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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
부산 극단 새벽의 이성민 연출가가 <철수 사용 설명서>와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고 영감을 받아 대본을 쓴 연극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가 26일 시작됩니다. 원래는 지난 11일 시작하려고 했는데 '극장 시스템 문제로' 이렇게 늦춰졌다고 합니다.
<가난뱅이의 역습>은 저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하고 색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태 전이지 싶은데, 그 때 진지하고 꼼꼼하게 읽지 않아 지금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자취는 별로 없습니다.
어쨌거나 글쓴이 마쓰모토 하지메라는 일본 사람은 1974년생으로 가난뱅이 전문가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유쾌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양극화 사회 일본에 커다란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책은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서바이벌 생활 기술과 가난뱅이의 등골을 빼먹는 사회에 대항하는 반란의 노하우"를 웃음으로 전달합니다.
2.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으셨나요?
하지메는 일본 도쿄 변두리에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열고 스러져가는 상점가를 가난한 젊은이들의 해방구로 만들었습니다. '아마추어의 반란'은 12호점까지 열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고 하는군요.
또 대학 재학 시절에는 '노숙동호회'에 들어가 노숙하는 방법을 골고루 익혔고 '호세(法政)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어 대학의 갖은 규제와 상업화에 대해 다양하고 우스꽝스러운 방법으로 저항했답니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자전거 같은 우리 인생은 자타 공인 가난뱅이란 말씀. 모범수냐 문제아냐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거야. 흐음, 이거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거 아냐?"
"이 책은 격차 사회의 승자 반인 '우등반'을 향하느라 평생 시시껄렁한 일을 해야 하는 노예가 되는 기술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도움을 줄 거야.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우리 가난뱅이 계급의 서바이벌 기술 실용서인 셈이지! 자, 어때? 침 넘어가지 않아?"
"중고품을 사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파는 행동이 곧바로 바가지 씌우는 경제에 대한 저항이 된다는 말이다! 동네 할머니가 '어머, 이거 왜 이렇게 싸' 하고 중고 주전자를 사가는 것이 반체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얼씨구!"
"'롯폰기 힐스를 불바다로!'라는 겁나는 전단지를 시내 각지에 약 1만 장 정도 뿌리면서 사람들에게 참가를 독려했다. 그날 가보니까 경찰이 새까맣게 모여 있었다! 경관과 기동대가 약 400명쯤 되었을까. 멍청이들…. 우린 그저 찌개를 끓여 먹을 뿐이라고요, 찌개!! 한가해도 유분수지!"
하하. 이렇습니다. '롯폰기 힐스를 불바다로!'라 하면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전을 해댄 다음 하지메는 바로 그 날 롯폰기 힐스를 홑몸으로 찾아가 저지선을 치고 있는 경찰을 비집고 들어간 다음 집회·시위가 예정된 장소에서 논로로 불('불바다로!')을 켠 다음 라면을 끓여먹은 것이었습니다. 체제에 대한 상큼한 저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항의 지향점은 이렇습니다. "'히피 코뮌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아나키스트들의 자급자족 공동체?' 하고 질문을 날리는 제군! 어리석은 자여,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가! 그게 아니라 옛날 옛적에 덜 떨어진 장사꾼들이 모여 오순도순 꾸며봤던 널널한 공동체 같은 걸 말하는 거다."
3. 서른 살짜리가 쓴 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
<철수 사용 설명서>는 제가 아직 읽지 않은 책입니다. 2011년 오늘의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는군요. 29살짜리 평범한 취업 준비생 철수가 주인공입니다. 이 사용 설명서를 설명하는 설명서를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평균쯤은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데 철수는 고장이나 불량이란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왔다. 어느 날 철수는 사람들이 멀쩡한 가전제품을 불량품 취급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고장이었던 걸까? 혹시 사람들이 나를 잘못 사용해 왔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철수는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쓰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설명서만 있으면 자신도 불량품이 아닌 정상 제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철수는 설명서를 쓰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던 일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읽다 보면 갈수록 진지해집니다. 저는 별로 진지해지고 싶지 않은데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재미는 있습니다. 비유도 그럴 듯하지만 그 비유에 담겨 있는 절절함이 무심하게 펼쳐져 있어서도 재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그녀들은 철수를 반품할 때마다 사유를 한 가지씩 일러 주었다. 그중 절반 가까운 이유가 '너 변했어.'였다. 상품평에 이런 내용이 올라오자 동의하는 댓글이 한 페이지가 넘었다. '밥솥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쯤 지나니까 냉장고였다.'는 글에 '냉장고인 줄 알았는데 식기세척기였어요.'라는 글이 이어지는 식이었다."
