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시작도 전에 깨진 박근혜의 신뢰와 원칙

김훤주 2013. 2. 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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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경남의 라디오광장은 설날 연휴를 앞둔 2월 8일에도 진행됐습니다. 저는 이 날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김상헌 MBC경남 기자와 함께 설날 연휴에 사람들이 얘깃거리로 삼을 만한 정치권 뉴스들이 어떤 것들일까 짚어봤습니다.

8일 오전에는 박근혜 당선인이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등 내각 일부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얘기도 들어가기는 했는데, 사실은 기초연금이나 3대중증질환 의료비 보장 같은 복지 분야를 가장 많이 다뤘습니다. 박 당선인이 공약했던 '세금 증가 없는 복지 확대'의 실제 모습이 여기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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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 내일 설날 연휴가 시작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같은 식구 친척끼리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을 피우게 될 텐데요, 이번 설에서는 무슨 얘기들이 오갈지 미리 한 번 가늠해 볼까요?


김훤주 : 가장 많이 오르내릴 얘깃거리는 날씨가 되겠지요. 까치설날도 우리 설날도 꽁꽁 얼어붙게 생겼습니다. 오늘도 거창은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4도였습니다. 경남 최저지요. 이런 매서운 추위는 설 연휴 내내 이어진다고 합니다.

2월 8일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풍경. 뉴시스 사진.


헌 : 안 그래도 고향 계시는 부모님들 평소 자식 걱정 많으실 텐데, 손자손녀 데리고 돌아오는 자식들 보고 이렇게 추운데 오느라 고생했다고 처음 말을 건네게 되겠네요. 설연휴 끝날인 11일부터 조금씩 풀린다고 하죠?

줄줄이 MB에 등돌린 감사원, 권익위, 인권위

주 : 정치권에서는 추위 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현재 대통령과 미래 대통령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헌 : 그렇죠? 정치권 추위는 오래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설연휴 고향집 이야기에도 거리를 많이 제공하고요.

주 :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에 감사원이 총체적 부실이라며 ‘칼’을 댄 게 얼마 전입니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이미 제기했던 사안인데 그동안 꿈쩍도 않고 있었고 오히려 문제없다고 면죄부를 줬지요.


그런데 지난 6일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4대강 사업에서 열일곱 개 대형 건설사들이 담합했다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짬짜미 역시 많은 시민단체와 언론이 이미 제기한 의혹입니다.


마지막으로 7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습니다.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했다며 이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인권위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 묵인 아래 민간인을 불법사찰했다며 대통령에게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헌 : 대통령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무렵에야 나온 셈이죠. 많은 사람들은 이런 변신에 대해 “이럴 수가…” 또는 “힘이 빠지니…” 라며 권력무상을 얘기했지요. 면피성에다 그동안 돌봐준 권력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원칙과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박근혜 당선인

주 : 예, 이번 차례는 미래 대통령 박근혜 당선인입니다. 올해 상반기의 주역은 단연 박 당선인인데요. 박 당선인이 스스로 불러들인 측면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원칙과 신뢰, 약속 이런 당선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다치게 됐거든요.

헌 : 박 당선인이 지난 16년 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쌓아온 소중한 자산인데, 야당 시절에는 앞장서 청문회 강화를 이끌었고 그 때는 아무 말 않다가 이번에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청문회가 문제 있다, 신상 털기식은 안 된다고 말을 바꿔 일관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어요.

주 : 뿐만 아닙니다. 대선 과정에서 연금제도 개편을 통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을 2배 올려 2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0만원을 국민연금 가입여부나 소득 등에 따라 4개로 나눠 차등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말바꾸기를 한 거죠. 

암·심혈관질환·뇌질환·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 총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수위는 6일 가장 큰 부담인 간병료,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같은 3대 비급여는 공약에 처음부터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공약집에는 “4대 중증질환과 관련하여 총진료비, 그러니까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해 국가가 부담한다"고 명시돼 있어요.

서로 어긋나는 내용을 공약한 자체가 문제

뉴시스 사진.


헌 : 진료비 부분은 후보 3차 TV토론회에서도 확인됐었죠? 노후소득보장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인데, 이게 뒤집어지고 있는 거죠. 복지단체와 노인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찮죠?

주 : 그런데 원인을 따져보면 박 당선인이 ‘복지 확대’와 ‘세금 증가 없음’ 둘 다를 공약으로 내세운 데 있습니다. ‘세금 증가 없는 복지확대’는 근본에서 서로 부딪히죠. ‘복지확대’를 위한 재원이 모자라니 ‘세금 증가 없음’을 지키기 위해 ‘복지 확대’를 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재벌이나 극소수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은 ‘증세 없음’보다 ‘복지 확대’를 우선시합니다.

헌 : 그 때문인지 박 당선인 지지율이 예년과 많이 다르다고 하네요. 한국갤럽이 1월 28일부터 2월 1일까지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당선인이 “잘하고 있다”는 52%였어요. 선거 때 지지율 51.6%와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주 : 두 주 앞서 진행했던 조사 결과도 높지 않은 55%였는데, 그보다도 3%p가 낮아졌어요. 그런데 이런 적이 여태까지 없었다는 데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을 앞두고 지지율이 80%를 넘나드는 고공행진을 했고요,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12월 26일 여론조사에 84.1%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거든요.


