정을 베풀어라 했습니다. 여름만 아니고 사철 그랬어요.

 

합죽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이기동 할아버지가 있는데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인터뷰 마치고 나서, 하도 초라하게 사시고 입성도 누추하고 해서, ‘부채값도 좀 올리시고 좀 더 만들어서 돈을 좀 버셔야 하지 않는가요?’ 물었어요.

 

‘그러믄 쓰나요? 명예가 있는데.’ 이러십니다. 석·박사 학위 받고 외국 유학 다녀온 그런 사람들한테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전라도닷컴>을 하면서 지역에서 자기 힘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순천 송광면 한 산골에서 손주가 책가방 메고 공부하러 나서니까 할머니가 이랬어요. “공부 많이 하지 마라, 많이 하니 다 도둑놈 되더라. 사람 공부를 해야지.”

 

14. 한 사람 한 사람의 아름다운 역사를

 

우리는 그동안 제도권과 돈·권력 중심의 미디어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 것이 가짜는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거대하고 거창한 역사,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다수 민중이 몸으로 겪어낸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서울에 있는 경복궁이나 ‘태정태세문단세’ 이런 건 잘 알지만 보통 사람들이 피와 땀으로 살아온 역사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를 알아야지만 우리 자존이 섭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유명하잖아요. 대첩에서 수만 명 수천 명이 몰살할 때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존재감이 없습니다. <전라도닷컴>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아름다운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책 같은 것 보면 ‘한미한 집안에 태어나 몸을 일으켜……’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세상에 어디 한미한 집안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 하나가 존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사가 있어왔는가요? 진정한 역사 진정한 삶의 가치는 지역에 있습니다.

 

이런 것을 지역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찾아다니면서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저릿저릿합니다. 우리한테 결핍된 것이 바로 민중의 역사, 민중성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요. 지역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발굴하고 답사하고 또 자기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문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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