"그런데 '넌 매일 똑같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쩜 하나도 변한 게 없니?'라는 반품 사유도 만만찮았다. '밥솥인 줄 알고 샀는데 진짜 밥솥이더라고요.'부터 시작해서 '이러다간 평생 밥솥일 것 같다.'는 글도 한 페이지쯤은 가볍게 넘겼다."
"철수는 그동안 자신을 선택할 사람이 누구일까에 대해서만 생각해 왔다. 부지런히 청소도 하고, 제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도 하고, 주기적으로 품질 테스트도 받고, 그 모든 게 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씩 미심쩍어졌다."
"철수가 선택을 할 수도, 아니 선택을 아예 받지 않고 살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심지어 구매한 것이 무슨 제품이었는지도 모르거나,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무리하게 사용할 사람이라면 구매자가 없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선택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이쯤 되면 <철수 사용 설명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겠는지, 어떤 생각으로 쓰여졌겠는지가 나름대로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쓴 전석순이라는 사람은 1983년생이라고 합니다. 저보다 딱 스무 살이 젊으시군요. 하하.
4.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와 극단 새벽 이성민 연출가
이성민 연출가는 이 두 작품을 읽고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성민 연출가는 무척 예민합니다. 연극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을 어떻게 짜면 좋은지, 밝음과 어두움을 어떻게 버무리면 좋은지, 멂과 가까움을 어쩧게 갖다 놓으면 좋겠는지를 꼼꼼하게 타산합니다.
제가 이성민 연출가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이성민 연출가가 연출한 연극들은 하나 같이 균형이 잡혀 있었습니다. 주제가 무거우면 분위기가 가벼웠고 관객이 밝으면 무대가 어두웠습니다. 물론 가라앉혀야겠다 싶으면 주제와 분위기가 모두 무거울 때도 있습지요.
저는 기대가 됩니다. 201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저는 극단 새벽의 관객 초대 특별 이벤트 '홍보 콘서트'를 보러 새벽의 무대가 있는 부산 남포동의 소극장 실천 무대에 갔습니다. 저보다 좀더 젊은이를 위해서는 하루 전인 24일 같은 무대를 마련했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함께해온 이들을 위해서는 12월 30일 한 번 더 무대를 마련한다고 했습니다.
이날 무대에는 실제로 연극에서 콘서트를 펼칠 이들이 실제로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달밖에 연습하지 않았다는데, 제가 듣고 보기에는 꽤나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사실보다 극단 새벽의 파격이 좋았습니다.
보통 대부분 극단들은 연말 특수를 맞아 상업 공연을 크리스마스 전후해서는 펼치기 십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극단 새벽은 연말을 젊은이와 30~40대, 그리고 함께 지역에서 운동을 해 온 이들을 위해 바쳤습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말씀이지요. 다른 사정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래서 좋았거든요.
극단 새벽에서는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화자인 '나'가 영희와 철수를 위한 콘서트를 연다. 극중 화자인 '나'는 역할 전환으로 영희의 친구이면서 콘서트를 여는 인물이다.
'나'는 역할 전환으로 '영희'의 일상을 재현(증언)한다. 즉, 화자인 '나'(연기자)가 영희(극중 인물)을 재현하고, 영희에 의해 철수(극중 인물)의 상황이 재구성된다. 그밖의 등장인물들은 콘서트를 진행하는 밴드팀에 의해 재현되는데, 이들이 영희의 가족들과 상황에 따른 인물들을 맡는다."
5. 안철수는 철수가 아니다
그러면 영희는 누구고 철수는 누구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제가 짐작하기에는 철수가 주인공인데 다만 영희를 통해 철수 캐릭터가 표현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철수는 안철수 같은, 박원순을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오르는, 그런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시대 후줄근한 청춘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공연할 때 가서 보면 잘 알수 있겠지요. 하하. 극단 새벽은 이렇게만 말해 놓았습니다.
