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10월 25일 낮 12시 20분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언양 석남사 가는 버스를 3900원 주고 탔습니다. 타기에 앞서 점심거리로 떡볶이와 순대를 4000원어치 샀겠지요. 맨 뒷자리에 앉아 소주와 함께 먹었습니다. 얼음골 들머리까지는 50분정도 걸렸는데요, 내릴 때는 먹을거리들이 거의 사라져 있었답니다.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다리를 건넙니다. 오르막이 짧았습니다. 이런 길이 여태 남아 있다니 신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행정에서조차 쓰는 이름이 '얼음골 옛길'이네요. 저 아래 얼음골과 호박소로 이르는 아스팔트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얼음골을 찾는 자동차들이 이 좁은 콘크리트길로 다녔을 것입니다.
양쪽으로는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쑥부쟁이나 산국 같은 들풀이 차지한 길섶도 적지 않습니다. 가다 보면 들풀도 나무도 사라지고 전국에 이름난 '얼음골 사과'를 넘치도록 매단 과수원들이 줄곧 이어진답니다.
바람이 살짝 불면 달콤하고 향기로운 사과 냄새가 코 끝을 간질입니다. 승용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년 서넛이 내려 '우와!' 하면서 잘 익은 사과 바로 밑에다 '폰카'를 갖다댑니다. 지나가던 저이들 눈에 아름다워 보였던 모양입니다.
멀리 산들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단풍이 행군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위쪽조차 단풍이 짙지는 않았습니다. 누런 기색이 많고 붉은 기색은 드물었지요. 가을 가뭄이 길었던 탓인지 나뭇잎 거뭇거뭇 말라버린 자취도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얼음골 옛길'은 무척 한적하답니다. 걸어가는 한 시간 30분 동안 지나친 차량은 여덟 대가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사과밭 드나드는 작업용이 대부분이었지요.
물론 전체 길이 4.6km 가운데 3km 남짓한 데 있는 동명마을회관부터는 차량 통행이 많아졌습지요. 그렇다 해도 번잡스러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토록 호젓한 길은 강이나 바닷가 둑길이 아니면 드문 현실이지요.
들머리에서는 다람쥐와 노니는 즐거움도 누렸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꺼리지도 않았습니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갖은 모양을 보여줬습니다. 뱅뱅 돌기도 하고 고개를 숙여 무엇인가 갉아먹기도 했답니다. 고개를 바쁘게 돌릴 때도 있었고 한참을 숙인 채 무엇인가 물어뜯기도 했습니다.
이쪽저쪽으로는 사과밭이 줄곧 나타납니다. 사과밭은 단감밭이랑 느낌이 비슷하답니다. 이를테면 정겨운 시골 정취가 나는 대신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에서 사람들 먹고살기 위한 바둥거림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열매는 말 그대로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렸습니다. 아마도, 자연 상태에서는 저토록 심하게 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따기 쉽도록 가지는 죄다 아래쪽으로 굽어져 있습니다.
나무 아래 바닥에는 대부분 은박지가 깔려 있습니다. 위쪽은 물론 아래쪽까지 사과에 골고루 붉은색이 들라고 깔아놓은 은박지입니다. 원래 사과는 위쪽은 붉어도 아래쪽은 조금 푸른 기운이 남는답니다. 그런데 사과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골고루 붉어서 이른바 '때깔'이 좋은 녀석을 좋아하니까 '생산'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을 하는 것이겠지요.
한적한 이 길에 질리도록 이어지는 사과밭입니다. 같은 사과로 이름난 거창이나 함양에서도 이렇게 펼쳐져 있는 사과밭은 보지 못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언덕 비탈은 물론이고 저 멀리 동천 너머에까지 사과밭이 온통 널렸습니다.
잎이 많이 져서 멀리서 보면 과수원이 통째로 거뭇거뭇한데 자세히 눈여겨보면 조그맣게 붉은 빛이 은은하답니다. 익어가는 사과 때문입니다.
마을회관 있는 데서부터는 시골 마을 풍경도 나타난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방망이로 콩대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햇살은 고왔습니다.
한 집에서는 바깥양반이 커다란 양은솥 아궁이에다 불을 때고 있습니다. 안에 여물이 들어 있는 모양인지 구수한 냄새가 났습니다. 고부지간으로 짐작되는, 적게 늙고 많이 늙은 할머니 둘은 마당에 널린 콩대에서 이파리를 따 모읍니다.
