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대한민국,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다!

기록하는 사람 2008. 6. 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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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4일 부산에 갔습니다. 부산의 한 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갈 일이 있었는데, 내친 김에 부산의 촛불집회 분위기를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리고, 서면 주디스태화 빌딩 앞으로 가봤습니다. 이곳에서 저녁 7시 촛불문화제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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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을 환기시키기 위해 1인시위를 하고 있다는 구슬 양.

오후 5시30분쯤, 집회가 시작되려면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지만 행사를 위한 연단 가설 및 앰프설치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그 인근 지하도 앞에는 한 소녀가 직접 만든 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팻말에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와 7조, 21조와 34조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다가가서 왜 1인시위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른 주장도 하고 싶은 게 많지만, 무엇보다도 기본을 말하고 싶습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습니다. 또 헌법은 모든 국민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이 자유는 허가나 검열을 받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헌법조항에 충실한다면 정권과 경찰이 촛불집회 참석자를 막을 수도 없고 폭력진압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신분을 물어도 되느냐고 했더니, "사직동에 사는 열 여덟 살 구슬입니다. 이름이 외자예요."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젊은 청년남녀 너댓 명이 지나는 시민들을 상대로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7시 여기에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촛불집회가 있습니다. 꼭 참석해주십시오."

유인물은 서울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진압 사진을 담고 있었고, "2008년 6월 1일 새벽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비폭력을 외치는 국민에게 정부는 물대포와 특공대 투입으로 무력진압했습니다."는 글귀와 함께 아랫부분에는 역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본'이 적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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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끝에 모자를 쓰고 서 있는 분이 이상민 씹니다.

촛불집회를 열심히 홍보하는 그들의 뒤에는 유인물 꾸러미와 배낭, 종이가방이 놓여 있었습니다. 갖고온 유인물의 양이 꽤 되어 보였습니다.

한 젊은이에게 "이 유인물들을 어디서 갖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인쇄소에 맡겨서 제작했다"더군요. 얼마나 들었냐고 물었더니 "1만6000부를 찍는데 15만 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비용은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과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신분을 물어도 되느냐고 했더니, 역시 "동아대 학생이고, 스물 일곱 살 이상민"이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1인시위를 하던 18세 구슬 양이나, 유인물을 나눠주던 27세 이상민 씨는 공통적으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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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은 커플도 집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저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일컬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상징어를 내세워 정권을 탈환했다죠? 우리는 지금 그들의 집권 100일도 안 되 '잃어버린 민주주의'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촛불정국의 핵심은 이제 쇠고기나 대미 굴욕외교의 문제보다 '잃어버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분노로 바뀌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촛불집회의 마무리단계에서 사회자가 70~80년대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부르던 노래 [아침이슬]을 함께 부르자고 제안하더군요. 쏟아지는 빗속에서 시민과 학생들은 약간 구슬프면서도 엄숙한 목소리로 '기인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을 합창했습니다. 저도 간만에 함께 불러봤습니다.

그리곤, 취재노트에 이렇게 썼습니다. '시민 학생들,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다.'

대한민국이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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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민주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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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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