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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타고 즐기기 : 합천 영암사지 벚꽃길

김훤주 2011. 4. 2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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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합천 영암사지와 가회 마을을 잇는 길을 소개합니다. 벚꽃이 한창일 때 다녀왔는데, 지금 가면 싱싱하게 돋아나는 이파리들이 반겨줄 것입니다.

꽃은 꽃대로 좋고, 잎은 잎대로 멋진 그런 길이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산재와 그 아래 영암사지가 자기네 엄청난 에너지로 받쳐주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산재는 언제나 장합니다. 커다란 바위들로 이뤄진 모산재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철 내뿜습니다. 영암사지는 모산재의 그런 기운을 통째로 품어 안는 명당인 셈이지요. 햇볕도 밝고 화사하게 내려옵니다.

원래 폐사지(廢寺祉)는 을씨년스럽기 마련인데 이 망한 절터는 오히려 당당합니다. 단정한 삼층석탑과 화려한 쌍사자석등, 높게 쌓아올린 돌축대가 그런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위쪽 금당 자리를 둘러싼 석재들에는 해태나 연꽃 무늬 따위가 힘있게 조각돼 있습니다. 앞쪽 도들새김을 한 도깨비 같은 친구는 삿됨을 쫓는 척사(斥邪)가 임무인 모양입니다.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이 친구 노려보는 눈길과 딱 마주치게 돼 있습니다.

옆면에 있는 해태 같은 친구.

앞쪽 도들새김을 한 도깨비 같은 녀석.


그 왼쪽 또 다른 금당 터도 대단합니다. 오른쪽과 왼쪽에 귀부가 있는데요, 하나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어 힘이 넘치고 하나는 조금 수그린 채여서 다소곳합니다. 둘레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날리고, 소나무들 사이 들어앉은 진달래는 가녀린 꽃을 흔듭니다.

씩씩한 귀부.

다소곳한 귀부.


이렇듯 장하기에, 영암사지가 크지는 않지만 서두르는 듯이 둘러봤어도 50분이나 걸렸습니다. 찬찬히 살펴보자면 두 시간도 좋이 걸리겠습니다. 어쨌거나 나오며 보니 등산복 차림 중년 남녀 셋이 꽃그늘에 앉아 주먹밥을 먹고 있습니다. 이처럼 집에서 싸와도 좋지만 절터 들머리 조그만 포장마차에 들러도 괜찮답니다.

꽃그늘에서 주먹밥을 먹는 중년 남녀 셋.


바로 옆 복치 마을에 사시는 올해 연세가 일흔둘 되신 할머니가 주인이랍니다. "한 15년 됐나……." 얼마나 장사를 하셨는지 물으니 이리 답합니다. 안주나 반찬은 할머니가 손수 기르거나 뜯은 채소와 나물로 만듭니다. 두부도 집에서 만드시는데, 할머니가 손수 길렀거나 이웃에서 농사지은 콩이 원료랍니다.


값도 아주 쌉니다. 갖은 나물과 채소를 넣어 만든 큼지막한 나물전이 4000원이고 쫄깃한 국수는 배부르게 주는데 3000원입니다. 다만 두부는 국산으로 만드는 것이 돼서 5000원을 받는데, 이 또한 도시보다는 훨씬 헐한 편입니다. 막걸리는 한 통에 3000원이었습니다.


할머니 전화 번호(010-9217-2362)를 공개해도 되겠느냐 물었더니 웃으시면서 "그럼 되지요, 안 될 끼 머 있나" 하셨습니다. 오전 11시즈음부터 오후 4시 30분정도까지 하는데 미리 전화를 하고 찾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면 시간도 맞춰 주시고 음식 준비도 미리 해주시거든요.

당겨서 찍은 사진입니다.

뜯어온 나물을 고르시는 할머니 모습.


정오 조금 못 미쳤을 때 가회까지 내려가는 길로 나섰습니다. 7km남짓입니다. 양쪽 벚나무들에는 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이 벚꽃길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보다 한적한 꽃길은 세상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걷는 동안 만난 사람이 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남자가 반가워 말을 걸고는 뒷모습 사진을 하나 찍어달라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자동차도 자주 다니지 않았습니다.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제가 찍어 달라 해서 찍은 제 뒷모습입니다.


대신 웅웅거리는 소리는 꽤 크게 들렸습니다. 어쩌면 도심 벚꽃을 사람에게 내어준 벌들이 사람 드문 농촌 벚꽃으로 몰린 모양인지도 모릅니다. 벚꽃길은 줄곧 이어집니다. 살기가 바빠 진해 벚꽃 그 그늘 아래 놀아보지 못해 아쉬운 사람이라면, 한 주쯤 뒤에 이토록 환하게 피어나는 여기 이 벚꽃을 찾아도 좋겠습니다.


하동 칠십리 벚꽃터널이나 경주 보문단지 벚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벚꽃을 다른 이와 나누지 않고 독차지하며 새 잎과 꽃으로 환한 산과 농사 짓느라 사람 바삐 움직이는 들판 풍경을 누리기에는 이 길이 으뜸이겠다 싶었습니다. 초록이 출렁이는 5월에는 벚꽃그늘 대신 돋아난 이파리 아래로 녹음이 들어서겠지요.

들판 풍경.

오가는 길에 만나는 바람흔적미술관. 지금은 문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오도 마을 이를 즈음에는 왼쪽에 오래 된 이팝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때까지는 잎도 피우지 않고 있었지만, 한 달만 지나도 하얀 꽃들 넘치도록 뿜어낼 것입니다.

오도리 이팝나무. 5월 접어들면 하얀 꽃이 펑펑 터질 것입니다.


벚나무 가로수는 여기서 끝나는데 가회면 소재지 가회 마을까지 가면 조그마하지만 즐거움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무들 우람하게 들어선 옛집 한 채를 둘러보는 것입니다. 위풍당당하지는 않은 대신 수수하고 깔끔한 편인데요 혁림서당(赫臨書堂)과 세한헌(歲寒軒)이라 적힌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혁림서당.


4월 13일에 나선 이번 길은 합천군 삼가면 소재지에서 오전 9시 50분 덕만 마을행 버스를 타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영암사지 들머리 내렸을 때 10시 15분이 채 안 됐습지요.

삼가로 나올 때는 가회에서 오후 2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15분쯤 걸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닿은 삼가에서는 군내버스로 합천읍으로도 갈 수 있고 시외버스로 진주로도 갈 수 있습니다.


시간 여유를 갖고 여기를 찾는다면, 삼가에서 오전 9시 50분 버스로 들어가 영암사지와 포장마차에서 잘 노닌 다음 오후 1시께 걷기 시작해 이팝나무 있는 오도 마을 정류장에서 오후 3시 10분 덕만 마을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삼가로 나오면 더 좋겠다 싶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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