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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날씨는 흐렸지만 춥지는 않았습니다. 걷기 알맞은 날씨랍니다. 아침 8시 조금 넘어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삼거리 버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8시 20분이 지난 시점에 114-1번 버스가 왔습니다. 8시 50분쯤 함안군 가야읍 가야 농협 중앙회 앞에 내렸습니다.
오늘 걷는 길은 여기서 함안면에 있는 이수정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 도항리 고분군과 함안박물관과 말산리 고분군을 거쳐 함안군청과 가야시장까지 들르는 5km 남짓한 걸음이랍니다.
2. 텅 빈 들판을 가로지르는 은행길
읍내에서 이수정까지 이어지는 79번 국도는 양쪽에 은행나무 가로수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나무는 읍내에서 머리를 짧게 깎였지만 거기 벗어나 들판 언저리로 접어들면 달라집니다. 원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래 된 절간이나 서원 들머리 은행나무처럼 크고 우람하지는 않지만 쭉쭉 시원하게 뻗어 있습니다.
은행 잎사귀들은 노랗게 익었습니다. 노란색의 본성 덕분인지 바라보면 몸과 마음이 함께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지고 환해지는 느낌이 든답니다. 열흘 전만 해도 녀석들은 나무에 매달린 채 그런 느낌을 뿜었겠지만 지금은 바닥에 내려앉아 길손들 발길에 푹신함을 안겨줍니다.
잎을 떨어뜨리고 한편으로는 추운 겨울에도 얼어터지지 않으려고 몸통에서 물기를 최대한 빼내는 양이 2km 가까이 늘어선 은행나무들에서 느껴집니다. 사람에게는 따뜻함과 푸근함과 부드러움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나무에게는 겨울을 나고 새해를 맞는 작업일 따름이겠지요.
삽상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였지만, 바삐 걷노라니 이마에 땀이 조금씩 맺힙니다. 가을에 결실로 가득찼다가 인간에게 통째로 내어준 들판은 한편 넉넉하고 한편 쓸쓸하답니다. 들판 너머로 설핏 나타나는 마을은 안으로 사람들을 감춘 채 편안합니다.
들판에는 며칠 전 비가 내린 때문인지 물이 흥건합니다. 들판 지나 마을 동구에는 잘 생긴 느티나무가 마른 잎을 잔뜩 매달고 있습니다. 거리가 멀다 보니 큰 키가 나지막하게 보입니다. 뒤로 나타나는 야트막한 산등성이는 아늑함을 더해줍니다.(그다지 멋지지는 않습니다.)
찻길에는 한적하지 않을 정도로 차들이 오갑니다. 반면 사람길에는 사람이 없고 낙엽만 가득하답니다. 이수정 가는 길에 마주친 이라고는 자전거 탄 군인 한 명 오토바이 탄 어르신 한 분이 전부였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은행 낙엽은 길바닥뿐 아니라 나무 가운데 까치 둥지 위에도 앉아 있었습니다.
2. 여전한 이수정과 충노대갑지비
이수정 자리는 여전했지만 사람은 여전하지 않았습니다. 정자는 새로 고치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예전에는 없던 너른 공터가 옆에 생겨 있었습니다. 주차장 용도로 만든 모양인데, 평소에는 텅 비어 있기 십상이겠습니다.
충성스러운 노비 대갑을 기리는 빗돌(忠奴大甲之碑)과 아버지와 아들 모두의 절개를 기리는 비각(父子雙絶閣)은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안녕합니다.
정자 앞 못에는 개구리밥 같은 물풀이 잔뜩 덮여 있고 둘러선 나무들은 우람한 몸통으로 마른 잎들을 받쳐들었습니다. 옆구리 괴산재에서는 오랜만에 시제를 지내는 모양인지 댓돌 아래에 신발이 많았습니다.
한 바퀴 두른 다음 왔던 길을 되잡았습니다. 1km정도 걸으면 왼쪽으로 가면 함안 곶감단지가 있다고 알리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여기 삼거리에서 왼쪽 도동마을까지 가는 길에 함안 명품 대봉감을 따는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좀 파시라 말을 건네며 1만 원을 드렸더니 배낭이 가득차도록 감을 줬습니다.(집에 와 헤아려 보니 주먹만한 크기가 모두 21개였습지요.)
3. 상큼한 고분길과 함안박물관
무거워진 배낭을 지고 다시 걷는데 모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고분군에 난 풀을 깎느라 예초기 돌리는 소리였습니다. 일꾼들은 이른 점심을 위해 풀밭에 자리를 폈습니다. 오른쪽 고분 뒤로 길이 있느냐 물었더니 그렇다면서 밥 한 술 뜨고 가라 일러줬습니다. 말만으로도 고마운 넉넉한 인심이었습니다.
