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청도 감나무 풍경에 고향집이 생각났다

김훤주 2011. 11. 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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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제가 살던 경남 창녕군 유어면 한터의 고향집은 정동향(正東向)이었습니다. 동쪽에는 멀리 화왕산이 솟아 있는데, 여기서 치뜨는 해가 아침이면 늘 방안을 환하게 밝히곤 했습니다.

창호지를 바른 창문이었는데요, 옛날에는 거기 사람 앉은 눈높이 정도에 조그만 유리를 한 토막 집어넣어 방문을 열지 않고도 바깥을 살필 수 있도록 돼 있었지요. 그런데 여기로 들어온 햇빛이 잠자는 제 얼굴에 비치곤 했습니다.

그 햇빛에 눈이 부셔서 부스스 눈을 뜨면, 마당에 있는 키큰 감나무 한 그루가 그 햇살을 자기에게 달린 가지로 잘게 부수곤 했습니다. 겨울이면 하얀 서리를 몸에 감고 있던 그 나무가 햇살까지 하얗게 갈라 더욱 희게 느껴졌습지요.

그 감나무말고도 여러 그루가 우리 집에 있었지만 그 감나무가 저는 가장 좋았습니다. 높이가 사람 다섯 길은 됐는데, 가을이면 바지랑대를 갖고 거기 열린 감을 따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무를 타고 올라가 따기도 했지만, 이 나무는 다름 감나무와는 달리 둥치만 삐쭉 솟아 있고 다른 줄기나 가지가 없어서 제대로 따려면 바지랑대말고 다른 수를 쓰기는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 나무에서 감을 많이 따지 못했는데, 어찌 된 까닭인지 할머니가 관리하시는 선반이나 다락에는 감이 넘치도록 있었습니다. 물론 잘 익은 홍시였는데 저는 그다지 자주 얻어 먹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주로 이 감을 챙겨드렸습니다. 저는 할아버지한테서 얻어 먹거나 아니면 다락에 올라갔다가 할머니가 우연히 키보다 높은 곳에 올려놓지 않았을 때 하나씩 가져 먹은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서는 곶감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나무가 높아서 홍시가 되면 아무리 조심해도 '철퍼덕' 바닥에 떨어지기 때문에 다 익기 전에 따서 곶감 재료로 삼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마루에 있는 시렁이나 부엌 시렁에는 끈으로 감꼭지를 묶은 곶감이 말랑말랑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나게도 저는 그 곶감에 대해 그다지 욕심을 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돼 있습니다.

제게는 감나무나 감이라면 대체로 이런 풍경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축담 위에 안채가 놓여 있고 그 안채 앞에는 모과나무 앵두나무 석류나무 같은 작은키나무들이 있는 가운데 감나무 한 그루가 우뚝합니다.

감나무에 달려 있던 감은 다 익기 전에 따서 곶감으로 마루나 부엌의 곳곳에 매달렸습니다. 마당에는 어쩌다 그냥 '철퍼덕' 떨어진 홍시가 묽은 똥처럼 퍼져 있고요.

물론 삽작문은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이어지는 흙담장은 아주 낮습니다. 아침에 햇살이 제 얼굴을 간질여 눈을 뜨면 다시 그 감나무가 부옇게 쏟아지는 햇살을 잔뜩 받고 있지요.

또 저녁 어스름이 깔릴 때면,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그 때는 흙담장 빈 틈에 숨어 있던 박쥐들이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마을은 온통 저녁 짓는 아궁이에서 퍼져나온 연기가 감싸고요.

이런 느낌을, 이번 경북 청도 반시 블로거 탐방에서 오랜만에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떫은감의 20%를 청도가 쏟아낸다고 하니 감나무가 한 그루밖에 없던 제 고향집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지요.

하지만 나지막한 흙담장과 그 너머에 심겨 있는 감나무 덕분에 그랬습니다. 물론 집집마다 감나무가 한 그루가 아니라 적어도 대여섯 그루씩은 자라고 있었습니다만, 전체적인 인상이 그랬다는 것입지요.

우리는 그런 감나무 있는 데로 우루루 가서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저는 거닐면서 제 고향집을 닮은 풍경을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난 듯 사진을 서너 장 찍었습니다. 

제가 고향집에 살던 옛날에는 떫은감이라면 그냥 홍시로 먹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곶감이 전부였습니다. 아주 어려서 떨어진 감은 소금물에 담가 삭혀 먹기도 했지만요.

저는 지금도 그런 정도 아닐까 여겼는데 청도 가서 보니까 전혀 그게 아니더군요. 감부가가치화 클러스터가 만들어져 감의 무한변신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애쓴 결과로 같은 경북의 상주·문경 둥시와 함께 청도 반시가 이름을 얻었나 봅니다. 반시, 그것도 씨없는 반시가 나는 데가 청도뿐만은 아닐 텐데도, 반시 하면 청도, 청도 하면 반시 이렇게 등식이 성립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이 클러스터는 '선'을 활용해 반시의 이미지를 구축했더군요. 품질에서 명성에서 가장 앞서 있는 선(先), 가장 싱싱하고 깨끗한 선(鮮),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嬋), 이렇게요.

다른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감에서 뽑아낸 색소 성분으로 물을 들인 옷감만큼은 정말 부드럽고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감이 염색 재료로 쓰이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옷에 감물이 들면 어머니나 할머니한테 지워지지 않는다고 혼이 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착색 효과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어쨌거나, 옛날 고향 생각을 끄집어내준 청도 감나무들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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