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에서 복지 확대와 경제 민주화는 어느 누구 가릴 것 없는 원칙이었고 약속이었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 모두 그리 하겠노라고 밝혔더랬습니다. 뉴시스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사진. 취임식 전날 서울 보신각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를 적고 있는 사람들. 뉴시스 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사진.
그런데 지금 와서 말이 달라졌습니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시켜서 말을 바꿨습니다. 물론 ‘세금 증가 없음’은 그대로 지켜졌습니다. 대다수 서민에게 좋은 것은 깨졌고 극소수 재벌에게 좋은 것은 남았습니다.
그리고 신뢰는 반쪽으로 남았습니다. 우리 사회 대다수 구성원은 박근혜 당선 이후 그에 대해 아주 낮아진 지지율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 당선인은 향후 국정 추진 기반을 ‘정부에 대한 신뢰’라고 밝혔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그런 신뢰를 강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일 인수위가 발표한 국정과제들을 두고, 이튿날인 22일 금요일 MBC경남 라디오광장에서 같은 MBC경남의 김상헌 기자와 주고받은 얘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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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 박근혜 정부의 향후 5년 로드맵이 어제 21일 발표됐어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날 국정 비전과 국정 목표 그리고 국정 과제를 밝혔습니다. 가장 상위 개념인 국정 비전을 ‘국민 행복, 희망의 새시대’로 잡았더군요.
김훤주 : 국민 ‘행복’과 ‘희망’이라는 비전 아래 국정 목표를 다섯 개 선정했네요. 첫째 일자리 중심의 창조 경제, 둘째 맞춤형 고용복지, 셋째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넷째 안전과 통합의 사회, 다섯 번째가 마지막으로 행복한 통일 시대의 기반 구축입니다.
헌 : 다섯 개 국정 목표 아래에는 국정과제 140개가 있습니다. 이 국정 과제를 다시 추진 전략에 따라 나눴는데요. 추진 전략이 ‘창조 경제 생태계 조성’을 비롯해 모두 21개입니다. 인수위는 이렇게 발표하면서 이렇게 추진하는 기반이 신뢰라고 했습니다. 원칙과 약속을 상징으로 하는 박근혜 정부에 걸맞은 기치 같기는 합니다.
주 : 국민 행복을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국정을 맡는 박근혜 정부가 정말 잘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어제 인수위에서 발표한 국정 과제 관련 보도자료를 보니까요, 200자 원고지로 열여섯 장 분량인데, 여기에 ‘신뢰’라는 낱말이 모두 다섯 차례 나옵니다. 국정 비전으로 꼽은 ‘행복’과 ‘희망’은 각각 열두 번과 세 번 적혀 있고요.
헌 : 그러면 민주주의 민주 민주화 이런 낱말들은 어떻던가요?
주 : 딱 한 번 나옵니다. 그것도 국정목표나 국정과제를 꼽으면서 나온 말이 아니고 우리나라 지난 역사를 짚어보는 대목,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며 국가 경제규모는 선진국 수준으로 커지고 국격도 높아졌으나”, 하는 부분뿐이었습니다.
헌 :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최고 가치가 국정 비전인 국민 행복인 셈인데요. 행복을 우리 사회에서 실현하는 수단이랄까 방법을 꼽으면 복지가 되잖아요? 복지라는 낱말은 얼마나 나오나요?
주 : 세 번 나옵니다. 좀 적은 느낌이 듭니다.
헌 : 그러면 복지와 함께 행복을 위한 방편으로 꼽히는 고용은 사정이 어땠어요?
주 : 그렇죠. 요즘은 안정된 고용이 바로 복지라는 인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죠. 그것도 세 번 나왔습니다. 마찬가지 자주 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열세 번으로 아주 많고 신뢰는 다섯 번으로 조금 많습니다. 반면 희망 고용 복지는 제각각 세 차례로 적은 편이며 민주는 딱 한 번으로 아주 적었습니다.
헌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대선에서 간판처럼 내세웠던 공약이 바로 복지랑 경제민주화였는데, 국정비전과 국정 과제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에 그런 낱말이 많이 들어 있지 않다니 조금 뜻밖이네요.
주 : 박 당선인 후보 시절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 가운데 첫 번째로 경제민주화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 3대가 아니라 5대 국정 목표에도 끼이지 못했습니다. 반면 마찬가지로 간판 대선 공약이었던 복지는 ‘맞춤형 고용·복지’라는 두 번째 국정 목표로 꼽혔습니다. 이를 두고 박 당선인의 재벌 개혁을 비롯한 경제 민주화 의지가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헌 : 그러면 대선 당시 공약했던 경제 민주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세부 공약들은 이번에 어떻게 됐어요?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이 사라진 것처럼 그것들도 사라지거나 약해졌는가요?
주 :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수위 관계자 말처럼, ‘모두 경제 파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5대 국정목표에서 제외됐을 뿐 관련 공약들이 모두 포함됐고, 그 실천 방향이나 이행 계획도 그대로라는 얘기입니다.
헌 : 그러면 총론은 사라지고 각론은 남았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내용을 조금 소개해 주시죠.
주 : 인수위는 공약집에 있던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을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라는 국정 목표를 위한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질서 확립’이라는 추진 전략으로 묶어 내놓았습니다. 일부는 좀 진전됐고 일부는 후퇴했지만, 대체로는 공약들을 구체화하는 수준에서 정리됐다고 합니다.
대기업 횡포 규제 방안과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총수의 불법행위를 막는 방안 둘로 나눌 수 있는데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부당 단가 인하, 부당 발주 취소, 부당 반품’ 업체에 도입해 3배까지 물리기로 했습니다.
