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12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고 제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지배자들은 걸핏하면 '법치주의'를 내세웁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이 가장 심했는데, "모든 것을 법대로 하겠다"면서 "법을 어기는 사람은 모조리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법치주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법률에 따르지 않고는 국가권력이나 지배자가 함부로 사람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지울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법률로 규정돼 있지 않은 방법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자유나 권리를 제약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경남도민일보 1월 20일자 10면에 "망가진 삶의 대가가 3100만 원이라니"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정정웅(69·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어르신(☞국가폭력으로 인생 망가진 할아버지 이야기)이 그렇습니다.
삼청교육 피해로 32년째 장루 장애를 안고 사는 어르신은 거기에 더해 지금은 경찰의 사찰까지 받고 있습니다.
정정웅 어르신의 안방 모습. 추워서 옷을 단단히 껴입었습니다.
경찰은 사찰이 아니라 하지만 경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마다 연락하고 관찰하고 뒤따라다니고 본인 뜻과는 달리 엉뚱한 데로 데려가고 했는데 경찰 주장을 사실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르신이 사찰을 받는 까닭은 간단합니다. 전·현직 대통령 경호 등을 맡고 있는 경호처의 '명단'에 올라 있기 때문입니다.
'명단'은 대통령 위해 요인 대상자 이름을 모은 것인데 경찰은 "경호처와 협의를 통해 (관리)하며 관련 규정은 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경찰과 경호처 처지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삼청교육 전국 투쟁위원회라는 조직의 대표이기도 한 어르신은 10년가량 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경남에 왔을 때 경호를 뚫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장에 들어간 적도 있고 2006년 1월 19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진해에 왔을 때도 집 앞을 지키던 경찰관을 따돌리고 행사장 근처까지 접근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0일 G-20정상회의 때도 어르신은 휘발유를 들고 서울로 가려다가 경찰에 가로막혔습니다.
어르신이 대통령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2004년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그에 따른 보상금이 충분하지 못하므로 적어도 5·18 관련자들과 형평을 맞춰달라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어르신의 망가진 인생을 생각하면 정씨에게 주어지는 보상금 3100여만 원은 지나치게 적기는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경찰이나 경호처에서 보자면 어르신의 이런 행동이 커다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싫든 좋든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대통령에게 어떠한 위해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겠지요.
울분에 찬 어르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할 수 없다고 경찰은 보는 것입니다. 한편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헌법이 부정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법률이 적용되고 어떤 사람은 법률 적용이 안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어르신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어르신처럼 경호처 명단에 올라 있는 다른 사람들도 헌법의 효력이 미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경호를 위해 비밀 유지가 필요하다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아도 좋습니다. 국회의 관련 상임위원회에서라도 이 문제를 내놓고 다뤄 헌법에 위배되는 바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없애는 쪽으로 헌법을 바꿔 버리든지 해야겠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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