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남 지역 12개 시민사회단체들의 2008년 기자회견
2008년 3월 21일 경남 지역 12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당시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한 단체장과 광역의원을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겠다고도 했습니다.
당시 경남도민일보 보도를 따르면 이들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중도사퇴한 도의원과 단체장에 대해 공천 배제는 물론 보궐 선거 비용 책임을 촉구했으나 한나라당은 경남 두 지역구에 도의원 출신을 공천했는데 이는 도민의 신성한 선택을 무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한나라당은 창원을에 강기윤 전 도의원, 진주갑에 최진덕 전 도의원을 공천했었습니다.
이들 단체는 2008년 치러질 보궐 선거 비용을 중도 사퇴한 장본인과 한나라당이 부담해야 한다면서 "주민 대표로서 지방자치 발전과 생활정치 실현을 위해 책임과 의무가 있는 지방의원과 단체장이 직장에 사표를 던지듯 사퇴하는 것은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모두를 철저히 무시한 행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선거 비용을 포함해 유권자들의 정신적 피해와 선거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 등 모든 사회적 비용을 한나라당과 당사자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또 이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땐 이행을 강제하고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려 한다"며 소송 원고인단을 공개 모집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뒤에 별다른 변화가 있지 않았으니 소송이 성공을 하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이 때 이름을 내건 '경남지역 12개 시민사회단체'는 열린사회희망연대,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경남고용복지센터, 경남한살림, 마창진환경운동연합, 통일촌, 창원여성의 전화, 창원청년회, 창원대학교 총학생회,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배달호열사 정신계승사업회, 경남여성연대였습니다.
2.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2008년 논평
앞서서 2008년 2월 12일에는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당시 공동 대표 전점석·한영수·박동철·황광지)는 논평을 내었습니다. 제목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의 명명백백한 공천 심사를 기대한다"였습니다.
여기에서 연대회의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를 향해 임기 중 사퇴한 자치단체장 2명과 도의원 4명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며 공천 배제를 요구했습니다. "다른 선거를 위해 그 직을 포기하는 것은 지방세로 충당하는 거액의 선거자금이 소비될뿐더러 행정력의 낭비이며 선출해 준 유권자 배신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행정 공백과 예산 낭비 등이 예상되기에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회는 선거에 의해 당선된 이후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한 출마자의 공천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당시 경남도민일보 보도를 따르면 (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인 김일식 진주Y MCA 사무총장은 "자치단체장 등 총선 출마를 위한 중도 사퇴자에 대한 이번 입장은 사퇴 당시부터 문제를 제기해온 연장선상의 결정"이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연대회의는 나아가 3월 20일에도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를 공천한 한나라당의 공천을 규탄한다'는 논평을 내어 "한나라당과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는 반드시 보궐선거에 소요되는 비용을 책임져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연대회의는 같은 논평에서 "경남의 2개 지역구에 도의원 출신을 공천한 것은 도민의 신성한 선택을 무시한 것이며, 지방의원 후보자로서 유권자에게 약속한 공약을 팽개친 것을 인정한 것과 같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한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는 어떤 단체들이 소속돼 있을까요? 같은 해 7월 1일치로 나온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문건 '국민건강권을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지지한다'에 보면 모두 23개 단체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3. 4년 뒤 같은 상황인데도 입닫은 서른두 개 단체
거제YWCA·김해YWCA·마산YWCA·진주YWCA·창원YWCA·거창YMCA·김해YMCA·마산YMCA·진주YMCA·창원YMCA·통영YMCA·가톨릭여성회관·거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남장애인부모회·경남여성사회교육원·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경남정보사회연구소·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마창진환경운동연합·밀양참여자치연대·진주기독교윤리실천운동·창녕환경운동연합·경남생명의 숲.
(경남여성회 회장께서 경남여성회는 당시 이미 탈퇴한 상태였다고 알려오셔서 지웠습니다. 이에 따라 작은 제목과 본문에 원래 "서른세 개 단체"라 돼 있었던 대목은 모두 "서른두 개 단체"로 바꾸고 관련 글에서 시민사회단체 갯수를 하나씩 줄였습니다.)
그러니까 넉 달 남짓 앞서 논평을 낼 때도 이들 단체들이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가운데 창녕환경운동연합은 지금 실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봐도 모두 스물두 개가 됩니다.