마을을 지나면 다시 사과밭이랍니다. 아스팔트로 이어지는 큰길로 나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꼬부라지는 콘크리트길을 줄곧 따라갔습니다. 사과밭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느낌입니다. 이 길도 끝에서는 아스팔트 도로가 마중합니다. 큰길로 나서면 얼음골 사과를 파는 가판대와 마주치지요.
버스 정류장에는 남명초등학교가 바로 붙어 있습니다. 정문은 통째로 잠겨 있고 가운데 난 조그만 쪽문만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 왼쪽에는 스쿨버스 드나드는 옆문이 트여 있습니다.
여기 학교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과 책읽는 소녀와 반공소년 이승복에 더해서,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던 유정 사명대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고장 출신으로 밀양 표충사에 모셔진 인물이기 때문이겠습니다.
정문 앞 책읽는 소녀는 지금 읽는 책이 만화책쯤 되는 모양인지 웃음이 야릇하고요, 건물 정면 오른쪽 보통 학교에서는 이순신 장군 자리에 들어선 사명대사는 얼굴이랑 옷 매무새가 투박합니다. 마치 초등학생 스케치북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다고나 할까요.
사명대사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고 운동장 한 쪽 구석으로 옮겨간 이순신은 어리숙한 중학생마냥 표정이 순진했습니다. 사명대사가 자기 자리 차지한 데 대해 전혀 불만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지요.
학교 뒤쪽 동천 물가에는 잘 자란 소나무들이 빙 둘러서 있습니다. 경주의 신라 왕릉 둘레 솔밭 같은 품격을 자못 내뿜습니다. 이 학교 아이들은 무척 복 받았지 싶습니다. 교실에 앉아서도 은은하게 삼림욕을 할 수 있으니까 말씀입니다.
오후 4시 40분 석남사에서 나오는 버스를 받아탔습니다. 3500원을 냈습니다. 갈 때와 달리 돌아올 때는 속도를 좀 내는 버스였습니다. 5시 15분 언저리에, 나른한 기운을 머금은 채로 막 어둠이 옅게 깔리고 있는 터미널에 내렸습지요.
김훤주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다리를 건넙니다. 오르막이 짧았습니다. 이런 길이 여태 남아 있다니 신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행정에서조차 쓰는 이름이 '얼음골 옛길'이네요. 저 아래 얼음골과 호박소로 이르는 아스팔트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얼음골을 찾는 자동차들이 이 좁은 콘크리트길로 다녔을 것입니다.
양쪽으로는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쑥부쟁이나 산국 같은 들풀이 차지한 길섶도 적지 않습니다. 가다 보면 들풀도 나무도 사라지고 전국에 이름난 '얼음골 사과'를 넘치도록 매단 과수원들이 줄곧 이어진답니다.
바람이 살짝 불면 달콤하고 향기로운 사과 냄새가 코 끝을 간질입니다. 승용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년 서넛이 내려 '우와!' 하면서 잘 익은 사과 바로 밑에다 '폰카'를 갖다댑니다. 지나가던 저이들 눈에 아름다워 보였던 모양입니다.
멀리 산들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단풍이 행군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위쪽조차 단풍이 짙지는 않았습니다. 누런 기색이 많고 붉은 기색은 드물었지요. 가을 가뭄이 길었던 탓인지 나뭇잎 거뭇거뭇 말라버린 자취도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얼음골 옛길'은 무척 한적하답니다. 걸어가는 한 시간 30분 동안 지나친 차량은 여덟 대가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사과밭 드나드는 작업용이 대부분이었지요.
물론 전체 길이 4.6km 가운데 3km 남짓한 데 있는 동명마을회관부터는 차량 통행이 많아졌습지요. 그렇다 해도 번잡스러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토록 호젓한 길은 강이나 바닷가 둑길이 아니면 드문 현실이지요.
들머리에서는 다람쥐와 노니는 즐거움도 누렸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꺼리지도 않았습니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갖은 모양을 보여줬습니다. 뱅뱅 돌기도 하고 고개를 숙여 무엇인가 갉아먹기도 했답니다. 고개를 바쁘게 돌릴 때도 있었고 한참을 숙인 채 무엇인가 물어뜯기도 했습니다.
이쪽저쪽으로는 사과밭이 줄곧 나타납니다. 사과밭은 단감밭이랑 느낌이 비슷하답니다. 이를테면 정겨운 시골 정취가 나는 대신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들에서 사람들 먹고살기 위한 바둥거림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열매는 말 그대로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렸습니다. 아마도, 자연 상태에서는 저토록 심하게 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따기 쉽도록 가지는 죄다 아래쪽으로 굽어져 있습니다.
