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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타고 10배 즐기기 : 칠원 장춘사

김훤주 2011. 2. 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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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칠원 장춘사로도 창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놀랍기는 조금이었고 반갑기는 무척이었습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113-1번과 마산합포구 월영동에서 출발하는 250-1번이 함안군 칠원면사무소 소재지의 용산사거리를 지나는 것입니다.

제가 원래는 용산사거리에서 칠북면사무소가 있는 검단을 거쳐 남양까지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장춘사 들머리 운곡마을에서 내려서 걸어올라갈 계획이었지만 내친 김에 이 버스를 타지 않고 칠원에서 그냥 걸었습니다.

2월 1일 정오 즈음에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삼거리에서 113-1번을 탔습니다. 손님이 많지 않은 때문인지 칠원까지는 금방이어서 15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은 탓에 먼저 칠원면사무소를 마주하고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 청기와집이라는 밥집에 들어갔습니다. 1만5000원 하는 대구뽈찜 작은 것을 하나 주문하고 소주를 곁들였습니다.

가정집 같은 분위기인 이 집 뽈찜은 쫄깃한 맛이 좋았습니다. 밥만 먹는다면 둘이 먹어도 알맞겠으나 제가 뽈찜을 좋아하는데다 술까지 걸치다보니 혼자 먹었는데도 조금 모자랐답니다.

설 연휴 들머리인데, 거칠 것이 무엇이랴 싶어 7000원짜리 갈치조림을 하나 더 부탁하고 소주도 한 병 추가했습니다. 곧 이어 나온 갈치조림은 고기가 부드러웠으나 조금 짠 듯해 술안주보다 밥반찬으로 더 좋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어온 술병을 죄다 비웠다가는 길을 나선 목적을 이루기 어렵겠기에 반 병쯤 남겨두고 일어섰습니다. 손전화를 열어 보니 막 2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칠원면사무소에서 장춘사 들머리까지는 3km남짓입니다. 농어촌버스를 타려면 면사무소 맞은편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했으나 마신 술에 몸도 더워졌겠다 용산사거리에서 장춘사가 있는 칠북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등으로 느끼며 걷다 보니 텅빈 들판 나락 그루터기에 내려앉은 햇살이 보였습니다. 과일나무가 심긴 들판 너머로 바로 산이 이어지기도 하고 들판과 산 사이에 집들이 아기자기 들어차 있기도 했습니다.

걷다보면 이런 방앗간도 만납니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텐데, 등겨가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마을들은 모두 들머리에 제대로 된 느티나무를 한 그루씩 쟁여두고 있었는데, 봄 되고 여름 되면 쓰임새가 만만찮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 마을에는 옛날 학교였지 싶은 자리에 마을숲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 봤더니 운림대(雲林臺)를 알리는 빗돌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공장은 좀 흉물스러웠지만 숲은 그럴싸했습지요.


운곡마을 삼거리에서 레이크힐스CC 가는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접어들면 곧바로 오른쪽에 장춘사 가는 길이 열립니다. 1.7km 가면 된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농어촌버스를 타고 왔으면 여기서 내려야 했겠지요.

장춘사는 올라가는 길이 좋습니다. 고즈넉하고 호젓합니다.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숲은 활엽수가 우세한 가운데 소나무도 끼여 있는데, 키큰 활엽수랑 볕바라기 경쟁을 하다보니 소나무도 휘지 못해 가늘고 곧았습니다.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이처럼 여자 이쁜 젖가슴 같은 무덤도 있었습니다.

햇살이 갈라져 들어오니 그늘조차 화사합니다.

소나무가 둘레 키큰 활엽수들이랑 경쟁하느라 굽을 새도 없이 곧게 올라가 버렸습니다.


다른 나무들도 늘씬하니 키가 컸는데 안개가 어리는 때는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장춘사 바로 못 미쳐 오른쪽에는 등산로가 마련돼 있는데 1.2km 더 가면 무릉산 꼭대기가 나옵니다. 여기 갔다 오면 1시간 정도 더 걸립니다.

장춘사는 절간도 그럴 듯하답니다. 물론, 신라 흥덕왕 때 무염국사가 지었다지만 자취가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신라 말기 작품이라는 약사여래석불은 70년대에 금색을 입었습니다. 앞마당 5층석탑도 4층만 남은데다 제자리도 아니어서 근본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멋과 맛이 있습니다. 조그맣기 때문입니다. 다른 절간은 대형 불사를 걸핏하면 하지만 장춘사는 있는 그대로 나앉은 천연덕스런 공간이랍니다.

조릿대로 만든 삽작문이 한가운데 크게 자리를 잡았고 '무릉산 장춘사(武陵山 長春寺)' 현판이 붙은 정문은 오히려 오른쪽에 숨어 있습니다.

살림채 같은 건물에 달린 미소실. 그리고 팔자 늘어진 고양이.


대웅전도 크지 않아 설법을 강(講)하는 무설전(無說殿)보다 작아 보입니다. 산문을 연 무염국사를 섬기는 조사전은 여염집 사랑채처럼 들어앉았고 약사불을 모신 약사전도 가로세로 한 칸짜리랍니다. 산신령도 조그만 산신각에서 귀여운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바퀴 둘러보고 대웅전 뒤쪽 언덕배기에서 마지막 볕바라기를 했습니다. 봄이 되면 쑥 같은 나물들이 무성한 자리였습니다. 여기 내려 오면서 보니 3시 50분쯤 돼 있었습니다.

약사전(왼쪽)과 산신각으로 오르는 계단.

약사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장춘사 전경.


운곡마을까지 내려와서는 운서천 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감나무 소나무 두릅나무 등등이 심겨 있었고 둔치에서는 마른 갈대·억새가 계절과 걸맞게 서걱대고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얼음과 눈이 있었고 그 밑으로 흐르는 물도 있어서 바위를 적시는 중이었습니다.

운서천 둑길. 보이는 나무는 두릅입니다.


해가 기울고 술기운도 가셨으나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운서천 걷다가 세 번째 만나는 다리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면 빙 두르지 않지만 그럴까 하다가 큰 길과 만나는 데까지 줄곧 걸었습니다.

그렇게 논두렁을 타고 시내버스 내렸던 자리에 오니 5시 35분이었습니다. 논두렁길이 걷기 어려웠는데, 다음에는 세 번째 다리에서 포장된 도로로 빠져나가야지 생각을 했습니다.

113-1번과 250-1번은 모두 함안 시내버스입니다. 웬 일인지 창원 시내버스와 환승이 안 됐습니다. 이것은 고치면 좋을 단점이다 싶었습니다.



교통카드도 마이비카드밖에 안 먹히는데, 이에 대해 함안군에 물었더니 3월부터 다 먹히도록 지금 준비하는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6시에 250-1번을 탔고, 20분 뒤 중리삼거리에서 내렸습니다.  4시간 가까이 10km가량 자동차라는 굴레 없이 기분 좋게 걸은 셈입니다.

다리에는 힘이 들어갔고 가슴으로는 맑은 공기를 마셨으며 눈으로는 시원한 풍경을 담았습니다. 더불어 맛 있는 음식도 입으로 즐겼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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