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후보 단일화 문제와 결선투표제 도입

김훤주 2011. 10. 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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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단일화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8월 이른바 '곽노현 사건'이 터지자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집단은 '후보 단일화'가 모든 악의 근원인 양 몰아쳤다. 정당정치 원칙에 맞지 않고 정강·정책이 다른 후보들 사이의 단일화는 명예든 권력이든 금전이든 뒷거래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정당하지 못하다고 나무랐다.

나름 타당한 지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 조건에서 후보 단일화는 야권에서 매우 중요한 선택 사항이 돼 있다. 3일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예정이다. 여권에도 비슷한 조짐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한 사람이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없었던 일이 됐다.

왼쪽부터 최규엽 박영선 박원순. /뉴시스 사진


우리 역사를 보면 후보단일화 논란은 많이 있었고 이에 따라 사회 흐름이 달라지기도 했다. 1987년 6·29선언과 그해 여름 노동자 대투쟁이 지난 뒤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단일화해 군부독재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덕분에 전두환을 뒤이어 민주정의당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막판에 민중운동진영의 백기완 후보가 양김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사퇴했으나 별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야권 단일 후보에 맞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뉴시스 사진

1997년 대선서도 후보단일화가 정국의 중요한 지렛대였다. 김대중이 이른바 DJP연합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2002년 대선에서도 정몽준의 후보 사퇴를 바탕삼아 우여곡절 끝에 당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누를 수 있었다.


이런 후보 단일화는 정당 정치를 중심으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정당들은 정강·정책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정당 후보는 끝까지 자기 색깔과 가치를 내걸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서 후보 단일화는 자칫 잘못하면 야합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후보 단일화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를 소속과 처지가 다른 당사자끼리 합의로 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란과 소모도 절대 작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후보 단일화가 현실 정치에서 계속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인은 공직선거법에 있다. 선거법은 결선투표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결선투표제란 한 선거에서 후보가 셋 이상 나왔는데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가 없을 경우 이를테면 1등과 2등을 내세워 2차 투표를 하는 제도다.

결선투표제만 하면 후보단일화는 필요가 없다. 정당 소속이든 무소속이든 후보로 나선 이는 끝까지 유권자 마음을 얻는 경쟁을 마음껏 펼치고 1차 투표를 통해 심판받으면 된다.

과반수 득표가 나오면 당선이 확정되고 없다면 3등 이하 후보는 물러난 상태서 2차 투표를 하면 된다. 물론, 3등 이하들이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2차 투표결과가 달리 나올 수는 있겠다.

물론 결선투표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 단점은 결선투표제의 여러 장점 가운데 하나인 '다수 득표 당선자'를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해소된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은 '소수 득표 당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모두 절반을 넘는 다수 득표를 못했고 그래서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런 한계를 결선투표제는 단번에 깨뜨린다.

국회의원과 시·도의원과 시·군의원의 '다수 득표 당선'은 비례대표제나 중·대 선거구제 같은 다른 식으로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나 시장·도지사 또는 교육감의 '다수 득표 당선'은 결선투표제 말고 다른 식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다.

또 신생 정당들에게 도움이 된다. 이른바 유력 후보에게 표심이 쏠리는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사라지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진보정당을 비롯한 신생정당도 현실 정치판에서 제 몫을 더 크게 챙길 수 있다.

결선투표제는 대통령 중심제를 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브라질도 하고 프랑스도 하고 있다. 또 우리 사회 대학 총장 선거나 노동조합 선거에서도 후보가 셋 이상일 때는 1차 투표에 이어 2차 그리고 때로는 3차까지도 투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낯선 제도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름대로 결선투표제 도입 운동을 벌이면 가능하지 않은 일도 아니다. 물론 '소수 득표'만으로도 당선되는 이점을 누리려는 세력이 방해하고 반대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내년 대선과 총선을 두고서는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훤주
※ 9월 27일치 경남도민일보에 실었던 글을 상황에 맞게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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