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 의미없는 것

현실 아니라 추억으로도 살아지는 나이

김훤주 2011. 4. 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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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축산이 농업이 아니라 공업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소든 돼지든 이제는 모두가 공장 같은 공간에 갇혀서 공장에서 만든 사료와 공장에서 만든 약품을 먹고 공장 같은 배급 경로를 거친 물을 마십니다.

소나 돼지가 갇혀 있는 공간은 좋지 못한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에 비닐로 두 겹 세 겹 감싸 차단하고 심지어는 지붕과 벽을 온통 콜타르로 칠갑을 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과 같은 풍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황순원의 <송아지>에 나오는, 그러니까 송아지 코뚜레를 꿴다든지 아니면 송아지가 꼬리를 뻗치고 내달린다든지 또는 콩깍지를 잔뜩 넣어 여물을 끓인다든지는 저 같은 사람 기억에만 있지 현실에는 있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3월 23일 창녕군 장마면 대봉리 들머리 방죽에서 소와 송아지를 만났습니다. 생긴 모양으로 봐서 전문 축산농의 손 아래에서 집단으로 길러지는 그런 운명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직 봄이 깊숙하게 스며들지 않은 때인지라 풀을 뜯기려고 주인이 소를 내놓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봄날 볕이라도 잔뜩 쬐어 보라고 내놓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서 있는 녀석은 나이가 어린 숫송아지입니다. 자세히 보면 머리에 뿔이 막 돋으려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견주자면 이제 막 거웃이 거뭇거뭇 나는 중학생 시절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는 소는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일어나 서 있으면 젖통이 있는지 여부로 대충 구분이 될 텐데 저렇게 앉았으니 알 도리가 없습니다. 소는 암컷도 뿔이 나거든요.

둘 다 코뚜레는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이 일소는 아닙니다. 소에게 일을 시키려면 사람이 힘으로 부릴 수 있도록 반드시 코뚜레를 하거든요.

제가 소 두 마리에 눈길이 빼앗겨서, 맞은편 방죽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쓰레기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 찍은 사진을 보니 쓰레기가 거슬릴 지경으로 많았는데도 말입니다.

어쨌거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어린 시절 꼴 먹이러 소 몰고 나가는 형들 따라다니던 흐릿한 추억도 소록소록 솟았습니다.

제가 조선 나이로 올해 마흔아홉살인데요, 이것도 나이라고 이제는 현실이 아닌 추억으로도 세상이 살아지는 모양입니다.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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