잘못된 인사와 불통으로 지지율 떨어지고

헌 : 처음에 거품이 많았다가 나중에 지지율이 폭락하는 것도 문제고, 어쨌든 지금 낮은 지지율이나마 그대로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그 원인이 뭐라고 합니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박 당선인에 대해 마음을 열지 못해서 그렇다는 얘기들도 있던데~~~

주 : 전체적으로 보면 맞고요, 여론조사에서 “인사 잘못,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이유로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고요, 뒤이어 “국민소통 미흡, 너무 비공개, 투명하지 않다”가 많았습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연령대별 지지율 변화인데요, 30대 지지율이 46%로 지난 조사보다 7%p 올랐고, 40대 이상 모든 연령대와 20대에서는 모두 떨어졌습니다. 특히 박 당선인 지지 성향이 뚜렷한 50대와 60대 이상에서 각각 10%p와 7%p로 하락폭이 컸습니다.
(69%→59%, 69%→62%)

헌 : 인사 잘못이 지지율이 낮게 나온 데 영향을 미친 셈인데요, 사실상 박 당선인이 지명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실제로 박 당선인이 지명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갖은 비리와 의혹이 제기된 끝에 버티기를 하고 있거나 자진 사퇴한 것이 타격이 됐겠군요.

왜 하필이면 설날 연휴 앞두고 총리 후보 발표했을까

박근혜와 정홍원. 뉴시스 사진


주 : 그래서인지 박근혜 당선인이 설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 오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발표했습니다. 경남 하동 출신이죠?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에 지명된 정홍원 변호사 말씀입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경호실장에는 김장수 전 국방장관과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이 각각 내정됐어요.

헌 : 첫 총리 후보로 지명됐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도덕성 논란 끝에 낙마한 때가 지난달 29일인데, 꼭 열흘만이군요. 총리 청문회도 거쳐야 하고 17명 장관도 임명 제청해야 하고 장관들 청문회도 치러내야 내각이 모두 짜일 텐데, 박 당선인이 취임하는 25일까지 다 마무리될는지가 걱정입니다.

주 : 야당쪽에서는 철저한 검증을 벼르고 있으니 내각 구성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고 첫 총리 후보 낙마를 반면 교사 삼아 사전 검증을 철저하게 했다니 쉽게 통과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설날 얘깃거리에 초점을 맞춰보면 왜 하필이면 설 연휴 전날 총리 후보를 지명했을까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역대 최저를 기록한 당선인 지지율 때문에 서둘러 발표했겠다는 분석이 나왔고요, 다음으로는 아무도 인선 못한 이런 상황이 설연휴까지 이어지도록 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있었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헌 : 이미 제기돼 있는 인사 검증에 대한 비판이 설연휴까지 계속되면 곤란하겠지요. 특히 설 추석 같은 명절 연휴는 지역 민심이랑 수도권 민심이 한데 뒤섞이면서 새로운 폭발력을 보이기 십상이죠. 그렇게 되면 박 당선인으로서는 출발부터 큰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두 총리 후보가 모두 법조 출신인 까닭

주 :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한편에서는 낙마한 김용준 총리 후보도 법조인이고 이번 정홍원 총리 후보도 법조인인 데 대해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 후보는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법원 출신이고 부산·광주 지검장과 법무연수원장을 지낸 검찰 출신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헌 : 그렇네요.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질 만하네요. 왜죠? 박 당선인과 어떤 점에서 코드가 맞는 거죠?


주 : 김용준 첫 후보는 이번에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정홍원 이번 후보 또한 지난해 총선 새누리당 공직후보추천위원장을 지냈는데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는 성향이 아니라 당선인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쓴 소리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거죠.

그에 더해 박 당선인은 '법질서 수호'라는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법률을 많이 다뤘고 거기에 잘  길들여진 법조인을 박 당선인이 선호하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설날 연휴 앞두고 안철수 전 후보도 발언

뉴시스 사진.


헌 : 설연휴를 앞둔 시점에서 안철수 전 무소속 대통령 후보도 발언을 했어요. 내용은 간단하지만 이것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따져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캠프 출신 인사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것일 뿐인데도 확 퍼졌어요.

주 : 발언을 하지 않다가 직접 소리를 내니 그렇죠. 정치권 안팎에서는 안 후보 귀국 시기를 두고도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2월에 온다 3월에 온다 등등인데, 4월 초순은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4월 24일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거든요. 이 때 안 후보가 직접 출마하거나 아니면 다른 측근이 출마할 경우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헌 : 물론 이보다 늦은 10월 재보선이나 아니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안철수 정치가 다시 가동되는 시점으로 예측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주 : 모든 가능성이 동원되겠지요. 정치권 설연휴 얘깃거리 가운데 문재인 후보 대선 패배 책임론도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안의 이른바 친노와 비노, 그리고 사퇴한 안철수 후보 세력 등이 얽혀 있는데, 저마다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격론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헌 : 적어도 경남에서는 아닐 것 같은데요. 박근혜 당선인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왔잖아요.

2월 11일 귀갓길 모습. 박근혜 정부 시절이 서민들에게 이렇게 어둡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뉴시스 사진.


주 : 이밖에 국가정보원 여직원 관련 얘깃거리도 풍성합니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지는데다, 여직원 말고 아이디를 빌려 사이버 공간에서 여론 조작을 한 다른 인물도 드러났고 해서 말입니다.

어쨌든 이달 25일 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죠. 그러면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게 됩니다.

이번에 본인이 상징으로 삼고 있는 원칙과 신뢰와 약속이 조금 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쪼록 선서가 박 당선인 임기 내내 제대로 지켜지기를 많은 유권자들이 바라겠죠. 박 당선인도 이를 좀 새긴다면 좋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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