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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아름다우면서도 호젓한 길과, 둘레 자연이 썩 잘 어울리는 멋진 마을을 한꺼번에 누리는 즐거움은 흔하지 않답니다. 거기에 더해 세상 사는 사람들 속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여정이겠지요.
5월 4일 찾아간 남해 가천·홍현 마을과 이 둘을 이어주는 도로가 그랬습니다. 남해읍 남해버스터미널에서 가천 마을 가는 군내버스에서는 운전기사와 손님들이 주고받는 얘기를 통해 거기 사는 사람들 일상을 푸근하게 맛보기까지 했습니다.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였습니다.
오전 9시 30분 남해읍발 군내버스는 운전기사가 참 별났습니다. 입으로는 연방 손님들에게 말을 했고교 왼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면서 한 번씩 오른손에 들려 있는 파리채로 파리를 쫓았습니다. 촥~ 촥~ 감기는 파리채 내리치는 소리가 가만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였답니다.
출발하기 전 물어봤더니 가천 마을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요금은 3500원이었는데 직선 거리로 보면 20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까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도 충분히 남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첫째 까닭은 길이 꼬불꼬불한데다 손님 대부분이 일흔이나 여든 되시는 어르신이어서 버스가 속도를 충분히 내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게다가 버스 정류장이 아니라도 손님이 내리려는 데마다 거의 버스가 멈춰섰습니다.
나중에는 운전기사가 시간이 넘었다며 어르신 주문대로 세워주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또 재미 있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버스를 가득 채운 남녀 어르신들이 마치 입을 모은 듯이, 세워주지 않는 운전기사를 향해 "매 좀 맞아야 한다, 맞아야지"를 되풀이한 것입니다. 말하는 어르신도 듣는 운전기사도 입가에는 웃음이 조그맣게 달려 있었습니다.
시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보통은 버스가 꽉 차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날은 달랐습니다. 남면에 5일장이 서는 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남면 정류장에서 어르신들이 꾸역꾸역 타버리니 45인승 버스 자리를 다 채우고도 모자라 대여섯 사람은 서서 가야 했습니다.
앉아 있던 자리를 비켜드리고는, 오전인데도 이렇게 벌써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 놀랍다고 했더니 "여기는 원래 그래, 아침 나절에 바짝 장이 서고 상인들은 다른 데 볼일 보러 가고 우리는 돌아가서 들판에 일하러 나가니까"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가천 마을에 내려 허리가 꼬부랑한 할머니 손에 들린 짐을 들어드렸습니다. 꽤 무거운 장바구니에는 낙지 같은 해물과 푸성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달아서 하시면서 "저 아래로 가면 암수바위가 있고 요쪽으로 가면 밥도 팔고 술도 파는 데가 1차 2차 3차로 있다"는 안내까지 자청해 하셨습니다.
사실 가천 마을은 더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동네랍니다. 가파른 언덕배기에 다닥다닥 붙은 집과 모자라는 농지 확보를 위해 층층이 쌓아 올린 다랭이논, 그리고 잘 생긴 암수바위와 임신해 배가 부른 여자 바위가 대표적이지요. 마을 아래 있는 조그만 바다도 예쁘장한데, 옛날과 달리 지금은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쉽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1차 2차 3차 음식점 가운데서 몇 차인지는 모르지만 바다가 제대로 보이는 집에 들어가 해물파전(8000원)과 두부김치(6000원)와 유자잎 동동주(5000원)를 하나씩 주문해 먹었습니다. 가천 마을 특산인 유자잎 동동주는 향기가 아주 좋았으며 해물파전은 이름 그대로 갖은 해물이 들어가 있었고 두부김치는 따뜻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정오에서 20분쯤 지난 시점에 나와 홍현마을로 이어지는 오른쪽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오르막길이었으나 한 모퉁이 돌아서면 거기서 홍현 마을까지 2km 남짓은 곧바로 내리막길이었습니다. 길만 편한 것이 아니고 풍경도 아주 편했습니다.
엷게 안개가 끼어 있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몇몇 섬과 배가 둥둥 떠 있는 바다는 시원스런 바람으로 찾아온 이들을 맞아줬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이토록 호젓하다는 것도 조금은 이상했습니다. '보물섬' 남해가 아니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은요…….
이번 여정의 절정은 아무래도 홍현 마을이랍니다. 가천 마을에는 없는 것이 여기는 많았습니다. 크지는 않았지만 어항이 만들어져 있었으며 돌이나 바위를 쌓아 물고기를 가둬 잡는 석방렴도 두 개나 있었답니다. 게다가 "쉬잇~ 쉬잇" 또는 "헤잇~ 헤잇" 쇳소리를 신호로 내가며 물질하는 해녀의 물질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을 통째로 둥그렇게 감싸안은 방조림 마을 숲도 있었는데요, 이것들이 마을에다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입혀 놓고 있었습니다. 마을 규모가 가천보다 큰 편이었는데요 덕분에 이리저리 대충 둘러봤는데도 1시간남짓 걸렸답니다.
동동주 한 통 마신 힘으로 잘 거닌 다음 가천 마을발 남해터미널행 군내버스를 2시 50분에 홍현 마을에서 2000원 내고 타고 나왔습니다. 30분 조금 더 걸렸지 싶습니다.
김훤주
5월 4일 찾아간 남해 가천·홍현 마을과 이 둘을 이어주는 도로가 그랬습니다. 남해읍 남해버스터미널에서 가천 마을 가는 군내버스에서는 운전기사와 손님들이 주고받는 얘기를 통해 거기 사는 사람들 일상을 푸근하게 맛보기까지 했습니다.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였습니다.
