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시내버스 타고 즐기기 : 창녕 소벌 일대

김훤주 2011. 4. 14. 09:13
반응형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머니 품 안에 있을 때는 그 따뜻함을 제대로 알아채기 어렵지요. 봄 기운도 마찬가지여서, 봄의 한가운데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 법이랍니다.

사람들은 대개 봄이 겨울을 '이기고' 온다지만 사실은 봄은 그냥 겨울을 '거쳐' 올 따름입니다. 거기에 무슨 승패가 있을 까닭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겨울에서 막 빠져나와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이야말로 봄의 봄다움을 가장 짜릿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4월은 절기로 치면 분명 봄의 한가운데지만, 날씨나 기분으로는 막 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시는대로, 나뭇가지에 잎도 제대로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망울을 머금었거나 막 잎이 솟고 있을 뿐이지요.


지금 봄의 봄다움을 푸근하게 한껏 느낄 수 있는 데가 있습니다. 창녕군 이방면 우만마을 앞, 초곡천이 목포(나무개벌)로 흘러드는 들머리에서, 같은 창녕군의 유어면 등대마을 낙동강 본류까지 이어지는 10km가량 되는 길이 그것입니다. 습지가 습지임을 일러주는 이른바 왕버들과 갯버들이 잎을 막 터뜨리고 있습니다.

신록입니다. 연둣빛입니다. 쏟아지는 비와 거친 바람, 매서운 추위와 찌는 더위 따위는 전혀 겪지 않은 그런 빛입니다. 저것들 얼마 안 가 5월 되면 생기발랄한 스무 살 안팎 같은 초록이 될 테고, 그러다 7월 초입만 돼도 곧바로 산전수전 나름 겪은 30대 중후반의 음험함을 닮아 녹음이 우거질 것이겠지만요.

이렇게 보면 아직 충분히 피어나지 않은 저 신록의 풋풋함이 애틋해집니다. 그것은 얼마 안 가 달라지고 마는 모든 것에 대한 인간의 끈적거림이겠습니다.

그러나, 10월 11월 원래 났던 땅으로 돌아갈 태세를 하며 몸에서 힘도 빼고 물도 말리며 인간의 중년과 같은 단풍이 되고 말년과 같은 낙엽이 되는 한살이를 생각하면,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말 따름이지요.

어쨌거나 이파리 갓 피어나기 시작하는 버들들 모습은 누워 있는 여자 어른의 젖가슴을 떠올리게 합니다. 동글동글 몽글몽글한 느낌을 주는데요, 직접 만져봐도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손에 그대로 묻어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에 다녀온 4월 1일 충분히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요 앞으로 주말에 찾아가 걸으면 완전 그렇겠다는 얘기랍니다.

1일 창녕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녕군청쪽으로 건너서 최익수정형외과 옆에 있는 영신버스 정류장에서 이방면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오전 10시 20분 출발이었습니다. 인터넷에는 20번 시내버스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번호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우만 마을까지는 15분남짓 걸렸습니다. 내리면서 하늘을 보니 지나치게 맑았습니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챙겨나오지 않았다면 눈이 많이 부시고 얼굴 살갗도 따가울 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류장 바로 앞에 이방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다리를 건너 곧장 제방으로 접어들면 나무개벌의 명물 왕버들이 무리 지어 나섭니다.

나무개벌 들머리 왕버들 무리.


풍성하고 고요한 느낌을 주지만, 봄을 맞아 농사를 준비하는 이들의 경운기 모터 소리와도 제법 어울렸습니다. 여기서 사진찍느라 조금 노닐다가, 이르기는 하지만 싸온 도시락을 까먹고 길을 나섰답니다.

나무개벌은 우포늪(소벌)의 한 부분입니다. 우포늪(소벌)은 사지포와 우포와 목포와 쪽지벌 넷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번 길은 나무개벌~소벌~쪽지벌~모곡제방~가항제방으로 이어집니다.

나무개벌은 물이 깊어서 헤엄칠줄 아는 청둥오리 물닭 같이 작은 새들이 주로 노닙니다. 풍경은 단순하지만 느낌은 깊고 그윽하답니다. 마치 커다란 호수 같습니다.


나무개벌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고기잡이를 하기도 합니다. 소벌서도 하고 토평천에서도 하지만 이렇게 거룻배를 타고 대나무 장대로 바닥을 밀어 하는 고기잡이는 나무개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소벌.


소벌은 물이 얕아 왜가리나 백로 같이 키만 크고 헤엄칠줄 모르는 녀석이 많습니다. 시원하게 트였으며, 풍경은 오밀조밀하지만 한편으로는 느낌이 조금은 가볍습니다.

쪽지벌이라고 찍기는 했습니다만.


이름대로 쪽지처럼 조그만 쪽지벌은 어떨까요. 소벌과 나무개벌을 합해놓았다고 보면 된다고들 합니.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정겨운 편이라 하겠습니다.

거닐며 보면 바닥에 붙은 파릇파릇한 풀들 위를 지난해 스러진 덩굴이 덮고 있습니다. 마른 덩굴을 이 풀들이 이불로 삼아 자라난 셈입지요. 좀 높은 데 눈길을 주면 갈대가 마른 채로 버석거리고, 나뭇가지에는 봄물이 조금 올라 있다습니다. 봄이란 친구가 낮은 데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버들 새 잎 피어나는 사이로 백로 세 마리가 있습니다.


나무개벌에는 이처럼 헤엄을 잘 치는 조그만 오리 같은 것들이 많습니다.


쪽지벌을 지나면 곧바로 제방입니다. 소벌을 이루도록 해준 토평천을 감싸는 모곡제방입니다. 쪽지벌 끄트머리에서 좁아진 토평천은 왕버들 따위를 통해 곳곳에 신록을 뿌립니다. 거뭇거뭇한 나무 줄기나 가지랑 뒤섞여 대조 또는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가다 보면 제방이 아스팔트길과 바로 만나는 데가 나옵니다. 이산 마을 들머리랍니다. 여기서 옥천 들어갔다가 나오는 23번 시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오면 알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하루 네 차례뿐이니 시각은 맞춰야 하겠지요). 7km 정도에 세 시간가량, 시간도 거리도 적당하네요.

오른쪽에 보이는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오면 가항 제방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아스팔트 따라 조금 가다 상리 마을 들머리에서 왼편에 있는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가항제방으로 올라 그 끄트머리 유어교 다리 너머까지 2.5km남짓을 더 걸어도 된답니다.

그러면 토평천이 낙동강 본류와 몸을 섞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몸 섞는 바로 그 지점은 밋밋한 편입니다. 하지만 연둣빛 돋아나는 왕버들들 풍성한 봄 행렬은 직전까지 줄곧 이어집니다. 햇살은 줄곧 다사로왔습니다.

유어교 바로 못 미쳐 찍은 토평천 모습.

유어교 위에서 토평천과 낙동강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합류 지점을 들여다보다가 바로 옆 등대 마을 정류장에서 오후 3시에 16번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읍내까지 20분정도 걸렸지요. 자가용 자동차를 버려야 이처럼 소벌을 가로질러 걸으면서 온 몸으로 봄기운을 통째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제방 너머에서는 마늘 또는 양파 농사가 한창입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