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일상 있고 일상 속에 역사 있다 뒤쪽으로 카마수트라 체위 사진이 보입니다.
85년에 여섯 달 동안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감옥이라면 거기 아무 즐거움도 기쁨도 없는 줄 압니다. 전쟁이 났다 해도 마찬가지 생각을 합니다.
감옥살이라든지 전쟁이 아주 좋지 않고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이렇게 널널하게 지내는 처지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국면일 것입니다.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고등학교 때 읽은 전쟁 소설 가운데 산으로 대피한 남편을 위해 한밤중에 아내가 밥을 해서 찾아가는 장면이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어렵사리 찾아온 아내를 맞아서, 남편은 차려온 밥은 뒷전으로 물리고 아내 손목을 잡아끕니다. 산비탈 험한 데에다 자리를 깔고 부부가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도 일상이 있고 일상 속에도 역사가 있습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 이른바 '역사의 일상성', '일상의 역사성' 운운하는 공부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 이 소설 속 장면이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산에서 벌이는 사랑 행위 속에 전쟁이 녹아 들어 있습니다. 전쟁이 제 아무리 험악하게 진행되고 총알과 포탄이 빗발쳐도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 일상이 돼서 사람들은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은 일부러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 누린다
감옥살이나 전쟁이 역사라면, 그 속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보람은 일상이 될 것입니다. 이래서 역사와 일상은 병행합니다.
제가 감옥에서 보고 듣고 한 것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깜냥대로 재미와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내거나 누립니다. 없는 살림에 보리밥알을 으깨어 손톱만한 윷가락을 만들어 윷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지금 서울에 2층 버스가 다닌다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그것을 두고 시비를 다투면서 따분함을 달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겠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없이 살았던 옛날에도 즐거움 기쁨이 있었다
옛날로 생각을 가져가 봅니다.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더 나아가 신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로 상상을 이어가면 더욱 그러합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그 때 그 사람들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 작살을 들고 또는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고 생산성이 아주 낮은 농법으로 겨우겨우 알곡을 만들어 먹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날마다 먹을거리를 찾아 허덕거려야 했으니 그것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고 다른 놀이를 즐길 수도 없었으리라는 생각은 쉬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입는 옷도 자는 집도 형편 무인지경이었을 테고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절에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 만들어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정말 그 때 그 사람들이 자살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힘들고 어렵기만 한 삶이라면 무엇 때문에 목숨을 이어가려고 하겠습니까?
여기 그 자취가 있습니다. 제주도 건강과 성 박물관에 포로처럼 끌려와 있는 신라시대 흙인형이 그런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형은 아마 국립 경주박물관에 있는 줄 압니다만.
사람에게 성(性)은 자식 낳기이면서 동시에 즐거움입니다. 그런 즐거움이 있었기에 이렇게 흙덩이를 갖고 장난을 쳐서 지금 사람들이 보는 유물이 됐겠지요.
흙목걸이와 조개껍데기 팔찌가 우리에게 하는 말들 조개껍데기로 만든 팔찌. 흙으로 만든 목걸이.
다른 것은 국립 김해박물관에서 만난 것들입니다. 하나는 조개 껍데기를 갖고 만든 팔찌이고요 다른 하나는 흙을 갖고 쪼물탕쪼물탕 만든 목걸이입니다.
요즘 같으면 초등학교도 채 들어가지 않은 아이조차 아서라 말아라 할 그런 것입니다만, 그렇게만 여기지 말고 이렇게 구멍을 내고 만지작그렸을 그 마음을 한 번 짐작해 보는 것입니다.
만든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이렇게 조개랑 흙이랑을 갖고 꾸미개를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기 몸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생각도 했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꾸며서 다른 누구(사랑하는 사람이기가 십상이겠지요)에게 보여주는 즐거움을 앞당겨 누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 아닌 다른 누구(마찬가지 사랑하는 사람이기 십상이겠지요)에게 선물을 하고 좋은 마음을 사려고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건네주는 보람을 생각하면서 조개껍데기에 구멍을 내고 흙덩이를 만지작거렸을 것입니다.
이런 즐거움이나 보람은 그 때 사람들도 다들 즐기고 누리며 살았습니다. 지금도 재료가 바뀌었을 망정 느끼는 마음과 감정은 아마도 같은 지경일 것입니다.
박물관에서 이런 물건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보면, 입가에 가만히 웃음이 번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대로 못 입고 못 먹고 못 살고 춥고 배가 고팠겠지만 그이들도 지금 여기 세상을 사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 세상 사는 보람을 누리려고 애썼구나,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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