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기념관과 박경리 선생 묘소에 머무른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졌습니다. 자리잡고 들어선 데가 아주 좋았기 때문입지요. 볕이 발랐고 펼쳐지는 풍경 또한 걸맞게 멋졌습니다. 멀리 봉전항 앞바다로는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으며 가까운 봄산은 꽃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묘소로 가는 길지 않은 산책로는 곳곳에 선생의 육필 원고 동판이나 시편과 산문이 잘 배치돼 있었습니다. 억지로 애써 읽지는 않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가운데 그 뜻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4월 8일 오전 9시 죽림동 통영종합버스터미널 앞에서 탄 534번 시내버스가 9시 35분 못 미쳐 박경리 기념관 정류장에 멈췄습니다. 잠깐 앉았다가 꽃길 사이로 묘소까지 올랐다가 돌아오니 1시간가량이 걸려 버렸습니다.

오른쪽 건물이 박경리기념관. 왼쪽 위 꽃길 따라가면 박경리 선생 묘소가 나옵니다.

묘소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봉전항과 바다.


박경리 기념관도 꼼꼼하게 둘러볼만했습니다. 선생의 일생과 작품 세계가 알기 쉽게 정리돼 있을 뿐 아니라 '김 약국의 딸들' 같은 작품에서 통영이 얼마나 형상화돼 있는지도 잘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박경리 덕분에 한결 몽글해진 마음을 안고 시내버스 타고 왔던 길을 되짚어내려갔습니다. 길가는 벚꽃이 자리를 잡았고 산기슭에는 진달래 꽃잎이 하늘거렸습니다. 얼마 안가 꽃들 지면 풀잎과 나뭇잎이 더욱 싱그러워지겠지요.


산양읍사무소를 지나 산양중학교와 산양초교를 가볍게 지납니다. 농협이 들어선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 내쳐 걸었습니다. 높지 않은 고개마루에는 삼덕 마을 제당을 알리는 표지와 돌벅수가 있습니다.


고개를 넘자마자 오른쪽 아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삼덕항입니다. 여기 또 돌벅수 한 쌍이 나란히 있습니다. 오래 된 나무들 아래인데,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냈는지 막걸리가 엎어져 있습니다. 요즘도 여기에다 대고 무사귀환과 풍어를 기원하는 모양이지요.

삼덕항 돌벅수 한 쌍.


삼덕항은 매우 활기찼습니다. 고깃배들이 모터 소리 요란하게 오갔으며 욕지도와 이어지는 커다란 여객선은 자동차와 사람을 태운 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10t 훨씬 넘어 보이는 화물차도 탔고 꽤 큼직한 활어차도 타고 나갔습니다.


'최초 서양 도래인 주앙 멘데스' 기념비도 있습니다. 포르투갈 출신인 이 사람이 1604년 6월 16일 여기 와 닿았다는 얘기랍니다. 건너편 길가에는 '부산 듸젤' 작업장도 있습니다. 선박에 쓰이는 디젤 엔진을 종종 수리하는 모양이라 짐작해 봤습니다.

삼덕항을 감고 도는 도로 왼편 산마루는 당포성지에 해당된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옥포해전에 이은 두 번째 승첩지라 합니다. 성지에 오르니 제법 요란하던 삼덕항이 고즈넉한 가운데 통째로 내려다보였습니다. 원근법이 때로는 그림 말고 감정에도 적용이 되나 봅니다.

당포성지에서 내려다본 삼덕항.

가까이서 바라본 삼덕항. 여기도 동백이 피어 있습니다.


이제 줄곧 산양 일주도로가 이어집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힌 길이랍니다. 아쉽게도 차도만 있고 걷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습니다. 둘이는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혼자서는 호젓하게 걸을 만한 길이었습니다.

일주도로를 걷는 보람 가운데 으뜸은 가로수로 심긴 동백에 있습니다. 봄이 다 되도록 꽃을 물고 있는 동백, 동백이 아니라 춘백입니다. 꽃에도 눈길이 끌리지만 겨울을 푸르게 넘긴 잎들 그 빛나는 반짝임에도 꽃 못지 않게 눈길이 쏠렸습니다.


동백꽃은 활짝 피어 있다가도 어느 한 순간 아무 머뭇거림 없이 한꺼번에 통째 툭, 떨어집니다. 돌아보거나 애달파하는 아쉬움이 전혀 없습니다.

사랑할 때는 동백 저 꽃잎처럼 붉게 타올랐다가도, 언제든 끝낼 수밖에 없거나 끝내야 하는 때가 되면 슬픔도 묻고 아픔도 묻고 툭, 접어버리자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저리 표현하는 것인가요. 떨어져 뒹구는 꽃잎들이 아스라한 느낌으로 가슴에 안겨옵니다.


어쨌거나 오른쪽으로 연방 이어지는 바다와 섬과 항구와 논밭과 나무들 그 어느 것과도 동백은 잘 어울렸습니다. 지고 나서 길바닥에 떨어져 시들어 버린 꽃잎들을 밟으며 발걸음을 무심하게 옮겼습니다.

놀며 쉬며 걸었어도 달아까지는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박경리 기념관을 출발한 지 2시간남짓만인 낮 12시 50분 달아공원에 올라 바다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달아공원에서 바다와 섬 풍치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해질 무렵이 가장 좋지요.


바로 옆 달아마루라는 음식점에서 요기를 하고 1시 30분에 530번 시내버스를 타고 아침에 나섰던 통영종합버스터미널까지 45분 걸려 갔습니다.

옛날 통영 중앙시장 '통영쌈밥'(전화 055-646-0034)이라는 밥집에 들러 소주 한 잔 밥 한 그릇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저녁에 진해에서 사람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에 도중에 시내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애써 참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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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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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edian.tistory.com 돌배군 2011.04.21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고향이 통영이 아닌데도 이곳에 잠들고자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