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이 정신분열증세를 뚜렷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매우 심각한 지경이어서 스스로 치료하기는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했다가 저기서는 저렇게 하고 그 때는 저랬다가 이 때는 또 달리 이럽니다. 여기서는 현직 시·도의원이 출마를 위해 사퇴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고 저기서는 선출직이 현직을 사퇴하고 출마하는 데 대해 비판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그 때는 현직 도의원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한 사퇴를 비판하는 데 앞장을 섰고 이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현직을 사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이 말입니다. 그야말로 정신분열증세입니다.
1. 창원을에서는 '그 때'와 '이 때'가 다르고
2011년 12월 14일 경남도의회에서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손석형 현직 도의원. 경남도민일보 사진.
'진보 정치 1번지'라는 창원을 선거구에서는 손석형 경남도의원이 후보로 나섰습니다. 당원투표까지 거쳐서 결정됐다는데 그래서 통합진보당 경남도당은 진보신당을 비롯한 다른 진보진영의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손석형 후보의 정신분열증세가 통합진보당 경남도당에게까지 옮아간 양상입니다. 손석형 후보는 자기와 똑같은 행태를 보인 한나라당 소속 현직 도의원을 향해 4년 전에 엄청나게 비판을 해댔던 전력이 있습니다.
2008년 한나라당의 강기윤 도의원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한 데 대해 지역 주민에 대한 약속을 어겼고 그에 따라 치러지는 보궐 선거 비용은 강기윤 선수가 물어야 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손석형 후보는 바로 그 보궐선거에서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가 선거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당선되면 그렇게 되도록 하는 조례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당선이 됐고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다시 뽑히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손석형 후보가 12월 30일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열린 창원을 진보후보 블로거 합동 인터뷰에서 당시 비판은 전술이었다고 발언했고, 사퇴에 따른 보궐선거 비용을 댈 용의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금전 아니고 다른 것으로 질 수 있다"면서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또 보궐선거가 없으며 동시선거로 치러진다면서 그에 따른 비용 발생은 없다는 투로도 얘기를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선거 관련 법률이 지나치게 허술한 것이 되며 아니라면 손석형 후보가 거짓말까지 한 셈이 됩니다.
2. 창원을과 같은 일이 울산 동구서도 발생하고
통합진보당의 이런 정신분열증세가 창원을에만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프레시안>의 1월 3일 보도를 따르면 "노동자 정치의 상징인 울산 동구에서는 민주노동당 간판으로 당선됐던 이은주 울산시의원이 이미 사퇴서를 내고 예비후보로 등록"했습니다. 이은주 후보는 같은 통합진보당 소속인 노옥희 후보와 경선을 치러야 한답니다.
한 번 더 <프레시안>을 따르면 이은주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 결심은 한나라당의 실정 때문이며 몸을 던져 한나라당 심판에 앞장서겠다는 각오로 출마를 결심하고 주민의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손석형 후보와 견줘 말하자면 그야말로 '난형난제' 수준입니다.
3. 순천은 창원을과 잣대가 다르고
통합진보당의 정신분열증세는 다른 식으로도 확인이 됩니다. 창원을에서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괜찮다고 압도적 다수(손석형 후보의 표현입니다)가 힘을 실어준 결정이 순천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한 대상이 돼 있습니다.
순천에서는 민주통합당 소속 노관규 순천시장이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시장직을 집어던졌는데, 이를 두고 통합진보당이 앞장서서 비판을 해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몰골이 우스꽝스럽습니다.
2011년 12월 24일치 <시사인> 22쪽을 보면 김석 민주노동당 순천시의회 의원 이름으로 '총선 나간다고 시장직 사임, 보궐선거 비용은 본인이 대라'는 칼럼이 실려 있습니다.
"노관규 순천시장이 임기를 절반도 못 채우고 국회의원 출마를 이유로 사임했다. 순천시는 10억원 혈세를 보궐선거 비용으로 써야 한다. 원인자인 노관규 시장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이던 손석형 후보가 2008년에 강기윤 한나라당 도의원에게 했던 말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순천을 경남으로 바꾸고, 시장을 도의원으로 바꾸고, 노관규를 강기윤으로 바꾸고, 금액만 조금 고치면 완전 판박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손석형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는 옛날에 자기가 한 비판을 단순하게 선거 전술이었다고 얘기하면서 태도를 완전히 바꿔 자기 자신이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선출직인 도의원 자리를 집어던지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이라도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한 선출직 사퇴에 대한 비판이 창원에서는 4년 전에만 정당한 일이었고 지금은 단순한 선거 전술이 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비판이 순천에서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당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시사인>에 실린 칼럼을 옮깁니다. "순천 지역 시민단체들은 시청 앞에 텐트를 치고 배상청구 운동을 시작했다. 또 12월 13일 노관규 시장 퇴임식에서는 혈세 낭비 배상 청구 운동을 추진하는 시민단체 회원 50여 명이 나와 '재임 기간에 발생한 지방채무 대책을 따져 묻는 즉석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저는 순천에 있는 통합진보당의 진정성을 억지로라도 믿습니다. 시장직을 때려치운 노관규 후보가 4·11 총선에서 맞서야 할 사람 가운데 하나가 통합진보당 소속인 현직 국회의원 김선동 후보라 해도 저는 통합진보당이 선거 전술로 꼼수를 부린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순천 통합진보당이 맞다면 창원을 통합진보당과 손석형은 틀려야 하고, 창원을 통합진보당과 손석형이 맞다면 순천 통합진보당은 지금 짓거리를 그만둬야 합니다. 그런데도 둘 다 맞다니 이보다 더한 정신분열이 어디 있겠습니까?
4. 중앙당조차 태도가 흐리멍텅하고
이런 착종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에서 나타납니다. 증세도 단일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후보 개인만이 아니라 순천시당원협의회, 경남도당 같이 집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에 여느 정당보다 재빠르게 대처해야 마땅할 텐데도, 중앙당마저 흐리멍텅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국운영위원회의 제3차 회의 2011년 12월 31일 결정 사항입니다.
"선출직 공직자의 사퇴 및 출마와 관련하여 논의한 후, 다음과 같은 입장을 채택함.
<통합진보당 선출직 공직자의 사퇴 및 출마 관련 입장>
당의 전략적 판단을 통한 전국운영위원회의 승인 없이 다른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통합진보당의 선출직 공직자가 사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다."
이 결정을 뒤집어 거꾸로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습니다. "다른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통합진보당의 선출직 공직자가 사퇴하는 것을 당의 전략적 판단을 통해 전국운영위원회가 승인할 수 있다."
비비 꼬아 놓았지만, 딱 잘라 말하자면 선출직 공직자도 사퇴하고 출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에 대한 판단, 선출직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한 사퇴가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적어도 여기 이 결정문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민주통합당보다 못합니다. <프레시안>을 따르면 "1월 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선출직 공직자는 선거에서 선택해 준 지역 주민과의 신뢰 약속을 지키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성실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줄 것을 권고하기로 했"습니다.
'전략적 판단을 통한'이나 '승인 없이' 같은 단서를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통합진보당보다 오히려 낫습니다. 어쨌거나, 총선을 앞두고 나타난 통합진보당의 정신분열증세가, 바야흐로 창원과 울산과 순천에만 머물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김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