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진영 봉하마을은 노무현 대통령을 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곳이지요. 16대 대통령을 지내다가 2008년 퇴임하고 나서 돌아온 고향 마을입니다. 그이는 여기서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화포천을 비롯한 생태 보전에 힘을 보탰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본 묘역. 사진만큼이나 흐리고 답답한 현실입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와 밀짚 모자를 쓰고 다니며 개울에 몸소 들어가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이, 그이 앞에는 없었고 앞으로 적어도 5년 안에는 있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런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1년 남짓만인 2009년 5월 23일 새벽 고향 마을 뒤편 봉화산에 올라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그이 잘잘못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당시 그렇게까지 검찰이 수사를 벌였어야 했다고 여기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그이의 서거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넘쳐났고요, 생전에 보여줬던 그이의 소탈하고 진정어린 행동을 기리는 이들까지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정치적으로는 그이와 철학이 다른 이들도 매우 많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 만든 봉하 마을 너른 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 와서 하얀 국화 한 송이씩을 들고 옷섶을 여미며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습니다.
이번 나들이의 출발점은 바로 이 묘역입니다. 그런데 출발점에 서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없었어도 여기 봉하 마을과 화포천 일대 습지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좋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와 되살리고 가꾸려고 애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여기서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올라가다가 비스듬히 누운 마애불을 곁눈질한 다음 부엉이바위에 들릅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리저리 난 자드락 산길을 따라 다니다 마을 출신 선진규 법사가 1959년 시작한 농촌 계몽 운동의 자취가 온전하게 녹아 있는 정토원을 거칩니다.
이어서 들르는 데는 호미 든 관음상이 있는 산마루입니다. 그러고는 내려오면서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들어 소나무와 편백나무와 갈대가 우거져 있는 오솔길로 들어섭니다.
산길이 끝나는 데서 왼쪽으로 잡아들면 화포천 습지 풍경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일단 오른쪽으로 들어선 다음 '대통령의 길'이라고 이름이 붙은 화포천 둘레길을 따라 돌아가야 한답니다.
그렇게 해서 줄곧 가다가 화포천을 가로지르는 대통령의 길을 벗어나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습지 풍경이 이어지다가 활터가 나타나고 한림면 소재지와 마주치게 됩니다.
날씨가 흐린 가운데 11월 22일 마산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진영으로 가는 오전 10시 30분발 버스(1800원)를 탔습니다. 30분 남짓 걸려 진영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하나에 400원 하는 어묵을 먹고 있으려니 봉하마을에 들어가는 10번 시내버스가 왔습니다. 15분 정도 지나 봉하마을에 닿았지요.
올 들어 몇 차례 들른 적이 있는 터라 다른 데는 가지 않고 묘역에만 잠시 머물렀다가 돌아나와 길가에 늘어선 가게 가운데 '봉하 외할머니'에 들어갔습니다. 외할머니는 젊은 편이었습니다.
국수 한 그릇, 두부김치 한 판, 동동주 한 통을 주문했습니다. 국수도 그럴 듯했고 국산콩으로 만든 두부김치는 맛이 좋았으며 찹쌀과 누룩으로 몸소 담갔다는 동동주는 개운했습니다. 동동주는 주문한대로가 아니라 마시다 남기면 마신 만큼만 값을 치르도록 돼 있는 점도 좋았답니다.
이런 느긋함이 시내버스 타고 다니는 매력입니다. 자동차를 가져왔으면 술 마시기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이렇게 앉아 술을 마시며 '젊은 외할머니'랑 이런저런 얘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12시 30분 즈음 봉화산에 오르기 시작했답니다. 길은 가파르지 않았습니다. 설렁설렁 가다 보면 곧바로 가로 누워 있는 미륵불이 나타납니다. 왼손을 밑으로 내밀고 오른손은 배꼽에 갖다댄 석가모니 부처라고 합니다.
이를 두고 해방 이후 새로 만들어진 전설이 있습니다. 나자빠져 있는 이 부처님이 벌떡 일어나면 통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남북 평화 협력 노력이 떠오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부엉이바위가 나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한 여기에 하얀 국화 한 송이가 놓여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아래 있는 묘역과 마을과 들판들을 눈에 담습니다. 묘역을 지키는 경찰과 참배객이 조그맣게 움직입니다.
정토원을 지나 호미 든 관음상으로 오릅니다. 관음상은 원래 약병과 보리수만 들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약병과 보리수는 왼손에 몰아들고 오른손으로는 호미를 쥐었습니다. 황폐해진 농촌을 풍요롭게 일구겠다는 뜻이 호미에 담겼습니다.
여기 오르면 김해 전체가 사방으로 내려다 보입니다. 봉화산을 두고 사람들이 낮으면서도 높은 산이라 일컫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공장이 곳곳에 박혀 있어 썩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저기 공장들은 이런저런 환경 문제도 일으킬 텐데, 어떻게 저리도 함부로 들어서도록 했는지 모르겠다 싶습니다.
이어지는 편백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길은 느낌이 아주 신선합니다. 나무가 내뿜는 산뜻한 기운이 머리와 몸으로 스며듭니다. 숲이 끝나는 즈음부터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아마도 원래는 논이었다가 묵혀둔 땅이지 싶은데 산 속에서 습지 풍경을 보이고 있습니다.
화포천은 이제 겨울철새들이 곳곳에 둥지를 튼 모양입니다. 철새들 내는 소리가 시끄러울 지경이었지요. 철새들 놀라 푸드득 날아오르는 소리에 걷는 발걸음이 괜스레 미안해집니다.
지난 여름 푸름을 자랑하던 양버들들은 여전히 높은 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렇게 양버들이 없었다면 화포천 둘레길이 조금은 밋밋했을 것 같습니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입니다. 어떤 이는 쌍쌍으로 데크에 기대어 얘기를 나누고 어떤 이는 개를 데리고 나와 함께 노닙니다.
김장 배추를 거둬 가는 중년 농꾼 부부도 있었답니다. 지아비는 배추가 잔뜩 실린 경운기를 몰고 지어미는 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갑니다. 그러다 울퉁불퉁한 길 탓에 배추 짐이 균형을 잃을라치면 지어미가 달려가 쏠리는 쪽을 힘껏 토닥입니다.
저는 이 날도 이렇게 노닐다가 2시 40분 정도에 56번 시내버스를 타고 진영시외버스터미널로 나와 마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답니다. 아주 개운한 나들이였답니다. 봉하마을만 둘러보고 돌아가면, 봉화산만 올라보고 돌아가면 이런 개운함에 이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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