"영희 18세. 중학교를 마치고 제도교육을 거부하고 홈스쿨을 선택했다. 하루 두세 번 건너편 아파트를 돌며 세탁물을 수거해 상가 세탁소에 가져다주는 아르바이트로 자기 밥값을 하고, 공부 좀 하다 남는 시간엔 '영희의 미주알고주알'이라는 팟캐스트 방송도 하고, 짬짬이 세상 문제에 대해 일인시위놀이로 스트레스를 풀며 하루하루를 산다."
"철수 29세. 영희의 페이스북 친구이며, 영희 아버지의 유지에 따른 신랑감 후보들인 여러 철수들 중 한 명이다. 지방 국립대를 나왔는데 아직 취업을 못해 백수다. 늘 되는 일이 없고 하는 일마다 꼬인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오발탄인 것 같다'고 스스로 주장하다 영희에게 핀잔듣기 일쑤다."
이밖에 영희 엄마, 영희 이모, 영희 삼촌, 그리고 영희가 가장 아끼는 강쥐인 바둑이가 나옵니다. 참, 바둑이는 아무 대사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기 역할이라고 합니다.
2011년 12월 25일, 광복동 거리가 온통 밀려드는 인파로 가득찼을 때 저는 극단 새벽의 홍보 콘서트를 한 시간남짓 듣고 보고 술까지 한 잔 마시면서 극단 새벽에서 놀았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영희였습니다.
영희. 극중 나이와 실제 나이가 같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중학교만 졸업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도 똑같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홈스쿨을 선택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대안학교에 갔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영희의 표정이 좋았습니다. 조금 새침한 느낌을 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무심한 느낌도 풍겼습니다. 목소리는 또래와 마찬가지로 맑았습니다. 이번에 고3이 되는 제 딸이 있는데요, 아직 볼살이 다 빠지지 않았습니다. 영희도 나이는 어리지만 이와 같아서 채 볼살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쩐지 영희가 연극에서 자기 실력보다 훨씬 더 촥촥 감기는 연기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수도 좋았습니다. 철수는 무대 밖에서도 성실했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나르고 술 따위를 사러 가고 막 이랬습니다. 그리고 술잔을 받을 때는 "아, 예!" 이러면서 아주 공손했습니다. 아주 좋은 철수였습니다.
그래서 아직 취직을 못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좋아 다른 사람 시키는 것 모두 거절 못하고 있으니 취직할 틈이 없었겠지요.
이성민 연출가를 볼 때, 그리고 기업이나 자치단체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꿋꿋하게 독립을 지켜온 극단 새벽의 지난 29년 역사를 볼 때 이번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도 틀림없이 좋은 작품이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1월 26일부터 2월 4일까지, 수·목·금·토요일에 합니다. 토요일은 오후 5시 시작이고요, 나머지는 오후 8시 시작입니다. facebook.com/saebyeoknet 또는 saebyeok.communeart.net에 가면 소식과 정보가 있습니다.
6. 철수 사용 설명서와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전화는 051-245-5919입니다. '영희의 미주알고주알' 팟캐스트입니다. "지구에 다시 돌아온 어린 왕자 영희의 팟캐스트, '미주알고주알' 시작합니다. 지구 안 대한민국, 날씨 좋아 땡땡이치기 좋은 날입니다. 학교도, 학원도, 직장도 전부 땡땡이치고 연극이나 보러 가요! 철수 나와라 오버~~~."
청소년은 1만5000원, 일반은 2만2000원입니다. 예매를 하시면 2000원 깎아드립니다. 25% 할인권도 있는데요, 그러면 관람료가 1만6000원으로 줄어듭니다. 모든 좌석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됩니다. 공연 10분 전에 도착하셔야 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면 입장이 안 되거든요.
<가난뱅이의 역습>을 재미나게 읽으신 이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재미있게 읽으신 이들, 모두 이 연극을 보러 오시기 바랍니다. 두 작품이 여기서 어떻게 만나 변주가 될지 궁금하실 테니까요.
<가난뱅이의 역습>도 읽지 않으셨고 <철수 사용 설명서>도 읽지 않으신 분들도 여기 이 연극을 보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이 연극은 아무래도 그 두 작품의 고갱이를 있는 그대로 뽑아내어 새롭게 창조해내는 무대가 될 테니까요.