대리점 등에 일정 가격 이하로 팔지 못하게 하는 행위나 담합에 대해서는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모든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외신청형 방식’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밖에 지금까지는 공정거래위원회만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을 고발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중소기업청, 감사원, 조달청에도 고발요청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지배구조 개선 부분에서는 공약대로 계열사간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됩니다. 그리고 신규가 아닌 기존 순환출자의 고리 강화를 위한 추가 출자도 ‘신규’인 것으로 간주해 금지됩니다. 강화된 부분입니다.
아울러 대기업 총수 일가 불법행위 제재도 강화됩니다. 공정거래법에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금지 규정’을 신설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이익을 챙긴 일가에게 직접 과징금을 물려 부당이득을 거둬들입니다. 지금은 일가에게 이익을 안긴 기업에만 과징금을 물릴 수 있습니다.
총수의 횡령 등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고 사면권도 사면심사위에서 엄격하게 상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공약집에 있던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 강화’ 부분과 ‘사면권 제한’ 표현이 빠지거나 바뀐 것은 ‘후퇴’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헌 : 각론 차원에서는 강화된 부분도 있고 약화된 부분도 있다는 얘기군요. 그렇다면 일괄해서 약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왜 당선인의 경제 민주화 의지가 약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나요?
주 : 하위 개념 차원에서는 구체화돼 있다 해도 상위 목표에서 빠졌기 때문입니다. 경제민주화를 주로 담당할 정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의 말인데요, “경제민주화처럼 이해관계자가 다양하고,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이 강하게 있는 사안이 국정목표에서 순위가 떨어지면 바로 추진동력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국정목표의 하위 개념인 추진전략으로 제시되면 개별 정책들이 향후 입법·실천 과정에서 얼마나 힘을 잃기 십상이라는 거죠.
헌 : 그렇군요. 그러면 복지 분야는 어떤가요? 복지가 고용과 함께 두 번째 국정 목표로 올라가 있다고 했잖아요?
주 : 이건 내용면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알려진대로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암, 희귀난치성 질환 같은 4대 중증질환 의료비 100% 국가 부담 공약은 직접 치료비만 포함되고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빠졌습니다.
65살 이상 모든 어르신께 다달이 20만원씩 기초연금을 드리겠다던 공약도 빈말이 됐습니다.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대상자는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하위 70% 노인들로 한정했습니다. 전체 노인 600만 명의 절반인 300만명만 해당됩니다.
하위 70%지만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인 101만 명은 가입 기간에 따라 14만~20만원을 차등 지급받습니다. 상위 30%는 국민연금에 가입했으면 4만~10만원, 가입 안했으면 4만원 정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헌 : 하위 70%의 경우는 역차별 논란도 일어나겠습니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노인은 다른 노인과 마찬가지로 사정이 어렵고 형편이 쪼들리는데도 어찌어찌해서 보험료를 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보험료를 낸 사람한테 별달리 합당한 해명도 없이 기초연금을 적게 주겠다니까 말씀입니다.
주 : 그렇습니다. 사정이 딱한 어르신일수록 1만원 2만원이 크고 소중할 텐데, 이들을 모두 보듬지 못했습니다. 대선 과정에 경로당에서 가장 대접받았던 후보가 바로 박근혜 당선인인데, 우리나라 어르신들 당선인한테 제대로 한 번 속고 말았습니다.
헌 :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45%인데 이건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나라 평균인 13.5%의 세 배를 웃도는 수치랍니다. 우리 어르신들 열악한 조건을 보여주는 것인데…… 어쨌든 이렇게 새로 연금을 지급하게 되면 돈이 더 들 텐데요,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는가요?
주 : 인수위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해 국민행복연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초연금은 국비와 지방비로 감당하는 공적 부조 성격이고 국민연금은 개인이 적립해 나가는 방식으로 서로 성격이 다른데도 하나로 묶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통합이 되면 기초연금에 들어가는 공공 재원이 부족해지면 국민연금 기금을 헐어서 쓸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헌 : 그렇게 돼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동시에 부실해지는 최악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겠군요.
주 : 맞습니다. 복지를 확대하면 그만큼 돈이 더 들 수밖에 없는데, 박 당선인은 세금 증가는 없다고 밝혔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세금을 더 거두지 않는다면 복지를 축소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남의 곳간을 헐어 돈을 빼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헌 : 박근혜 정부 출범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어쨌든 국정 과제 추진 기반을 신뢰에서 찾았잖아요? 인수위 발표를 따르면 국정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신뢰받는 정부가 되어야 하고 새 정부는 개방과 공유, 협력을 통해 국민과 소통해 국민적 신뢰를 얻어나가겠다고 밝혔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주 :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신뢰가 쉽사리 생길 수 있을까요? 당선될 때 공약을 정부가 출범도 전에 어기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박 당선인이 이번에 복지 분야에서 깨뜨린 4대 중증질환 의료비 100% 국가 부담이나 기초연금 20만원 지급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어려운 사람들을 더욱 어려운 처지로 내모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공약 파기로 받는 상처가 깊을 수밖에 없겠고 그러므로 이를 치유하고 달래려면 박근혜 정부가 좀더 많이 신경쓰고 더욱 섬세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 주기를 많은 사람들이 새 정부에 바랄 것입니다.
헌 : 그렇겠지요. 새 정부가 공약을 깨면서까지 어려운 사람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 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나마라도 신뢰가 생길 테니까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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