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스물 넘게 공짜 커피 베푼 굴 구이 ‘선창카페’

김훤주 2013. 2.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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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금요일 바닷가를 걸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가 만든 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마련한 ‘시내버스 타고 우리 지역 즐기기’ 이벤트였습니다. 손전화 문자메시지 또는 경남도민일보 광고를 보시고 마흔 분 남짓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마산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진동까지 간 다음 광암 바닷가에서 생대구탕을 점심으로 먹은 다음 다구마을까지 걷는 길이었습니다. 원래는 바닷물이 일렁이는 갯가를 따라 걷도록 돼 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산길도 적지 않게 걸었습니다.

일부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고 두 시간 가량 걷는 가운데 변소를 만날 수 없었다는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끄트머리 다구 마을 어항 귀퉁이에 놓여 있는 ‘선창 카페’가 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 줬습니다.

선창카페 내부 모습.


선창 카페가 이름은 카페였지만 실제로는 굴이나 가리비 따위를 굽거나 쪄서 파는 곳이었습니다. 소주나 맥주 같은 술도 함께 팔겠지요. 사람들은 이런 줄 모르고 진짜 커피를 파는 줄 알고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커피 파느냐고 물은 사람도 있었고요, 그보다는 볼일이 급해서 화장실을 물어 찾아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카페 주인은 자칭 ‘황 마담’이셨는데요, 들머리 함지박에 담긴 명함을 보니 황일규씨였습니다.

황 마담은 우리 일행더러 일단 들어오시라고 했습니다. 추운 바깥 날씨에 언 몸이라도 좀 녹이고 가라고 했습니다. 커피를 팔지는 않지만 봉지 커피 한 잔 정도는 그냥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행이 스무 사람이 넘는다고 했는데도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다 들어오시라 했습니다.

먼저 들어와 벽에 걸린 액자들을 둘러보는 일행.

좀 있다 일행들이 따라 들어와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이는 난로에 불을 지피고 나무를 넣어 공간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아울러 고구마를 난로 위에 얹고두고 마음대로 내키는대로 드시라고 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1만원짜리 찌짐이라도 붙여달라 했더니 오늘은 팔지 않는다고 눙쳤습니다. 다음에 한 번 걸음해 주면 그만이지 일부러 사줄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세상에 장사하면서 이런 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화장실을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쓰도록 내어줬습니다. 화장실은 보기와는 달리 손이 많이 갑니다. 누군가 흙발로 들어왔다면 곧바로 더러워집니다. 그러면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장사를 위해 깨끗하게 치워야 합니다.

서둘러 커피를 타고 있는 황 마담의 손길.


봉지 커피, 얼마 하지야 않지만, 이렇게 마음 내어 스물이 넘는 사람들한테 물을 끓여 손수 타 주는 일도 쉬운 노릇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이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난로에 장작을 넣어 온기를 높이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남의 추위에 나름대로 그리 반응을 보이기가 어렵거든요.

느닷없이 들이닥친 일행들과 얘기를 나누는 황 마담. 오른편에 불길이 벌건 난로 위에는 고구마가 놓여 있습니다.

황 마담 덕분에 즐거워진 일행들이 이날 경험을 사진에다 담고 있습니다. 오른쪽 찍어주는 사람은 바로 저랍니다. 동행하신 이채록님 사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고구마를 그렇게 선뜻 내놓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나중에라도 손님으로 끌어보려는 장삿속이라고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장사꾼이 그런 장삿속이라 해도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작으나마 내어놓는 경우가 드문 것 같거든요.

어쨌거나, 저는 이날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얼었던 몸도 곧바로 녹았습니다. 황 마담이 내어놓은 봉지 커피가 따뜻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이가 난로에 올려놓은 달콤한 군고구마가 따뜻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이는 이렇게 폐를 끼치고 가는데 어떻게든 사례하고 싶다면서 제가 내어놓은 1만원짜리 종이돈도 끝까지 받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내민 제 손이 머쓱해졌습니다. 이런 장삿속을 가진 장사꾼이 우리 가까이에 더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도 걸려 있습니다.

화장실 들머리. 왼쪽 아래에는 저승 찬가가 적혀 있습니다.

흰 구름을 뒤에 있는 글자는 '비웃는다'였습니다. 실제 청산은 비웃기조차 않겠지요만.

원래 세상은 이렇겠지요. 때가 묻어 있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그냥 그러함.

이 액자를 보고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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