김훤주
부산 극단 새벽의 이성민 연출가가 <철수 사용 설명서>와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고 영감을 받아 대본을 쓴 연극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가 26일 시작됩니다. 원래는 지난 11일 시작하려고 했는데 '극장 시스템 문제로' 이렇게 늦춰졌다고 합니다.
<가난뱅이의 역습>은 저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하고 색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태 전이지 싶은데, 그 때 진지하고 꼼꼼하게 읽지 않아 지금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자취는 별로 없습니다.
어쨌거나 글쓴이 마쓰모토 하지메라는 일본 사람은 1974년생으로 가난뱅이 전문가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유쾌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양극화 사회 일본에 커다란 소동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책은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서바이벌 생활 기술과 가난뱅이의 등골을 빼먹는 사회에 대항하는 반란의 노하우"를 웃음으로 전달합니다.
2.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으셨나요?
하지메는 일본 도쿄 변두리에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열고 스러져가는 상점가를 가난한 젊은이들의 해방구로 만들었습니다. '아마추어의 반란'은 12호점까지 열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고 하는군요.
또 대학 재학 시절에는 '노숙동호회'에 들어가 노숙하는 방법을 골고루 익혔고 '호세(法政)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어 대학의 갖은 규제와 상업화에 대해 다양하고 우스꽝스러운 방법으로 저항했답니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자전거 같은 우리 인생은 자타 공인 가난뱅이란 말씀. 모범수냐 문제아냐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거야. 흐음, 이거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거 아냐?"
"이 책은 격차 사회의 승자 반인 '우등반'을 향하느라 평생 시시껄렁한 일을 해야 하는 노예가 되는 기술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도움을 줄 거야.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우리 가난뱅이 계급의 서바이벌 기술 실용서인 셈이지! 자, 어때? 침 넘어가지 않아?"
"중고품을 사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파는 행동이 곧바로 바가지 씌우는 경제에 대한 저항이 된다는 말이다! 동네 할머니가 '어머, 이거 왜 이렇게 싸' 하고 중고 주전자를 사가는 것이 반체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얼씨구!"
"'롯폰기 힐스를 불바다로!'라는 겁나는 전단지를 시내 각지에 약 1만 장 정도 뿌리면서 사람들에게 참가를 독려했다. 그날 가보니까 경찰이 새까맣게 모여 있었다! 경관과 기동대가 약 400명쯤 되었을까. 멍청이들…. 우린 그저 찌개를 끓여 먹을 뿐이라고요, 찌개!! 한가해도 유분수지!"
하하. 이렇습니다. '롯폰기 힐스를 불바다로!'라 하면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전을 해댄 다음 하지메는 바로 그 날 롯폰기 힐스를 홑몸으로 찾아가 저지선을 치고 있는 경찰을 비집고 들어간 다음 집회·시위가 예정된 장소에서 논로로 불('불바다로!')을 켠 다음 라면을 끓여먹은 것이었습니다. 체제에 대한 상큼한 저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항의 지향점은 이렇습니다. "'히피 코뮌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아나키스트들의 자급자족 공동체?' 하고 질문을 날리는 제군! 어리석은 자여,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가! 그게 아니라 옛날 옛적에 덜 떨어진 장사꾼들이 모여 오순도순 꾸며봤던 널널한 공동체 같은 걸 말하는 거다."
3. 서른 살짜리가 쓴 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
<철수 사용 설명서>는 제가 아직 읽지 않은 책입니다. 2011년 오늘의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는군요. 29살짜리 평범한 취업 준비생 철수가 주인공입니다. 이 사용 설명서를 설명하는 설명서를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평균쯤은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데 철수는 고장이나 불량이란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왔다. 어느 날 철수는 사람들이 멀쩡한 가전제품을 불량품 취급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고장이었던 걸까? 혹시 사람들이 나를 잘못 사용해 왔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철수는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쓰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설명서만 있으면 자신도 불량품이 아닌 정상 제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철수는 설명서를 쓰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던 일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읽다 보면 갈수록 진지해집니다. 저는 별로 진지해지고 싶지 않은데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재미는 있습니다. 비유도 그럴 듯하지만 그 비유에 담겨 있는 절절함이 무심하게 펼쳐져 있어서도 재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그녀들은 철수를 반품할 때마다 사유를 한 가지씩 일러 주었다. 그중 절반 가까운 이유가 '너 변했어.'였다. 상품평에 이런 내용이 올라오자 동의하는 댓글이 한 페이지가 넘었다. '밥솥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쯤 지나니까 냉장고였다.'는 글에 '냉장고인 줄 알았는데 식기세척기였어요.'라는 글이 이어지는 식이었다."
