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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술값만 받는 실비집, 만초
마산 오동동 뒷골목에 가면 '만초'라는 실비집이 있습니다. 알아보니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껏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년 남짓 동안 손님을 맞는 주인도 한결같이 같은 인물입니다.
만초는 여러 면에서 다른 술집과 다릅니다. 야박하지 않습니다. 찾아온 술꾼이 배가 고프다 그러면 밥도 한 그릇 그냥 내어주고 어떤 때는 라면을 몸소 끓여 내주기도 한답니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안줏값은 일절 받지 않고 술값만 받는다는 점입니다. 소주든 맥주든 한 병에 4000원씩입니다. 주인 취향을 반영한 듯한 이런저런 음악이 나오는 가운데 안주인이 장만한 안주도 끊어지지 않고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큰 특징이 있습니다. 안주입니다. 두부, 멸치, 생선 조림이나 구이 같은 안주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다 떨어지면 좀 더 달라고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기 전에 안주인이 가져다 주시는 때가 많습니다만.
2. 장난질 안하거나 덜한 '웰빙' 안주들
이런 안주를 두고 특징적이라고 하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일반 술집 안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안주를 두고 부실하다거나 심심하다거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야말로 '웰빙'안주입니다.
요즘 밥집이나 술집에 가면 '김치-국내산' 이런 식으로 표시돼 있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석연하지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따져 묻지는 않았지만, '김치' 전부가 아니라 그 부분인 '배추' 또는 '무'만 국산일 개연성이 높다고 저는 봅니다.
사실 김치 같은 안주(반찬)는 배추나 무 못지 않게 함께 들어가는 갖은 양념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고춧가루가 국산인지 아닌지, 젓갈이 국산인지 아닌지, 굵은 소금이 국산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런 재료들 원산지를 밝히는 음식점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김해 진영에 있는 한 밥집에 가면 자기가 쓰는 참기름 원산지가 한국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대신 "비싸고 좋은 원료로 만든 참기름"이라 적혀 있는데, 이런 정도도 실은 매우 드뭅니다.
왜 밝히지 않을까요? 근본은 식품위생법에서 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 성분이 아니라 그랬겠지만, 내심은 자랑스럽게 밝힐 수 있는 '국내산 양념'이 아니어서 그러리라 저는 짐작합니다. 배추나 무는 물론 갖은 양념까지 '국내산'이라면 손님들 호응이 더 좋을 텐데, 일부러 밝히지 않을 까닭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는 만초의 안주들이 '웰빙'이라고 말합니다. 질좋은 국산 양념을 쓰지 못하고 미원 같은 화학 조미료나 공장에서 만든 간장·된장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아예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최소한으로 그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안주가 만초에 가면 나옵니다.
주인 인심이 이렇게 넉넉하니까 손님들 인심도 덩달아 푸근해지는 것이 만초의 마지막 남은 특징입니다. 둘이 술 두 병을 마시면 8000원밖에 안 되는데도 손님은 1만원을 내고 거스름돈 2000원을 받지 않고 그냥 가기 일쑤입니다. 네 병 마시고 일어서면서 일부러 2만원을 떠안기는 손님도 종종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한 보물이 여기 있는 줄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경남도민일보> 2003년 1월 23일치 12면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주인 '조남륭'씨였습니다. 보도 당시 68세였으니 올해는 76세 어르신입니다.
주인 어르신은 '예술 하는 너거들, 한 번 실컷 먹어 봐라' 하는 심정으로 가게를 열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꽤 벌기도 했었는데, 그것을 쟁여두기는커녕 이래저래 갈라줬다고 합니다. "방학 때 돈 없어 서울 못 가는 학생들, 돈 없어 예술 못하는 친구들한테 다 나눠준 것이다."
기사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불종거리 코아 건너편 골목 깊숙이 들어가면 '만초집'이라는 실비집이 있다. 주인은 조남륭(68)씨다. 조 사장은 오래 전에 마산에 왔다. 북마산 뒷골목에서 70년대에 '음악의 집'이라는 마산 르네상스 시초의 '포'를 올린 사람이다.
음악인 김봉천·주민섭·안병억·조두남 그리고 강산재와 정진업, 경남대에 출강했던 구상 시인, 미술에 최운 선생. 모든 '잡다한' 예술인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처음 시작한 1971년 문창교회(북마산) '뒷골목' 생활은 모두가 즐거웠다.
예술인은 예술인대로 여기만 가면 돈없어도 술 풀 수 있고 마음통하는 예술인과 이슥하도록 얘기할 수 있어 좋았고, 조씨는 조씨대로 이런 예술인의 북적임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 자식을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한 다음 지금 자리에서 '만초'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간판도 없었다고 합니다. 주인 어르신 내외는 연세가 많이 드신 탓에 움직임이 불편합니다. 언젠가 얼핏 지나가면서 들었는데, '월세 걱정만 없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한탄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보석 같은 실비집,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지역 사랑방이 하나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그러면 지역 문화예술에 보이지 않게 이바지해 온 손길 하나도 덩달아 사라질는지도 모릅니다.
무심한 것 같은 마음으로 특별한 바람없이 40년 넘게 지내오신 두 분 인생의 '월세 걱정'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산의 역사를 이렇게 소홀하게 대접해도 될까, 이런 생각도 한 번 해 봤습니다.
