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봄날 감은사지에서 으뜸은 볕과 꽃이었다

김훤주 2011. 4. 2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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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감은사지를 들러 3층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전날 경주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바람직한 재난 보도의 방향' 세미나를 마치고 회식을 한 다음 경주문화교육회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떠난 길입니다.

일행은 남산이라든지 경주시내에 있는 관광지와 문화유적들을 보러 떠났지만, 저는 그렇게 여러 사람들 함께 다니는 취향이 아닌데다 봄날을 맞아 툭 트인 데를 골라 혼자 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

감포 가까운 데 있는 감은사지 3층석탑은 여전히 두터우면서도 날렵한 몸매였습니다. 봄볕 따뜻한 가운데 수학여행(요즘은 현장 체험 교육이라 한다지요)을 온 아이들이 종종걸음으로 다녀오고 다녀가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녀가 나란히 구경나오기도 하고 아이들 데리고 나온 식구들 나들이도 있었는데요, 그래도 으뜸은 그이들이 아니라 여기 3층석탑과 어울리는 볕과 풀과 꽃들이었습니다.

멀리 봄산도 좋습니다. 하기야 좀에 좋지 않은 산이 어디 있으랴마는.


풀과 꽃은 그 자체로 환히 나타납니다만, 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이들과 어른들 차려 입은 옷빛에서 나고 가까운 산 빛에서 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제 이런 감은사지에서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라 문무왕의 서원 같은 것은 별로 새겨지지 않습니다. 이 왕립 절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피땀이 스며 있는지 따져보는 것도 그냥 새삼스럽기만 합니다.

사진 보시는 여러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따지고 보면 역사가 있는 거창한 유물 유적 가운데 크든 작든 나름대로 의미가 없거나 당대 민중의 피땀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이 있을까요?

민중의 피땀을 까먹지는 않겠다는 생각과, 지금 여기 당대에서 나와 우리가 그런 일만큼은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놓지만 않으면, 여기서 따스한 햇살을 나른하게 즐겨도 그리 잘못되지는 않았지 싶었을 따름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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