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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바닷가서는 '실안'의 낙조와 갯벌이 이름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은 가화·길호·사천천이 흘러드는 안쪽 사천만과 목곡·곤양천이 흘러드는 바깥쪽 광포만이 온통 갯벌이어서 남해안에서 가장 넓다는 소리를 아직도 듣습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승전한 사천해전이 벌어진 선진리성 안쪽은 죄다 공단 따위가 들어서 망가졌지만 거기서부터 바깥쪽으로는 아직 바다가 쓸만하답니다.
선진리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나오는 동네가 바로 종포인데, 사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탔더니 15분정도 걸렸습니다.
보통 때는 주로 오전에 '시내버스 타고' 나섰으나 이번에는 물이 빠지는 썰물에 맞춰 해질 무렵에 '우리 지역 10배 즐기기'를 나섰습니다. 종포~대포 3.7km가량 되는 거리에서 썰물 때면 즐거움과 보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드넓은 갯벌을 눈에 담을 수 있으며 때로는 사람들이 굴을 따는 장면도 볼 수 있으며 떨어지는 햇살의 붉은 기운까지도 제대로 누릴 수 있습니다.
겪어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2월 22일의 썰물이 오후 5시 10분 언저리임을 알아내고 거기 맞춰 마산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3시 시외버스를 탄 것입니다.
사천터미널에 내리니 3시 52분, 조금 일찍 닿은 셈이었습니다. 마실 물을 하나 사고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4시 20분에 75번(73번을 타도 된다) 시내버스를 타고 4시 35분 석계 마을 들머리에 내렸습니다.
여기서 갈대 우거진 용정천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종포 마을입니다. 종포에서 대포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동행이 둘이나 있었습니다.
하나는 갯벌이고 하나는 햇살입니다. 갯벌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앞에서 맞아줬고 햇살은 자기가 산 너머로 질 때까지 줄곧 따라오면서 오른쪽 어깨에다 잘게잘게 자신을 쪼개어 뿌려줬습니다.
이처럼 갯벌과 바닷물과 햇살이 아주 인상깊게 어우러져 줬습니다. 갯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때가 바뀌자 슬금슬금 스며드는 바닷물의 애무를 즐겼습니다. 어두워지는 사이로 바닷물은 빛을 내면서 출렁거렸습니다.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마음껏 볼 수 있었고 물 빠진 갯벌 가운데로 경운기나 유모차를 몰고 들어가 굴 따는 모습을, 그이들의 고단할 노동과는 무관하게 아름답게 여겨 보는 호사도 누렸습니다.
유모차 가득 굴을 따 갯벌에서 나오던 한 할머니는 이런 길손들의 카메라질이 한편 익숙하면서도 그리 달갑지는 않은 듯, "함부래 찍지 마소!"라 되풀이 외쳤습니다. 그러면 "아이고 걱정 마이소, 안 찍습니다"라 화답을 해드리는 수밖에요…….
'함부래 찍지 마소" 했던 할머니들. 누런 갯잔디가 곳곳에 있습니다. 갯잔디는 갯벌이 살아 있음을 일러주는 지표 구실도 한답니다.
종포에서 걷기 시작할 때는 수평선에서 손가락 두 마디정도 위에 있던 해가 대포쪽으로 가는 길을 내내 따라오더니 대포 마을 가까이에서는 바다 건너 비토섬 너머로 넘어가면서 부옇고 붉은 기운을 옆으로 위로 퍼뜨리고 말았습니다.
위 사진 왼쪽 두 갈래 자죽이 있는 데를 따라 거뭇거뭇한 데까지 눈길을 보내면 아래 사진 경운기가 보입니다.
사천 용현과 서포를 이어주는 사천대교가 주문 마을(용현)과 자혜 마을(서포) 사이에 만들어져 걸려 있습니다.(삼천포대교와 달리 사천대교에는 사람이 걸어서는 다닐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는 무척 아쉬운 대목입니다.)
사천 갯벌은 죄다 뻘갯벌인데, 이렇게 모래갯벌도 있기는 했습니다. 물결무늬가 고왔습니다.
어쨌거나 그 실상이 어떤지는 잘 몰라도 다리 어름에서 햇살이 이리저리 쏟아지고 흩어지는 장면 또한 다른 데서는 보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스크린처럼 펼쳐지는 풍경에 정신을 팔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말았습니다. 해가 섬 너머로 까무룩하기 앞서 주위가 어스름에 잠기는 듯해 시각을 확인했더니 6시 5분이었습니다.
걷기 시작한 4시 40분 어름에서 1시간 20분남짓 지난 셈이었습니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판단해야 했습니다. 종점 대포에서 나가는 시내버스가 나가는 시각이 6시 10분과 7시 11분 두 개거든요.
대포에서 저녁을 먹으면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둘러야 했습니다. 잠깐 망설이다 종점을 향해 뛰었습니다. 사천에까지 왔는데 삼천포부두를 한 번 가보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종점 정류장에 머물러 있던 70번 버스를 탔더니 출발 예정 시각을 1분도 어기지 않더군요. 시내버스는 바닷가를 따라 달리다가 농로 같은 길을 거쳐 승용차도 다니기 어려울 것 같은 농가 사이사이 골목길로도 들어갔습니다.
시내버스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일 텐데, 종점에서 탔던 할머니들은 이런 좁은 길에서 운전하는 양반에게 "세아(세워) 주소" 해서 내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삼천포 끝자락 부두에는 이미 어두워진 6시 40분어름에 가닿았습니다. 거기서 생선회와 소주를 곁들여 밥을 먹고 나와 삼천포터미널에서 8시 출발 마산행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부두에서 터미널까지는 다니는 시내버스도 많고 걸리는 시간도 5분안팎밖에 안 든다고 합니다. 시간에 쫓기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돌아와 떠올려 보니 갯가는 손님 맞이에 손색이 없을 만큼 이미 잘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걷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지 싶은 공중 화장실이 곳곳에 있었고 당간마당이나 사천만마당 따위 이름이 붙거나 붙지 않은 쉼터가 여런 군데 있었습니다.
갯벌을 높은 데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마련된 2층짜리 전망대도 있었는데 여기에는 바다와 갯벌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기도 했답니다.
73·75번 시내버스 사천시외버스터미널 출발하는 시각
오전 5시 13분 6시 22분 7시 15분 7시 45분 8시 5분 8시 40분 8시 52분 10시 37분 10시 55분 11시 25분 11시 35분 오후 12시 5분 12시 54분 1시 46분 2시 13분 2시 31분 3시 23분 4시 20분 5시 19분 5시 45분 6시 25분 6시 48분 7시 8분 8시 13분 9시 15분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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