이처럼 '경남 지역 12개 시민사회단체'와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2008년 당시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한 선출직 공직자의 중도 사퇴는 옳지 않다"고 천명했으며 이를 개별 단체로 따져보면 서른두 개에 이릅니다.(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와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은 중복)
4. 마창진참여자치연대의 1월 10일치 '입장'
그런데 이들 단체는 2012년 1월 현재 같은 상황이 되풀이 일어났는데도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마창진참여자치연대가 있어서 1월 10일치로 "시민과의 신뢰를 저버리는 지방의원 중도 사퇴 자제를 촉구한다"는 '입장'을, 단체 블로그 '문서 자료실'에 올렸습니다.(그런데 올린 시각은 1월 11일 14시 42분이네요.)
마창진참여자치연대의 '입장'도, 문건이 공개된 시점을 따져보면 생색내기라는 비판을 충분히 받을만합니다. 총선 출마를 위한 선출직 공직자의 사퇴 시한은 바로 하루 뒷날인 12일이었으며 하루 앞 10일에는 경남도의회에서 김국권 민주통합당, 손석형 통합진보당, 윤용근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 3명이 이미 사퇴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는 안타깝게도 "최근 지방의회 의원들의 총선 출마를 위한 중도사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방의원 중도사퇴 사태에 대해 지방의원들이 시민과의 약속을 경솔하게 여기는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으므로, 이를 자제할 것을 엄중히 촉구하는 바이다."라고 뒷북을 쳤습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중도 사퇴 논란은 2011년 12월부터 있어 왔는데, 이는 그냥 물밑에서 진행돼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었던 그런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 전체에서 뜨겁게 눈길을 끄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늦었습니다.
5. 4년 전과 지금이 다른 까닭은 뭘까?
게다가 나머지 서른한 단체는 여지껏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입니다. 이처럼 4년 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데도 시민사회단체들이 4년 전과 같은 발언을 되풀이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4년 전에는 총선 출마를 위한 선출직 공직자의 중도 사퇴가 잘못이고 4년이 지난 지금은 총선 출마를 위한 선출직 공직자의 중도 사퇴가 잘못이 아닌 것으로 이들 서른한 단체의 판단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손석형 통합진보당 소속 창원을 선거구 총선 출마 예상자(이제 도의원을 사퇴했으니 이렇게 이를 수밖에 없겠네요.)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렇지 싶습니다. 4년 전에는 중도 사퇴한 사람이 한나라당 일색이었지만 지금은 통합진보당 소속이 한 사람 있다는 점 말고는 다른 것이 없으니까요.
6. 가치의 혼란인가 가치의 폐기인가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둘레에 형성돼 있는 민간 단체들은 이른바 진보적인 이들 단체들이 하는 발언과 행동을 앞으로는 아예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한나라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했을 때는 논평이나 기자회견은 물론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해대면서 반대해 놓고는 통합진보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입을 싹 닫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조금더 근본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대중 또는 지역 주민의 마음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당은 물론 시민사회단체들도 대중 또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정당은 대중 또는 지역 주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고 시민사회단체는 대중 또는 지역 주민을 상대로 운동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침묵 또는 발언에는 대중이나 지역 주민에 대한 배려가 있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네들 이롭고 해롭고에 따랐거나 또는 자기네들 친하고 친하지 않고를 따랐을 뿐이라고 여겨지기 십상인 것입니다.
나중에 대중 또는 지역 주민들은 시민사회단체들을 일러 자기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보고 싶은 일만 본다고 비판을 할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지역 주민 또는 대중들은 시민사회단체들을 일러 상황에 따라 갖다대는 잣대가 달라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고 이야기할는지도 모릅니다.
여태껏 발언을 하지 않은 서른한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지금이라도 좋으니 이번 사태를 두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생각하는지 밝혀주시면 좋겠습니다. 4년 전에는 왜 그렇게 비판을 했고 지금은 왜 그렇게 비판을 하지 않는지도 설득력 있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러지 않아도 대중적 토대가 튼튼하지 못한 우리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가치의 혼란'을 겪으며 자기 설 땅을 더욱 많이 잃어버리고 말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이 사태는 단순한 '가치의 혼란'을 넘어서 어쩌면 '가치의 폐기'로 이어지고 말는지도 모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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