"그런데 '넌 매일 똑같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쩜 하나도 변한 게 없니?'라는 반품 사유도 만만찮았다. '밥솥인 줄 알고 샀는데 진짜 밥솥이더라고요.'부터 시작해서 '이러다간 평생 밥솥일 것 같다.'는 글도 한 페이지쯤은 가볍게 넘겼다."
"철수는 그동안 자신을 선택할 사람이 누구일까에 대해서만 생각해 왔다. 부지런히 청소도 하고, 제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도 하고, 주기적으로 품질 테스트도 받고, 그 모든 게 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씩 미심쩍어졌다."
"철수가 선택을 할 수도, 아니 선택을 아예 받지 않고 살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심지어 구매한 것이 무슨 제품이었는지도 모르거나,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무리하게 사용할 사람이라면 구매자가 없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선택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이쯤 되면 <철수 사용 설명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겠는지, 어떤 생각으로 쓰여졌겠는지가 나름대로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쓴 전석순이라는 사람은 1983년생이라고 합니다. 저보다 딱 스무 살이 젊으시군요. 하하.
4.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와 극단 새벽 이성민 연출가
이성민 연출가는 이 두 작품을 읽고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성민 연출가는 무척 예민합니다. 연극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을 어떻게 짜면 좋은지, 밝음과 어두움을 어떻게 버무리면 좋은지, 멂과 가까움을 어쩧게 갖다 놓으면 좋겠는지를 꼼꼼하게 타산합니다.
영희 엄마.
제가 이성민 연출가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이성민 연출가가 연출한 연극들은 하나 같이 균형이 잡혀 있었습니다. 주제가 무거우면 분위기가 가벼웠고 관객이 밝으면 무대가 어두웠습니다. 물론 가라앉혀야겠다 싶으면 주제와 분위기가 모두 무거울 때도 있습지요.
인사말을 하는 이성민 연출가.
저는 기대가 됩니다. 201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저는 극단 새벽의 관객 초대 특별 이벤트 '홍보 콘서트'를 보러 새벽의 무대가 있는 부산 남포동의 소극장 실천 무대에 갔습니다. 저보다 좀더 젊은이를 위해서는 하루 전인 24일 같은 무대를 마련했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함께해온 이들을 위해서는 12월 30일 한 번 더 무대를 마련한다고 했습니다.
이날 무대에는 실제로 연극에서 콘서트를 펼칠 이들이 실제로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달밖에 연습하지 않았다는데, 제가 듣고 보기에는 꽤나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사실보다 극단 새벽의 파격이 좋았습니다.
보통 대부분 극단들은 연말 특수를 맞아 상업 공연을 크리스마스 전후해서는 펼치기 십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극단 새벽은 연말을 젊은이와 30~40대, 그리고 함께 지역에서 운동을 해 온 이들을 위해 바쳤습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말씀이지요. 다른 사정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래서 좋았거든요.
극단 새벽에서는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화자인 '나'가 영희와 철수를 위한 콘서트를 연다. 극중 화자인 '나'는 역할 전환으로 영희의 친구이면서 콘서트를 여는 인물이다.
'나'는 역할 전환으로 '영희'의 일상을 재현(증언)한다. 즉, 화자인 '나'(연기자)가 영희(극중 인물)을 재현하고, 영희에 의해 철수(극중 인물)의 상황이 재구성된다. 그밖의 등장인물들은 콘서트를 진행하는 밴드팀에 의해 재현되는데, 이들이 영희의 가족들과 상황에 따른 인물들을 맡는다."
5. 안철수는 철수가 아니다
그러면 영희는 누구고 철수는 누구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제가 짐작하기에는 철수가 주인공인데 다만 영희를 통해 철수 캐릭터가 표현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철수는 안철수 같은, 박원순을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오르는, 그런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시대 후줄근한 청춘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공연할 때 가서 보면 잘 알수 있겠지요. 하하. 극단 새벽은 이렇게만 말해 놓았습니다.
