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광우병 미국소는 과연 가해자인가

김훤주 2008. 6. 7.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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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날마다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른바 ‘광우병’을 뛰어넘어, 이명박 정부 비판이나, 정권의 집회 시위 폭력 진압 규탄으로 나아간 측면도 큽니다만, 여전히 핵심은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미국산 쇠고기입니다.

광우병 소는 우리를 공격할 의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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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침막의 그림 부분

요즘 이런 ‘광우병’ 국면을 보면서 저는 조금 의심을 품게 됐습니다. 미국 소가 과연 가해자인가? 미국소가 미쳤다는데 과연 맞는가? 우리 지부에서 ‘우리 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는 펼침막을 무료로 나눠주는 운동을 펼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커졌습니다.

저희가 나눠 드리는 펼침막을 보면, 바다 건너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공격하는 품으로 배를 타고 옵니다. 주부는 장바구니를 든 채 진땀만 흘립니다. 저는 핵심을 나름대로 표현했지만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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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 민주노동당의 농민운동가 국회의원 강기갑이, 미국소 수입에 반대하는 단식 농성을 할 때 내걸었던 구호 “미친 소 미친 협상 국민은 미치겠다.”도 나름대로 잘 나타냈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라고 여겼습니다.

중2짜리 우리 딸 현지가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학생주임 선생님한테 쫓겨 들어오면서 가져온 선전물에 나오는 표현도 저는 적당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ASUNARO)가 낸, ‘광우병, 생산된 소들의 분노에 찬 역습’이라는 글입니다.

“쇠고기 축산 자본가들이 저 비용으로 고 이윤을 남겨먹기 위해 소는 ‘생산’되기 시작했고 저 비용을 위해 풀 대신 온갖 항생제와 동물성 사료를 억지로 먹으며 몸조차 돌리지 못할 정도로 좁은 우리 안에서 오물과 함께 살찌워지고 있다. 결국 분노한 소가 우리에게 돌려준 것은 ‘광우병’이라는 재앙이었다. 소는 ‘미친 게’ 아니라 ‘화난 것’이다.”

미국 소는 미치지도, 화나지도 않았다

그럴까요? 소는 과연 미쳤을까요? 아니면 소가 미치지 않았고 화가 나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동물성 사료를 먹은 소들은 단지 ‘광우병’이라는 몹쓸 병에 걸렸고 이를 미국 축산 자본가들이 우리나라에 팔아먹으려고 나섰을 뿐입니다.

미국 소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일 뿐입니다. 동물성 사료를 꾸역꾸역 먹고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불쌍한 존재가 바로 광우병 소입니다. 앞뒤좌우로 몸 돌릴 여유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 팍팍 받으며 뒤룩뒤룩 살만 찌워야 하는 슬픈 존재가 바로 그들입니다.

미국소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미친 소 이미지는 묘한 느낌을 줍니다. 정신 이상이 생겨서, 앞뒤 안 가리고 마구 달려든다는 그런 느낌입니다. 광견병을 떠올리면 아주 알맞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광우병은, 제가 알기로는 소가 미치는 병이 아닙니다. 말만 그렇다 뿐이지 아주 치명적이어서 죽음에 이르지 않고서는 끝이 나지 않는 질병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 초국적 곡물 축산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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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카길이라든지 하는 미국의 축산 자본이 어렴풋하게 가려져 있습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를 여기에 적용하면, ‘미국 병은 미워도 미국 소는 미워하지 말라.’가 될 것입니다. 게다가 죄의 원인이 사람인 때는 많아도, 광우병의 원인이 미국 소인 때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여기서 한 번 따져 보고 싶습니다. 병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저는 자본의 욕심이라고 봅니다. 미국의 거대 축산 자본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소의 천성을 거스르고, 비육(肥育)을 좀더 빨리 하려고 동물성 사료를 먹입니다. 이렇게 먹음으로써 소는 병에 걸립니다. 우리 주부의 진땀은 사실 여기에 까닭이 있습니다.

병에 걸리면 당연히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자빠져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장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저 소들은 얼마나 괴로운 지경일까? 그런 소들한테, 사람을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이 도대체 들기나 할까? 자본은 그러나 이렇게 병든 소들을 팔아먹을 궁리를 합니다.

제가 보기에 광우병 국면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자본의 욕심입니다. 이에 대해 얘기를 집중해야 합니다. 미국 소와 우리는 전혀 대립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립이 상정되면 우리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 소와 우리 인간을 적대 관계로 설정하는 코드가 작동할 수밖에 없으리라 여깁니다.

지금 미국 축산 자본은 뒤에 숨겨져 있다

그리 되면 소와 사람의 공존은 상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자본의 탐욕을 근원에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환경과 생태의 개념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환경(Environment)에서는 인간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인간을 둘러싼 조건이 됩니다. 반면 생태(Ecologie)는 중심이 없습니다. 모든 생물이 똑같은 값어치를 지니고, 나아가 무생물조차 같은 무게와 값어치를 띠는 세상입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자본을 전면에 드러내는 일입니다. 초국적 곡물 축산 자본의 이해 집행인 부시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에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고 있고, 한국 자본의 집행부인 이명박 정부가 이 같은 요구에 순응하고 있다는 측면을 놓치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제는 자본입니다. (미국 초국적 곡물 축산 자본 말고도) 삼성이나 현대 같은 국산 대자본이 광우병 국면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도 한 번 따져볼만합니다. 그이들은, 제가 짐작하기에, 아마도 그래도 수입하는 편이 낫다고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볼 때 광우병 쇠고기 수입은 이른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핵심이고, 이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득을 볼 주체는 우리나라에서는 독점자본밖에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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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을 품으면 적어도 이런 이미지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소가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저 불쌍한 소를, 나중에 우리가 먹더라도, 사는 동안은 소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줘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얘기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쇠고기를 먹을 수 있고, 그래야 자본의 탐욕에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림으로 돌아가 얘기하자면, 우리 주부가 진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앞에, 광우병에 걸린 소가 한 쪽 구석으로 내몰린 채 처량하게 서 있고, USA에다 카길 표지가 새겨진 모자를 눌러쓴 험상궂은 양키 하나가, 옆에서 채찍(시대에 처지는 표현인가요? 핵 미사일 정도로 바꿀까요?)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식으로 바뀌면 알맞겠습니다.

김훤주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유토피아인가,디스토피아인가 상세보기
조지 리처 지음 | 시유시 펴냄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의 원리에 입각한 사 회의 합리화와 그것이 초래하는 불합리성을 맥도날드 화로 명명하고 막스 베버의 합리화 이론에 기초하여 미국사회의 여러 측면-의료,교육,여가,기업,쇼핑,죽음에서 이루어지는 합리화 및 비인간화를 날카롭게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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