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강원도에서 막걸리에 세 번 놀란 사연

김훤주 2011. 10. 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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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추석 연휴가 끝난 바로 뒤에 휴가를 내어 강원도를 다녀왔습니다. 한편으로는 놀러가는 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축제와 관광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길이었습니다.

먼저 메밀꽃 축제(이효석 문학제)가 열리고 있던 평창군 봉평면을 들렀다가 강릉에가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경포대와 경포해변 그리고 가까운 동해안 정동진을 둘러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영월에 가서 어라연 가까운 데서 다시 하룻밤 묵고 나서 아침에 어라연에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자동차로는 들어갈 수 없도록 바뀌었더군요) 청령포를 구경하고 나와 영월시장에 갔다가 대관령을 거쳐 돌아왔습니다.

강원도에 머무는 동안 세 가지 막걸리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평창 봉평 축제 행사장 밥집, 두 번째는 강릉 초당 마을 두부집, 세 번째는 영월 읍내 시장에서였는데 세 번 다 제게는 거기 나온 막걸리가 놀라웠습니다.

1. 메밀꽃 축제장에 나온 수입산 메밀막걸리

봉평 메밀꽃 축제 행사장 밥집에서 나온 막걸리는 대관령주조라는 현지 업체에서 메밀을 섞어 만들었는데 전국막걸리축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강원도 특주라고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료 성분을 보니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백미 75%(국내산), 메밀 5%(수입산), 그리고 수입산 소맥분(밀가루)이 20%였습니다. 물론 5% 달랑 넣어놓고 메밀을 앞세우는 것도 우스웠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메밀꽃 축제가 벌어지고 있고 가는 곳마다 들판에 메밀이 자라는 봉평 현지에서 수입 메밀을 갖고 만든 막걸리를 마시게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놀랐습니다.

상표에 들어 있는 '허생원'은 바로 이효석 선생이 쓴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이고 이는 또 "달빛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메밀밭" 하는 식으로 이미 형상화돼 있기에 막걸리에 메밀이 들어갔다면 그것은 당연히 봉평 또는 평창 또는 강원도에서 생산된 것이리라 누구나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저는 이 막걸리를 마시고 머리가 아주 아팠습니다. 나중에 잠자기 전에는 일부러 약국을 찾아 약을 사먹기까지 했습니다만.

2. 강원도 막걸리는 없는 강릉 두부집

강릉 초당 마을 두부집에서는 강원도 출신이 아닌 경기도 출신 막걸리를 만났습니다. 가평에서 만든 막걸리가 멀리까지 와 있었는데요, 이 막걸리는 원료가 국내산 백미 100%였습니다.

제가 들어간 두부집에서는 강원도에서 나는 막걸리는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강원도에 강원도 막걸리를 팔지 않는 가게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강원도 막걸리가 안방에서 경기도 가평 막걸리를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그 까닭을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는데, 가격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명품이라 내세울 만한 막걸리가 강원도에서는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봤습니다.

영월시장 허름한 좌판에서도 막걸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좌판에 나온 막걸리는 강릉 두부집과는 달리 출신이 영월읍의 영월양조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병을 들어올려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3. 죄다 수입산만 쓰는 영월 좁쌀동동주

좁쌀 동동주였는데, 세 경우 가운데 가장 놀라웠습니다. 국산이냐 수입산이냐를 가리지 않고 쌀이 전혀 원료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제가 사는 경남에도 없지 않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쓰인 원료라고는 수입산 소맥분(밀가루) 82%와 역시 같은 수입산 좁쌀 18%가 전부였습니다. 특성을 살리느라 좁쌀을 넣고 그 비율이 평창 봉평 메밀막걸리의 메밀 비율 5%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높았지만 저로서는 이 또한 국산이 아니라 놀라웠습니다.

강원도에 가면 현지에서 생산된 좁쌀과 메밀로 만든 막걸리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해당 업체로서는 이문을 좀 더 남기려고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자치단체가 나서 해당 지역 관광 활성화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 현지에서 생산된 원료를 쓰도록 하는 방안은 정말 없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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