"영희 18세. 중학교를 마치고 제도교육을 거부하고 홈스쿨을 선택했다. 하루 두세 번 건너편 아파트를 돌며 세탁물을 수거해 상가 세탁소에 가져다주는 아르바이트로 자기 밥값을 하고, 공부 좀 하다 남는 시간엔 '영희의 미주알고주알'이라는 팟캐스트 방송도 하고, 짬짬이 세상 문제에 대해 일인시위놀이로 스트레스를 풀며 하루하루를 산다."
"철수 29세. 영희의 페이스북 친구이며, 영희 아버지의 유지에 따른 신랑감 후보들인 여러 철수들 중 한 명이다. 지방 국립대를 나왔는데 아직 취업을 못해 백수다. 늘 되는 일이 없고 하는 일마다 꼬인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오발탄인 것 같다'고 스스로 주장하다 영희에게 핀잔듣기 일쑤다."
이밖에 영희 엄마, 영희 이모, 영희 삼촌, 그리고 영희가 가장 아끼는 강쥐인 바둑이가 나옵니다. 참, 바둑이는 아무 대사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기 역할이라고 합니다.
2011년 12월 25일, 광복동 거리가 온통 밀려드는 인파로 가득찼을 때 저는 극단 새벽의 홍보 콘서트를 한 시간남짓 듣고 보고 술까지 한 잔 마시면서 극단 새벽에서 놀았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영희였습니다.
아직 술과 안주가 오지 않았습니다.
영희. 극중 나이와 실제 나이가 같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중학교만 졸업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도 똑같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에서는 홈스쿨을 선택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대안학교에 갔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영희.
영희의 표정이 좋았습니다. 조금 새침한 느낌을 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무심한 느낌도 풍겼습니다. 목소리는 또래와 마찬가지로 맑았습니다. 이번에 고3이 되는 제 딸이 있는데요, 아직 볼살이 다 빠지지 않았습니다. 영희도 나이는 어리지만 이와 같아서 채 볼살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쩐지 영희가 연극에서 자기 실력보다 훨씬 더 촥촥 감기는 연기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수도 좋았습니다. 철수는 무대 밖에서도 성실했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나르고 술 따위를 사러 가고 막 이랬습니다. 그리고 술잔을 받을 때는 "아, 예!" 이러면서 아주 공손했습니다. 아주 좋은 철수였습니다.
철수.
그래서 아직 취직을 못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좋아 다른 사람 시키는 것 모두 거절 못하고 있으니 취직할 틈이 없었겠지요.
이성민 연출가를 볼 때, 그리고 기업이나 자치단체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꿋꿋하게 독립을 지켜온 극단 새벽의 지난 29년 역사를 볼 때 이번 <노래가 있는 연극 -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도 틀림없이 좋은 작품이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1월 26일부터 2월 4일까지, 수·목·금·토요일에 합니다. 토요일은 오후 5시 시작이고요, 나머지는 오후 8시 시작입니다. facebook.com/saebyeoknet 또는 saebyeok.communeart.net에 가면 소식과 정보가 있습니다.
6. 철수 사용 설명서와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전화는 051-245-5919입니다. '영희의 미주알고주알' 팟캐스트입니다. "지구에 다시 돌아온 어린 왕자 영희의 팟캐스트, '미주알고주알' 시작합니다. 지구 안 대한민국, 날씨 좋아 땡땡이치기 좋은 날입니다. 학교도, 학원도, 직장도 전부 땡땡이치고 연극이나 보러 가요! 철수 나와라 오버~~~."
청소년은 1만5000원, 일반은 2만2000원입니다. 예매를 하시면 2000원 깎아드립니다. 25% 할인권도 있는데요, 그러면 관람료가 1만6000원으로 줄어듭니다. 모든 좌석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됩니다. 공연 10분 전에 도착하셔야 합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면 입장이 안 되거든요.
<가난뱅이의 역습>을 재미나게 읽으신 이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재미있게 읽으신 이들, 모두 이 연극을 보러 오시기 바랍니다. 두 작품이 여기서 어떻게 만나 변주가 될지 궁금하실 테니까요.
<가난뱅이의 역습>도 읽지 않으셨고 <철수 사용 설명서>도 읽지 않으신 분들도 여기 이 연극을 보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이 연극은 아무래도 그 두 작품의 고갱이를 있는 그대로 뽑아내어 새롭게 창조해내는 무대가 될 테니까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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