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설날이 진정한 새해 첫날인 까닭

김훤주 2011. 2. 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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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이 다르다보니 새해 첫날로 꼽히는 날도 여럿이군요. 그냥 설날을 맞아 드는 생각을 한 번 간추려 봤습니다.

자연 현상의 시작, 동지(冬至)

옛날 처음에는 양력 절기 가운데 하나인 동지가 새해 첫날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양력이든 음력이든 절기(節期) 따위가 성립하기 훨씬 이전에 말입니다.

인류가 오랜 경험을 통해 이날 동지의 특성을 알아차린 때문입니다. 동짓날이 새해 첫날인 까닭은 간단합니다.

이날 해가 한 해 가운데 가장 늦게 뜨고 가장 일찍 지기에 가장 짧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날부터 해가 다시 길어집니다.


겨울(冬)의 끝에 이르렀으니(至) 이제 남은 것은 봄과 여름과 가을밖에 없는 셈입니다. 가장 짧아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길어지는 일밖에 없는 셈입니다. 그러니 새해의 첫날로 잡음직하지 않겠습니까?

경주 석굴사 석가여래부처나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부처가 바라보는 데가 정동(正東)이 아니라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동에서 15도 정도 조금 남으로 어긋나 있는, 동짓날 해 뜨는 데라는 것입니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부처님의 눈길 끝에는 동짓날 해 뜨는 데가 달려 있습니다.


인간 활동의 시작, 설날

지금 설날로 명절이 된 음력 1월 1일도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날은 자연의 시작보다는 인간의 시작이라는 뜻이 강한 줄로 저는 압니다. 인간 활동의 시작, 농경의 시작입니다.

농업은 없음에서 있음을 만드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진정한 창조입니다. 그것도 다섯 배 열 배 이런 정도가 아니라 백 배 천 배 이런 정도로 생산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사람살이의 근본을 받쳐주는 구실을 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려서, 세상에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 나와보라고 하면 간단합니다. 농업 없는 인간 생존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음력 1월 1일은 사람이 농경 활동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하면 농경 시작 시점은 정월대보름이지 설날이 아니라고 하실 사람이 여럿 있으실 수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설날에서 보름 뒤에 있는 정월대보름이 농경 시작입니다. 그래도 저는 설날이 농경 시작 시점이라는 제 견해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관계를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설날부터 열두 간지가 한 바퀴 도는 열이틀 동안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관청에서도 이 기간 일을 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휴식입니다.

이 마지막 휴식은 새로운 농경을 위한 것입니다. 열사흘 되는 날부터 정월대보름 준비에 나섭니다. 정월대보름에 치러지는 모든 제의는 한 해 풍년을 비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서는 아직도 여자들의 참여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다른 마을 사람들의 기웃거림도 배제하고 열사흘부터 대보름까지 밤사이에 비밀스러운 제의를 치르는데, 이것들이 모두 한 해 농사 풍년 기원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지막 휴식이나 준비조차, 그 새로운 시작의 범주에 넣어야 맞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는 셈입니다.

더욱이, '설'이라는 말에는 '삼간다(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여느 휴식과는 다른 점이 여기 있습니다. 삼가면서 쉬는 것인데, 여기에는 한 해 영농에 대한 계획이 마땅히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적거나, 저랑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은 연배 가운데서도 이런 기억을 가진 사람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농경 세대의 마지막 물림인 제게는 그런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농토가 전혀 없지는 않았던 우리 집은, 할아버지 당신께서 영농을 손수 주재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쉬는 기간에 어디는 누구한테 붙이게 하고 어디는 머슴을 들여 몸소 지으며 무슨무슨 곡물은 어디어디에 심을지 따위를 마지막으로 정하시고 그에 따른 섭외를 마무리하셨던 것입니다.

별로 의미가 없어보이는 양력 새해 첫날

양력 새해 첫날에는 이런 해맞이를 하는 풍습이 언제부터인가 대중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달그리메 사진.


이러고 보면 저는 이 가운데 지금 우리가 양력으로 삼고 있는 나날들이 별 의미도 보람도 없어 보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툭 잘라놓은 것 같습니다.

나름 의미가 있고 기준이 있겠지만, 우리 일상이나 자연 현상과 연관지어 보자면 그 날이 새해 첫날이어서 좋거나 의미 있는 그런 것이 아주 없는 듯이 보입니다.

여러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제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러면 댓글로 좀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요, 어쨌거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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