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올해부터 사라지면 참 좋겠는 야권 단일화

김훤주 2013. 2. 20. 15:00
반응형

1. 단일화로 날을 지낸 2012년

2012년은 단일화로 시작해 단일화로 끝났습니다.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 사이에 단일화가 진행됐고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두고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사이에 단일화가 진행됐습니다.


경남의 경우 4·11 총선에서는 16개 선거구 가운데 거제를 뺀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 단일화가 이뤄졌으나 새누리당에 맞선 선거 결과는 김해갑에서만 민주통합당 후보가 이겼습니다.

그리고 거제만 그나마 무소속이 당선(나중에 새누리당 입당)됐고 나머지 모든 지역은 새누리당이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창원 성산구에서는 진보신당 후보가 끝까지 남아 득표 경쟁을 벌였고 거제에서는 진보신당 후보로 단일화가 막판에 이뤄졌습니다.

2012년 3월 20일 야권단일후보 인증서 전달식과 기자회견. 누가 누구를 인증한다는 얘긴지. 나중에 야권단일후보가 안 된 사람도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경남에서는 단일화를 둘러싸고 통합진보당이 패권을 행사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이 상대적으로 세력이 적기 때문이겠습니다. 단일화 자락을 깔았던 이른바 시민사회 진영은 누가 봐도 두드러지게 통합진보당을 편들었습니다.

단일화에 나서지 않은(또는 못한) 진보신당은 어디서나 찬밥 신세였습니다. 진보신당 후보가 강세였던 거제에서는 막판에 통합진보당 후보까지 사퇴했으나 단일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2등(새누리당)조차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단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묻지 마’ 단일화였고 ‘닥치고’ 단일화였습니다. 야권에서는 단일화만 하면 이길 것처럼 난리를 피웠으며 그 결과 정책이나 공약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정책이나 공약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재미도 없고 성과도 없는 야권 단일화

총선에 나타난 단일화 과정은 길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미 전국 대다수 유권자들이 잘 아시는 그대로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단일화 또한 마찬가지 길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사퇴 회견 장면. 경남도민일보 사진.


김두관 도지사 중도 사퇴로 치러진 경남 도지사 보궐 선거 후보 단일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홍준표 새누리당 후보에 맞서 야권에서는 통합진보당 이병하 후보와 민주통합당 공민배 후보, 무소속 권영길 후보가 단일화에 나섰습니다.

공민배 민주통합당 후보는 내부 경선에서 다른 세 후보를 물리치고 선출됐지만 중앙당으로부터 공천장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사퇴했습니다. 중앙당이 이른바 대선 승리를 위해 권영길 후보에게 무조건 양보하라고 강요한 탓이었습니다.

권영길 무소속 후보와 이병하 통합진보당 후보 사이 단일화는 더없이 지리하고 재미없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처음에는 단일화를 하지 않을 것처럼 하다가 단일화에 나섰습니다. 권영길 후보는 단일화 방식과 기준을 놓고 앞서 했던 말을 뒤집었습니다. 지켜보는 과정에서 넌덜머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2012년 11월 26일 어거지로 민주통합당 경남도지사 후보에서 물러난 공민배 선수(오른쪽)와 권영길 무소속 경남도지사 후보. 경남도민일보 사진

2012년 12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는 이병하 통합진보당 경남도지사 후보. 경남도민일보 사진


또 단일화 과정에서는 꼭 시민사회운동단체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자기네들은 고고한 존재인 양 구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치를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지 어정쩡하게 선거판에 기웃거리면서 훈수나 해댔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3. 단일화에 매몰되면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


올해부터는 단일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런 재미없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단일화는 정치를 우스개로 만들고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남깁니다. 또 단일화 과정에서는 정책이나 공약이 실종되기 일쑤입니다.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선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 옆에는 김정권 전직 국회의원. 경남도민일보 사진.


단일화 여부에만 모든 것이 집중됐습니다. 결국은 편 가르기였습니다. 야권과 여권 이렇게 편을 잘 갈라서 상대방 여권 새누리당 후보를 고립시키면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지는 식이었습니다.

단일화는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자기 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가 사퇴하면 선거판에 남은 통합진보당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찍고 싶은 정당이나 후보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요 정당이나 후보가 아니면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4·11총선에서 경남에서는 진보신당이 그랬습니다. 단일화 대상으로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사퇴 압력에만 시달렸습니다.

대선과 경남도지사 보궐 선거에서는 그런 설움을 통합진보당이 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총선 때는 통합진보당이 경남에서 이른바 ‘수퍼 갑’이었으나 도지사 보선 때는 초라한 을의 신세를 톡톡히 겪어야 했습니다.

4. 없애는 방법은 간단한데도 없앨 수 없는 까닭


단일화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답니다. 선거법을 바꿔 결선투표제만 도입하면 됩니다. 여기에 대선거구제까지 채택이 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적극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선에서 2012년 11월 25일 야권 단일 후보로 등록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들 정당에서 중추를 차지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이 결선투표제나 대선거구제가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영남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호남 출신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은 지금 이대로 결선 투표제 없는 소선거구제도 가장 좋습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 후보들을 유권자들이 뽑지 않아야 하는데(특히 영남과 호남에서), 실제로 그럴 개연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 두 정당 말고도 그럴 듯한 정치세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그런 정당과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 텐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제가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보면 진보정당들에게도 그 책임이 없지는 않습니다. 결선투표제와 대선거구제 도입을 공수표로 날리도록 만든 점과, 스스로 자라나지 못한 바람에 유권자들 선택폭을 넓혀 주지 못한 점이 그것입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