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역 촛불시위가 평화로운 이유

기록하는 사람 2008. 6. 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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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비해 그 외 지역의 촛불집회와 거리행진은 지극히 평화롭습니다. 경찰이 전혀 가두진출을 저지하거나 강제진압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초반에 잠시 실랑이도 있긴 했습니다. 부산은 5월 3일, 경남은 5월 7일부터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는데, 부산에서 한 때 경찰이 인도를 벗어나거나 교통흐름에 방해가 되는 집회는 불법이라며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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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호해 줍니다.


하지만, 곧이어 서울의 집회가 격화되고 폭력진압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자 입장이 확 바뀌었습니다. 집회는 물론 차도로 진출한 거리행진도 일체 막지 않기로 방침을 바꾼 것입니다. 심지어 헬멧과 방패 등 진압장비를 갖춘 전의경 진압부대도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닭장차도 보이지 않죠.

지난 5일 창원 정우상가 앞에서는 아예 2개 차선을 점거하고 집회를 했습니다. 이 때에도 교통경찰 복장을 한 의경들이 지나가는 차량을 통제하며 집회 참가자를 보호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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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행진 대열의 후미에서도 경찰차량이 에스코트해줍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에 나서도 2개 차선을 확보해주고, 교통의경이 경계선을 따라 걸으며 보호해줍니다. 행렬의 선두에서는 집회를 마련한 대책회의 간부와 경찰 책임자, 그리고 기자들이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행진 대열의 맨 뒤에서는 경찰 차량 2대가 따르며 역시 시위대를 보호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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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현장책임자(왼쪽)와 집회 주최측(뒷짐진 사람)이 대열의 선두에서 사이좋게 걸으며 길을 안내합니다. 두 사람 가운데서 웃고 있는 이는 민중의 소리 기자입니다.


서울 외 지역의 촛불집회와 시위가 이렇게 평화로운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청와대처럼 마지막까지 사수해야 할 중요시설이 다른 지역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1960년 4.19혁명 때 말고는 역사적으로도 청와대 저지선이 뚫린 적은 없다고 합니다. 이 저지선이 무너질 경우, 경찰력은 무력화된 걸로 봐야 하기 때문에 경찰은 필사적으로 막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지역에도 한나라당사나 경찰청사, 도청이나 시청 건물 등이 있지만, 아무래도 상징성이 약합니다. 실제로 부산에서는 서면에서 출발한 거리행진이 부산지방경찰청사 앞으로 향하지만, 청사 안으로 진입하지 않는 이상 그것도 막지 않습니다. 그러면 시위대는 경찰청 앞에서 정리집회를 하고 해산합니다.

경남 창원의 경우, 정우상가에서 한나라당사까지 걷기에는 좀 멉니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많은 상남상업지구를 한바퀴 돌고 오는 걸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역의 진압부대 경찰인력이 대부분 서울로 차출당하다 보니 지역 자체에서 진압할 경찰력이 모자랍니다. 따라서 자칫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남아 있는 인력만으로 진압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 한 곳을 막는데도 급급한 경찰이 전국 각 지역에서까지 진압작전을 벌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서울에 투입된 경찰력의 상당수가 지역으로 분산배치되어야 하고, 그러면 서울도 뚫리고 다른 지역도 뚫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경찰력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 즉 공권력 무력화 상황이라고 하는데, 그 땐 정권이 계엄령을 발동해 군대를 투입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하야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서울 외 지역의 경찰은 시위대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음으로서 충돌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째, 경찰이 굳이 막지 않는데도 시위대가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도발을 하게 되면, 비난여론이 시위대로 향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거리를 지나치게 점거하거나 차량통행을 과도하게 마비시킬 경우에도 비난여론이 시위대로 향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간간이 지역에선 '촛불집회로 인해 교통이 지체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입간판이 눈에 띕니다. 경찰이 내건 것입니다. 이 친절한 입간판을 보는 운전자들은 집회를 막지 않는 경찰을 욕하기 보다, 차량통행을 방해하는 집회 참가자들을 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울 외 지역에서 촛불집회가 거의 무제한 평화롭게 열릴 수 있는 것은 대략 이런 이유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불법일 수도 있는 지역의 촛불집회를 경찰이 막지 않는(또는 못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경찰력 무력화가 상당한 단계까지 진행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어디까지 가게 될까요. 이명박 정부의 경찰, 참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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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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