고분을 낀 이 길이 함안 가야읍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모양이지요. 햇볕을 가리려고 중무장을 한 중년 여성들이 여럿 오가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옛적 나무꾼들 걸었을 법한 오솔길이었습니다. 길섶에는 억새도 자라고 산국이나 쑥부쟁이 같은 가을꽃도 피어 있어 그럴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다가 세 갈래 길에서 삼기마을이 있다는 왼쪽으로 내려섰습니다. 마을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함안박물관이 나타납니다. 지금 걷는 도항리·말산리 고분군에서 나온 가야 시대 유물이 주로 있답니다. 함안에 있었던 아라가야는 불꽃모양 조각이 있는 토기와 말갑옷으로 이름나 있습지요.
유치원 아이들과 뒤섞여 잠깐 둘러본 다음 말산리 고분군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줄을 세워놓고 사진 찍어 주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이 이를 기억하든 않든 그 느낌은 오래 남을 것입니다.
길은 고분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고분이 자리잡은 데는 다른 데도 대부분 그렇지만 여기도 참 아늑합니다. 게다가 가야 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기까지 합니다.
4. 가야시장에서 만난 별난 농주
삼일운동기념탑과 군청을 지나 다시 시가지로 들어섰습니다. 왼쪽으로 틀어 철로를 지나 가야시장에 들었습니다. '토속 막걸리'를 판다는 진이식당(055-582-7663) 간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안에 들어가 차림표를 보니 거기에는 '농주'라고 적혀 있습니다.
6000원짜리 명태전 하나랑 농주 한 되(5000원)를 주문했습니다. 고두밥을 쪄서 누룩과 함께 집에서 담근 술이라 했습니다. 농주는 맛이 독특했습니다. 처음 머금는 맛은 텁텁한데 넘기고 나서는 입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깨끗해 부담이 없었습니다.
오후 2시 10분 즈음에 일어나 도롯가로 나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10분 남짓 지나니 252-2번 시내버스가 달려왔습니다. 창원과 함안을 오가는 114-1번과 252-2번은 자주 다니는 편이라고 합니다.
김훤주
오늘 걷는 길은 여기서 함안면에 있는 이수정까지 갔다가 돌아오면서 도항리 고분군과 함안박물관과 말산리 고분군을 거쳐 함안군청과 가야시장까지 들르는 5km 남짓한 걸음이랍니다.
2. 텅 빈 들판을 가로지르는 은행길
읍내에서 이수정까지 이어지는 79번 국도는 양쪽에 은행나무 가로수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나무는 읍내에서 머리를 짧게 깎였지만 거기 벗어나 들판 언저리로 접어들면 달라집니다. 원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래 된 절간이나 서원 들머리 은행나무처럼 크고 우람하지는 않지만 쭉쭉 시원하게 뻗어 있습니다.
은행 잎사귀들은 노랗게 익었습니다. 노란색의 본성 덕분인지 바라보면 몸과 마음이 함께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지고 환해지는 느낌이 든답니다. 열흘 전만 해도 녀석들은 나무에 매달린 채 그런 느낌을 뿜었겠지만 지금은 바닥에 내려앉아 길손들 발길에 푹신함을 안겨줍니다.
잎을 떨어뜨리고 한편으로는 추운 겨울에도 얼어터지지 않으려고 몸통에서 물기를 최대한 빼내는 양이 2km 가까이 늘어선 은행나무들에서 느껴집니다. 사람에게는 따뜻함과 푸근함과 부드러움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이 나무에게는 겨울을 나고 새해를 맞는 작업일 따름이겠지요.
삽상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였지만, 바삐 걷노라니 이마에 땀이 조금씩 맺힙니다. 가을에 결실로 가득찼다가 인간에게 통째로 내어준 들판은 한편 넉넉하고 한편 쓸쓸하답니다. 들판 너머로 설핏 나타나는 마을은 안으로 사람들을 감춘 채 편안합니다.
들판에는 며칠 전 비가 내린 때문인지 물이 흥건합니다. 들판 지나 마을 동구에는 잘 생긴 느티나무가 마른 잎을 잔뜩 매달고 있습니다. 거리가 멀다 보니 큰 키가 나지막하게 보입니다. 뒤로 나타나는 야트막한 산등성이는 아늑함을 더해줍니다.(그다지 멋지지는 않습니다.)