나무 아래 바닥에는 대부분 은박지가 깔려 있습니다. 위쪽은 물론 아래쪽까지 사과에 골고루 붉은색이 들라고 깔아놓은 은박지입니다. 원래 사과는 위쪽은 붉어도 아래쪽은 조금 푸른 기운이 남는답니다. 그런데 사과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골고루 붉어서 이른바 '때깔'이 좋은 녀석을 좋아하니까 '생산'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을 하는 것이겠지요.
한적한 이 길에 질리도록 이어지는 사과밭입니다. 같은 사과로 이름난 거창이나 함양에서도 이렇게 펼쳐져 있는 사과밭은 보지 못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언덕 비탈은 물론이고 저 멀리 동천 너머에까지 사과밭이 온통 널렸습니다.
건너편 산기슭 아래쪽도 온통 사과밭이랍니다.
잎이 많이 져서 멀리서 보면 과수원이 통째로 거뭇거뭇한데 자세히 눈여겨보면 조그맣게 붉은 빛이 은은하답니다. 익어가는 사과 때문입니다.
마을회관 있는 데서부터는 시골 마을 풍경도 나타난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방망이로 콩대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햇살은 고왔습니다.
마을 들머리 평상이 놓인 풍경.
바깥양반은 감나무 아래에 있습니다.
한 집에서는 바깥양반이 커다란 양은솥 아궁이에다 불을 때고 있습니다. 안에 여물이 들어 있는 모양인지 구수한 냄새가 났습니다. 고부지간으로 짐작되는, 적게 늙고 많이 늙은 할머니 둘은 마당에 널린 콩대에서 이파리를 따 모읍니다.
마을을 지나면 다시 사과밭이랍니다. 아스팔트로 이어지는 큰길로 나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꼬부라지는 콘크리트길을 줄곧 따라갔습니다. 사과밭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느낌입니다. 이 길도 끝에서는 아스팔트 도로가 마중합니다. 큰길로 나서면 얼음골 사과를 파는 가판대와 마주치지요.
버스 정류장에는 남명초등학교가 바로 붙어 있습니다. 정문은 통째로 잠겨 있고 가운데 난 조그만 쪽문만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 왼쪽에는 스쿨버스 드나드는 옆문이 트여 있습니다.
여기 학교에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과 책읽는 소녀와 반공소년 이승복에 더해서,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이었던 유정 사명대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고장 출신으로 밀양 표충사에 모셔진 인물이기 때문이겠습니다.
정문 앞 책읽는 소녀는 지금 읽는 책이 만화책쯤 되는 모양인지 웃음이 야릇하고요, 건물 정면 오른쪽 보통 학교에서는 이순신 장군 자리에 들어선 사명대사는 얼굴이랑 옷 매무새가 투박합니다. 마치 초등학생 스케치북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다고나 할까요.
유정 사명대사 |
충무공 이순신 장군 |
사명대사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고 운동장 한 쪽 구석으로 옮겨간 이순신은 어리숙한 중학생마냥 표정이 순진했습니다. 사명대사가 자기 자리 차지한 데 대해 전혀 불만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지요.
학교 뒤쪽 동천 물가에는 잘 자란 소나무들이 빙 둘러서 있습니다. 경주의 신라 왕릉 둘레 솔밭 같은 품격을 자못 내뿜습니다. 이 학교 아이들은 무척 복 받았지 싶습니다. 교실에 앉아서도 은은하게 삼림욕을 할 수 있으니까 말씀입니다.
오후 4시 40분 석남사에서 나오는 버스를 받아탔습니다. 3500원을 냈습니다. 갈 때와 달리 돌아올 때는 속도를 좀 내는 버스였습니다. 5시 15분 언저리에, 나른한 기운을 머금은 채로 막 어둠이 옅게 깔리고 있는 터미널에 내렸습지요.
김훤주
반응형
'가본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해갯벌보다 남해갯벌이 풍성한 까닭 (0) | 2011.11.15 |
---|---|
주남저수지, 제대로 한 번 봐얄텐데... (2) | 2011.11.14 |
우포늪은 비올 때 찾아도 좋더라 (12) | 2011.11.03 |
영월 장터서 맛본 메밀과 감자의 참 맛 (10) | 2011.11.02 |
등산의 묘미 제대로 느낀 합천 모산재 (1) | 2011.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