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입니다. 아니 봄 들머리입니다. 아직은 낮은 포복으로 봄이 오고 있으니, 좀 있다 누려볼 수 있는 꽃길을 소개해 올리기 알맞은 시점인 것 같습니다.
11일 아침 길을 나서니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습니다. 경남에서는 가장 크게 매화로 이름난 양산시 원동면을 찾아나선 걸음이랍니다.
아침 8시 20분 중리역에서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를 탔습니다. '시내버스' 타고 즐기기이기는 하지만 같은 대중교통 수단인 기차를 마다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차는 마산역~창원역~창원중앙역~진영역을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자가용 자동차는 물론 시내버스보다도 빨랐습니다. 유럽 일본처럼 시내버스랑 환승이 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을 좀더 많이 편리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원동역에는 9시 20분 닿았습니다. 원동면사무소가 있는 거리는 70년대와 80년대풍 건물들이 그대로여서, 40대 후반인 제게는 어린 시절 추억이 일어났습니다.
한 달만 지나면 여기 길거리 벚나무도 활짝 꽃을 피우리라 생각하면서 이렇게 어슬렁거리다 10시 5분 원동역을 떠나 배내골 끄트머리 태봉 마을까지 가는 2번 시내버스에 올라탔답니다.
스쳐지나가며 보기에 거리에는 매화나무만 보일 뿐 매화꽃은 없었습니다. 겨울 끝물이라 아직 여전히 나무들이 메말라 있기는 해도 물과 골과 산과 나무가 잘 어울렸습니다.
물론 나뭇가지 끄트머리에도 봄물만 옅게 올라와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지금 이 헐벗은 나무들을 보면서 이것들 잎과 꽃을 펑펑 뿜어내는 장면을 떠올리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답니다.
원동역에서 종점 태봉마을까지는 35분정도 걸린다는데, 이렇게 시내버스로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그래도 몸소 겪어보는 데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겠지요.
금천 마을 냇가 풍경.
10시 30분 즈음 금천 마을에서 내려 오던 길로 거꾸로 걸었습니다. 바람은 찼지만, 활짝 넓어진 배내천이 풍성한 물과 갈대로 한결 빛이 났습니다. 그래도 볕은 다사로웠습니다.
길가에 때때로 사과나무가 심긴 데도 적지 않았지만 매화나무가 더 많았답니다. 매화나무들은, 버스 타고 지나칠 때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보니 가지마다 하나 가득 한 치도 안 되는 간격으로 촘촘하게 봉오리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한 주일 지나는 시점에 접어들면서부터면 밤하늘 폭죽처럼 차례대로 터져나올 태세였습니다. 내비친 빛깔이 어떤 녀석은 분홍색이고 어떤 녀석은 하얀 바탕에 푸른색이었습니다. 하나는 홍매화고 다른 하나는 청매화겠습니다.
고즈넉한 아스팔트 포장을 따라 거침 없이 곧장 내달았습니다. 기슭에는 벌거벗은 몸매로 햇살을 되쏘는 나무 아니면 이른바 전원 주택이 들어섰습니다.
물론 전원주택이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무래도 나무들보다 예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것은 욕심입니다. 저것들 보고 욕심이라 이르는 제 마음도 욕심인 것 같습니다만. 하하.
1시간쯤 걸었더니 그럴듯한 풍경이 나옵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언덕이 있었는데 빗돌을 읽어보니 풍호대(風呼臺)라 합니다. 바람이 부르는지 아니면 바람을 부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래 물은 무척 서늘해 보였습니다. 여름에는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풍호대.
햇볕을 받아 들떠 있는 갈대와 잎 떨군 나무들.
배내네거리에서 가게에 들어가 컵라면을 하나 불려 먹고 정오 조금 지나 다시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배태고개를 넘어 맞은편 영포 마을 신흥사 들머리까지가 시내버스로는 5분남짓밖에 안 걸리지만 실제 고갯길은 만만찮기 때문이었습니다.
배내네거리 조금 못 미치는 데서 바라본 풍경. 나뭇가지에 연둣빛으로 물이 올라 있습니다.
신흥사는 대광전이 멋졌습니다. 사천왕문을 통해 들여다보는데, 사천왕문 어두컴컴한 그늘을 지나 환한 햇살을 온통 누리는 품이 당당하고 단정했습니다. 앞에 거느린 배롱나무도 대단했습니다.
절간 전체를 통째로 둘러놓은 돌담이 옹졸한 성벽 같아 거슬렸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그이들 취향인 것을요……. 여기 둘레에도 매화나무는 많았습니다.
신흥사에서부터, 영포~내포~함포~원동 이르는 7km남짓은 마을과 기슭이 죄다 매화랍니다. 봉오리를 뚫고 꽃잎을 내민 녀석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직 봉오리 안에 본모습을 숨겨 두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 두 장에 나와 있는 매화나무들이 죄다 위 사진에 있는 그런 가지를 달고 있습니다. 가지가 통째로 불그스레하지 않습니까?
터질 듯한 탱글탱글함이, 잔뜩 부풀린 어린 여자아이 조그만 뺨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 주일이나 열흘정도 지나면 꽃봉오리는 벗겨지고 꽃잎이 제 모습을 제대로 드러낼 것입니다.
지금 조금씩 피어오른 매화를 보아하니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중 여기 일대 매화마을의 화려찬란한 장관이 절로 연상됐습니다. 그러니 제발 여기 올 때는 시내버스나 열차를 타시기를!
피어오를 준비를 마친 청매화와 홍매화(아래).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휙 지나가거나 잠시 내려 눈요기만 한다면 여기 발바닥으로 걸으면서 누리는 보람과 느낌을 절대 자기것으로 삼지 못한다는 것을 지금 제가 절감하고 있습니다.
매화 마을이 아닌 배내골 누리기도 나쁘지 않지만 오늘은 그것이 선택 사항입니다. 힘에 부치거나 시간이 모자라거든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매화 마을 들렀다가도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고달프거들랑 어영 마을 들어갔다가 나오는 3번 시내버스를 내포 지난 지점에서 기다려 타면 됩니다.
영포 내포 아니고 함포도 아닌 원동 마을에 있는 순매원은 제가 갔을 때 이미 매화가 피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너무 알려져 있어서 이번에는 부러 뺐습니다.
원동천 끝자락 풍경. 물길이 한결 풍성해져 있습니다.
2시 45분 조금 지나 원동에 닿았습니다. 3시에 출발하는 138번 시내버스를 타고 양산시외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후배 만날 약속이 있어서요. 어쨌거나 이날 걸은 길이 10km는 넘지 싶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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