김훤주
마산 오동동 뒷골목에 가면 '만초'라는 실비집이 있습니다. 알아보니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껏 같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년 남짓 동안 손님을 맞는 주인도 한결같이 같은 인물입니다.
만초는 여러 면에서 다른 술집과 다릅니다. 야박하지 않습니다. 찾아온 술꾼이 배가 고프다 그러면 밥도 한 그릇 그냥 내어주고 어떤 때는 라면을 몸소 끓여 내주기도 한답니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안줏값은 일절 받지 않고 술값만 받는다는 점입니다. 소주든 맥주든 한 병에 4000원씩입니다. 주인 취향을 반영한 듯한 이런저런 음악이 나오는 가운데 안주인이 장만한 안주도 끊어지지 않고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큰 특징이 있습니다. 안주입니다. 두부, 멸치, 생선 조림이나 구이 같은 안주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다 떨어지면 좀 더 달라고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기 전에 안주인이 가져다 주시는 때가 많습니다만.
2. 장난질 안하거나 덜한 '웰빙' 안주들
이런 안주를 두고 특징적이라고 하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일반 술집 안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안주를 두고 부실하다거나 심심하다거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야말로 '웰빙'안주입니다.
요즘 밥집이나 술집에 가면 '김치-국내산' 이런 식으로 표시돼 있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석연하지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따져 묻지는 않았지만, '김치' 전부가 아니라 그 부분인 '배추' 또는 '무'만 국산일 개연성이 높다고 저는 봅니다.
사실 김치 같은 안주(반찬)는 배추나 무 못지 않게 함께 들어가는 갖은 양념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고춧가루가 국산인지 아닌지, 젓갈이 국산인지 아닌지, 굵은 소금이 국산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런 재료들 원산지를 밝히는 음식점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김해 진영에 있는 한 밥집에 가면 자기가 쓰는 참기름 원산지가 한국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대신 "비싸고 좋은 원료로 만든 참기름"이라 적혀 있는데, 이런 정도도 실은 매우 드뭅니다.
왜 밝히지 않을까요? 근본은 식품위생법에서 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 성분이 아니라 그랬겠지만, 내심은 자랑스럽게 밝힐 수 있는 '국내산 양념'이 아니어서 그러리라 저는 짐작합니다. 배추나 무는 물론 갖은 양념까지 '국내산'이라면 손님들 호응이 더 좋을 텐데, 일부러 밝히지 않을 까닭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저는 만초의 안주들이 '웰빙'이라고 말합니다. 질좋은 국산 양념을 쓰지 못하고 미원 같은 화학 조미료나 공장에서 만든 간장·된장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아예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최소한으로 그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안주가 만초에 가면 나옵니다.
주인 인심이 이렇게 넉넉하니까 손님들 인심도 덩달아 푸근해지는 것이 만초의 마지막 남은 특징입니다. 둘이 술 두 병을 마시면 8000원밖에 안 되는데도 손님은 1만원을 내고 거스름돈 2000원을 받지 않고 그냥 가기 일쑤입니다. 네 병 마시고 일어서면서 일부러 2만원을 떠안기는 손님도 종종 있습니다.
올해 여름 후배 권범철 선수 등이랑 찾아갔습니다. 권범철 선수는 이날 실제 술값보다 더 많이 쳐서 계산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한 보물이 여기 있는 줄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경남도민일보> 2003년 1월 23일치 12면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주인 '조남륭'씨였습니다. 보도 당시 68세였으니 올해는 76세 어르신입니다.
주인 어르신은 '예술 하는 너거들, 한 번 실컷 먹어 봐라' 하는 심정으로 가게를 열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꽤 벌기도 했었는데, 그것을 쟁여두기는커녕 이래저래 갈라줬다고 합니다. "방학 때 돈 없어 서울 못 가는 학생들, 돈 없어 예술 못하는 친구들한테 다 나눠준 것이다."
기사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불종거리 코아 건너편 골목 깊숙이 들어가면 '만초집'이라는 실비집이 있다. 주인은 조남륭(68)씨다. 조 사장은 오래 전에 마산에 왔다. 북마산 뒷골목에서 70년대에 '음악의 집'이라는 마산 르네상스 시초의 '포'를 올린 사람이다.
음악인 김봉천·주민섭·안병억·조두남 그리고 강산재와 정진업, 경남대에 출강했던 구상 시인, 미술에 최운 선생. 모든 '잡다한' 예술인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처음 시작한 1971년 문창교회(북마산) '뒷골목' 생활은 모두가 즐거웠다.
예술인은 예술인대로 여기만 가면 돈없어도 술 풀 수 있고 마음통하는 예술인과 이슥하도록 얘기할 수 있어 좋았고, 조씨는 조씨대로 이런 예술인의 북적임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 자식을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한 다음 지금 자리에서 '만초'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간판도 없었다고 합니다. 주인 어르신 내외는 연세가 많이 드신 탓에 움직임이 불편합니다. 언젠가 얼핏 지나가면서 들었는데, '월세 걱정만 없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한탄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보석 같은 실비집,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지역 사랑방이 하나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그러면 지역 문화예술에 보이지 않게 이바지해 온 손길 하나도 덩달아 사라질는지도 모릅니다.
만초집이 저는 앞날이 밝으면 좋겠습니다.
무심한 것 같은 마음으로 특별한 바람없이 40년 넘게 지내오신 두 분 인생의 '월세 걱정'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산의 역사를 이렇게 소홀하게 대접해도 될까, 이런 생각도 한 번 해 봤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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