오전 9시 30분 남해읍발 군내버스는 운전기사가 참 별났습니다. 입으로는 연방 손님들에게 말을 했고교 왼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면서 한 번씩 오른손에 들려 있는 파리채로 파리를 쫓았습니다. 촥~ 촥~ 감기는 파리채 내리치는 소리가 가만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였답니다.
출발하기 전 물어봤더니 가천 마을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요금은 3500원이었는데 직선 거리로 보면 20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까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도 충분히 남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첫째 까닭은 길이 꼬불꼬불한데다 손님 대부분이 일흔이나 여든 되시는 어르신이어서 버스가 속도를 충분히 내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게다가 버스 정류장이 아니라도 손님이 내리려는 데마다 거의 버스가 멈춰섰습니다.
나중에는 운전기사가 시간이 넘었다며 어르신 주문대로 세워주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또 재미 있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버스를 가득 채운 남녀 어르신들이 마치 입을 모은 듯이, 세워주지 않는 운전기사를 향해 "매 좀 맞아야 한다, 맞아야지"를 되풀이한 것입니다. 말하는 어르신도 듣는 운전기사도 입가에는 웃음이 조그맣게 달려 있었습니다.
시골을 돌아다니다 보면 보통은 버스가 꽉 차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날은 달랐습니다. 남면에 5일장이 서는 날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남면 정류장에서 어르신들이 꾸역꾸역 타버리니 45인승 버스 자리를 다 채우고도 모자라 대여섯 사람은 서서 가야 했습니다.
군내버스인데도 시외버스 같이 자리가 많은 버스였습니다.
앉아 있던 자리를 비켜드리고는, 오전인데도 이렇게 벌써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 놀랍다고 했더니 "여기는 원래 그래, 아침 나절에 바짝 장이 서고 상인들은 다른 데 볼일 보러 가고 우리는 돌아가서 들판에 일하러 나가니까"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가천 마을에 내려 허리가 꼬부랑한 할머니 손에 들린 짐을 들어드렸습니다. 꽤 무거운 장바구니에는 낙지 같은 해물과 푸성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달아서 하시면서 "저 아래로 가면 암수바위가 있고 요쪽으로 가면 밥도 팔고 술도 파는 데가 1차 2차 3차로 있다"는 안내까지 자청해 하셨습니다.
가천마을 상스럽지 않은 벽화들.
사실 가천 마을은 더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동네랍니다. 가파른 언덕배기에 다닥다닥 붙은 집과 모자라는 농지 확보를 위해 층층이 쌓아 올린 다랭이논, 그리고 잘 생긴 암수바위와 임신해 배가 부른 여자 바위가 대표적이지요. 마을 아래 있는 조그만 바다도 예쁘장한데, 옛날과 달리 지금은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쉽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암수바위와 배부른 여자 바위.
마늘쫑을 사서 들고 오는 손님이 일하는 사람과 지게를 보고 있습니다.
바다로 나가는 나들목에서 마늘쫑을 파는 가천마을 할머니. 일반 시중에서는 1만원은 줘야 하는 분량이 3000원이었습니다.
1차 2차 3차 음식점 가운데서 몇 차인지는 모르지만 바다가 제대로 보이는 집에 들어가 해물파전(8000원)과 두부김치(6000원)와 유자잎 동동주(5000원)를 하나씩 주문해 먹었습니다. 가천 마을 특산인 유자잎 동동주는 향기가 아주 좋았으며 해물파전은 이름 그대로 갖은 해물이 들어가 있었고 두부김치는 따뜻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가천마을 앞 바다.
앞바다에서 노니는 한 가족.
정오에서 20분쯤 지난 시점에 나와 홍현마을로 이어지는 오른쪽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오르막길이었으나 한 모퉁이 돌아서면 거기서 홍현 마을까지 2km 남짓은 곧바로 내리막길이었습니다. 길만 편한 것이 아니고 풍경도 아주 편했습니다.
고개마루에서 바라본 가천마을 전경. 마늘밭이 인상깊습니다.
엷게 안개가 끼어 있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몇몇 섬과 배가 둥둥 떠 있는 바다는 시원스런 바람으로 찾아온 이들을 맞아줬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길이 이토록 호젓하다는 것도 조금은 이상했습니다. '보물섬' 남해가 아니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은요…….
바다 풍경.
가는 길에 있는 사랑 표시. 저도 하나 남길까 했습니만. ^^
이번 여정의 절정은 아무래도 홍현 마을이랍니다. 가천 마을에는 없는 것이 여기는 많았습니다. 크지는 않았지만 어항이 만들어져 있었으며 돌이나 바위를 쌓아 물고기를 가둬 잡는 석방렴도 두 개나 있었답니다. 게다가 "쉬잇~ 쉬잇" 또는 "헤잇~ 헤잇" 쇳소리를 신호로 내가며 물질하는 해녀의 물질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 들머리에서 일 나가는 듯한 사람 셋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방조림과 석방렴이 보입니다.
조그만 항구. 가천마을에는 이게 없습니다.
해녀가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들어가는 바람에 물갈퀴만 보입니다.
마을을 통째로 둥그렇게 감싸안은 방조림 마을 숲도 있었는데요, 이것들이 마을에다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입혀 놓고 있었습니다. 마을 규모가 가천보다 큰 편이었는데요 덕분에 이리저리 대충 둘러봤는데도 1시간남짓 걸렸답니다.
방조림. 일부입니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줄곧 뻗어 있습니다.
방조림 그늘에 들어가면 이렇습니다.
동동주 한 통 마신 힘으로 잘 거닌 다음 가천 마을발 남해터미널행 군내버스를 2시 50분에 홍현 마을에서 2000원 내고 타고 나왔습니다. 30분 조금 더 걸렸지 싶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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