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도로는 거대독점자본을 위한 빨대다

김훤주 2011. 2. 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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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포장된 길의 이미지

우리에게 길은, 철학이나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포장돼 있기가 십상입니다. '도반(道伴)'이라는 표현에서도 그런 느낌이 물씬 묻어납니다. 도반은, 같은 길을 가는 짝이나 함께 도(道)를 닦는 벗이라고 해석되곤 합니다.

여기서 '길'은 사람의 일생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요, '도'는 어떤 깨달음이나 깨우침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바로 저 길은 구체성을 잃고 사라져 버리고, 아주 높은 차원에서 추상화된 길만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게 됩니다.

이렇게 머릿속에 자리잡은 추상화된 길은 가만히 있지 않고 곧바로 작동을 시작합니다. 머릿속에서 추상화된 길이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현실 속 길에 거꾸로 투영이 됩니다.

경남 창녕 남지 낙동강 개비리길.


여기에서 길은 그 끄트머리에 무엇인가를 안고 있고 품고 있으며 나아가 어디로 가면 좋을지 방향까지 일러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다양한 생각을 낳습니다. 이런 연상 작용은 산길이나 오솔길이나 골목길 따위를 그린 그림이나 찍은 사진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그림 또는 사진에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남자 어른이나 아니면 허리가 굽은 여자 어른까지 곁들여지면 그 길은 길이 아니라 인생으로 승화되고 맙니다.

철길 그림이나 사진도 남다른 느낌을 줍니다. 나란히 동행하기는 하지만 결코 서로 만나지는 못하는 두 줄기이기에 사람들이 여기에 대고 이런저런 의미 밀어넣기를 해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지배집단을 위하는 길

그러나 현실에서 길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지배집단이 지배를 하는 방편이었으며 권위를 실어나르고 재물을 거둬들이는 통로였습니다.

물론 때로는 저항하는 경로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길은 절대 추상적이지 않고 이미지로 덧칠돼 있지 않으며 고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군사 목적도 있기 때문에 길을 막으면 크게 처벌을 받기도 합니다.

보기로 조선 시대 10대로를 들 수 있습니다. 고산자 김정호가 지은 <대동지지(大東地志)>(1864) '정리고(程里考)'에 나옵니다. 모두 임금이 있는 서울이 기점(起點)이랍니다.

의주로, 경흥로, 평해로, 동래로, 봉화로, 강화로, 수원별로(別路), 해남로, 충청수영로, 통영별로. 내달려 다다르는 끄트머리 지역 이름을 도로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전라도 해남으로 가는 해남로는 삼남대로로 널리 알려졌고, 경상도 끝 동래까지 이어지는 동래로는 영남대로로 이름이 알려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통영별로는 경남에 종점이 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 간선(幹線)도로인데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기 때문에 열린 길이라고 봐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뉴시스 사진.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불편한 길

길은 길일 따름입니다. 길을 다니거나 길을 다니도록 시키는 사람이 바로 지배자입니다. 어쩌면 다니지 못하도록 시키는 사람도 지배자입니다.

길에는 거대 독점 자본의 차량들이 많이 다닙니다. 그이들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과 물건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면에서는 거대독점자본들이 지배자고 정치면에서는 보수정당들이 지배자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힘없고 가난한 이들은 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습니다. 국도 지방도에 사람이 걸어 다니는 보도를 깔아놓은 데는 거의 없습니다. 법으로 그렇게 하라 시키지 않습니다. 장애인은 말할 필요조차 없지요.

많이 나아졌다지만 대중교통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시내버스는 정해진 시간대로 다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2월 6일 낮 12시 5분부터 12시 35분까지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내서1주공아파트 버스 정류장에는 250번과 116번 어느 것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 두 버스의 배차 간격이 30분을 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걸어 다니는 것들은, 지배자인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정당들이나 삼성을 포함한 거대독점자본, 그리고 그것들에 주렁주렁 매달려 사다리 타기 하는 이들에게는 제한적으로만 인정을 받습니다. 이런 때는 그냥 걸리적거리는 존재로만 여겨집니다.

다만 물건을 팔아먹고 이문을 남기는 국면에서만 거대독점자본들은 사람을 손님으로 대접을 합니다. 다만 선거철이 돌아와 표가 아쉬울 때만큼은 보수정당들도 사람을 겉으로나마 유권자로 대접을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문제점이라든지 부조리한 대목을 따지면, 거대독점자본들은 경제적으로 보수정당들은 정치적으로 무시합니다. 그 무시는 철저하고도 처절합니다.

절대로 중립적이지는 않은 길

그러므로 길에 대해서는, 환상을 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은 마냥 좋은 것도 아닙니다. 길을 통해 병균이 옮겨지기도 하고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동물이나 식물을 세계적으로 유통시키기도 합니다.

길은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길은 지배자들 쪽으로 휘어 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지배자들은, 길을 빨대 삼아 사람에게서 재화를 쪽쪽 빨아먹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길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쪽으로 휘어지도록 바뀌면 좋겠습니다. 대중교통 수단이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의 절반이 넘도록 되면 좋겠습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 전체 너비는 물론이고 개별 차로의 너비도 지금처럼 그렇게 넓을 필요가 없습니다. 괜히 불법 주차만 부추깁니다. 개별 차로와 차도 전체의 너비를 줄이면 찻길 말고 사람길까지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길을 이렇게 휘어지게 하려면 먼저 정권을 바꾸고 세상을 거꾸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일을 혼자서라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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