찻길에는 한적하지 않을 정도로 차들이 오갑니다. 반면 사람길에는 사람이 없고 낙엽만 가득하답니다. 이수정 가는 길에 마주친 이라고는 자전거 탄 군인 한 명 오토바이 탄 어르신 한 분이 전부였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은행 낙엽은 길바닥뿐 아니라 나무 가운데 까치 둥지 위에도 앉아 있었습니다.
2. 여전한 이수정과 충노대갑지비
이수정 자리는 여전했지만 사람은 여전하지 않았습니다. 정자는 새로 고치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예전에는 없던 너른 공터가 옆에 생겨 있었습니다. 주차장 용도로 만든 모양인데, 평소에는 텅 비어 있기 십상이겠습니다.
충성스러운 노비 대갑을 기리는 빗돌(忠奴大甲之碑)과 아버지와 아들 모두의 절개를 기리는 비각(父子雙絶閣)은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안녕합니다.
정자 앞 못에는 개구리밥 같은 물풀이 잔뜩 덮여 있고 둘러선 나무들은 우람한 몸통으로 마른 잎들을 받쳐들었습니다. 옆구리 괴산재에서는 오랜만에 시제를 지내는 모양인지 댓돌 아래에 신발이 많았습니다.
한 바퀴 두른 다음 왔던 길을 되잡았습니다. 1km정도 걸으면 왼쪽으로 가면 함안 곶감단지가 있다고 알리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여기 삼거리에서 왼쪽 도동마을까지 가는 길에 함안 명품 대봉감을 따는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좀 파시라 말을 건네며 1만 원을 드렸더니 배낭이 가득차도록 감을 줬습니다.(집에 와 헤아려 보니 주먹만한 크기가 모두 21개였습지요.)
3. 상큼한 고분길과 함안박물관
무거워진 배낭을 지고 다시 걷는데 모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고분군에 난 풀을 깎느라 예초기 돌리는 소리였습니다. 일꾼들은 이른 점심을 위해 풀밭에 자리를 폈습니다. 오른쪽 고분 뒤로 길이 있느냐 물었더니 그렇다면서 밥 한 술 뜨고 가라 일러줬습니다. 말만으로도 고마운 넉넉한 인심이었습니다.
인심이 넉넉했던 고분 풀 깎는 이들의 점심 먹는 자리.
고분을 낀 이 길이 함안 가야읍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모양이지요. 햇볕을 가리려고 중무장을 한 중년 여성들이 여럿 오가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옛적 나무꾼들 걸었을 법한 오솔길이었습니다. 길섶에는 억새도 자라고 산국이나 쑥부쟁이 같은 가을꽃도 피어 있어 그럴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다가 세 갈래 길에서 삼기마을이 있다는 왼쪽으로 내려섰습니다. 마을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함안박물관이 나타납니다. 지금 걷는 도항리·말산리 고분군에서 나온 가야 시대 유물이 주로 있답니다. 함안에 있었던 아라가야는 불꽃모양 조각이 있는 토기와 말갑옷으로 이름나 있습지요.
박물관 들머리에 있는 고인돌. 알구멍(性穴)이 많이 나 있습니다. 비에 젖어 아직 마르지 않아 짙은 색이 보입니다.
유치원 아이들과 뒤섞여 잠깐 둘러본 다음 말산리 고분군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줄을 세워놓고 사진 찍어 주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이 이를 기억하든 않든 그 느낌은 오래 남을 것입니다.
길은 고분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고분이 자리잡은 데는 다른 데도 대부분 그렇지만 여기도 참 아늑합니다. 게다가 가야 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기까지 합니다.
4. 가야시장에서 만난 별난 농주
삼일운동기념탑과 군청을 지나 다시 시가지로 들어섰습니다. 왼쪽으로 틀어 철로를 지나 가야시장에 들었습니다. '토속 막걸리'를 판다는 진이식당(055-582-7663) 간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안에 들어가 차림표를 보니 거기에는 '농주'라고 적혀 있습니다.
6000원짜리 명태전 하나랑 농주 한 되(5000원)를 주문했습니다. 고두밥을 쪄서 누룩과 함께 집에서 담근 술이라 했습니다. 농주는 맛이 독특했습니다. 처음 머금는 맛은 텁텁한데 넘기고 나서는 입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깨끗해 부담이 없었습니다.
오후 2시 10분 즈음에 일어나 도롯가로 나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10분 남짓 지나니 252-2번 시내버스가 달려왔습니다. 창원과 함안을 오가는 114-1번과 252-2번은 자주 다니는 편이라고 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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