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 저도(猪島)에 가면 다리가 두 개 있습니다. 여기 저도는 돼지섬을 뜻하는 한자말인데요, 마산 앞바다 돝섬과 구분을 하려는 심리에서인지 그냥 다들 한자 소리로 읽습니다.
그래서 섬을 뭍과 잇는 다리는 '저도 연륙교'가 됐고 섬을 한 바퀴 빙 두르는 산책 또는 등산하는 길은 '저도 비치로드'가 됐습니다. 비치로드는 '바닷길' 정도로 고쳐지면 좋겠습니다만…….
자가용 자동차나 시내버스를 타고 연륙교를 지나 그냥 비치로드가 시작되는 하포마을까지 쑥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지간하면 연륙교 지나기 바로 전에 내려서 걸어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아무래도 눈에 담아둘 풍경이 많으니까요.
연륙교는 두 개가 있습니다. 옛날것과 지금것 이렇게 둘입니다. 옛것은 빨간색이고 새것은 은색입니다. 빨간 연륙교 난간에는 두 개씩 맞물린 채로 잠겨져 매달려 있는 자물쇠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지 잘 몰랐는데, 언젠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남자 여자 주인공이 이런 이런 비슷한 바닷가에서 이런 '쌩쑈'를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 사랑이 영원하기를……" 어쩌고 하면서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런 유행이 번져 마산 저도 연륙교에도 이런 자물쇠가 달리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 다가가 보니 남자 여자 이름이 적혀 있고 "우리", "사랑", "영원", "변치 말자" 따위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두고 나쁘다거나 하는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인데요, 여기 이렇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인연들 가운데 풀어진 것이 많을까요, 아니면 그대로 서로 아직도 맞물려 있는 것이 많을까요?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여전히 맞물려 있는 것보다는 풀어진 것이 더 많으리라 짐작을 해봅니다. 세태나 물정이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 사람 마음이 그저 새털 같이 가볍고 바람처럼 형체가 없는 것이어서 잡아둘 수 없는 대상이라 여기기 때문이 더 큽니다.
물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은 그 자체로 무척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조차 언젠가는 스르르 풀어지고 마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풀어지고 있는 인연을 일부러 묶어두려 애쓰면 그것이 바로 억지일 것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풀어지고 말 인연임을 사람들이 은연 중에 알고 느끼기에, 이렇게 '사랑 자물쇠' '쌩쑈'를 벌이는 것 아니겠느냐, 뭐 이렇게도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까 저도 연륙교 다리에는 사랑 자물쇠들이 덜렁덜렁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옛 다리와 새 다리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하하, '와'가 있답니다.
그런데 여기 저도 연륙교 다리 사이에는 횟집이 있습니다. 그 횟집 이름이 '다리와 다리 사이 회센터'입니다.
무슨 성적(性的)으로 야릇한 생각을 하게 하는 구석이 없지 않은데요, 기발하다거나 별나다거나 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그냥 눈길을 끌어당기는 그런 맛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옛 연륙교 다리 난간에 자기 자물쇠를 상대 자물쇠에 물려서 매달아 놓은 남녀들 가운데 저기 '다리와 다리 사이 회센터'에 가서 회를 먹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요?
어쨌거나, 다리가 주는 성적인 연상은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 다리와 이 다리가 같은 다리는 아니지만, 신라시대 처용이 지었다는 '처용가'에도 다리가 나오지 않습니까?
'동경 밝은 달에/ 밤 드리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런만/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겼으니 어찌하리." 자기 아내와 역신(疫神)이 붙어먹었는데 이를 체념하는 장면이지요.
그러면서 역신이 "처용 당신이 있는 데는 얼씬도 않겠다" 어쩌구로 장면이 넘어가는데요, 저는 여기서 '처용의 동경 밝은 달 아래 밤드리 노닒'에 눈길이 갑니다. 처용은 집 바깥에서 노닐었고 처용 아내는 집안에서 붙어먹었습니다.
처용 아내를 편들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만, 다만 처용이 바깥에서 노닐 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춤만 추고 노래만 부르고 술만 마시고 그러면서 남자들끼리만 어울렸겠느냐 말씀해 보는 것입니다.
처용의 다리들은 언제나 자기 아내 다리와만 어울려 엎치락뒤치락했고, 다른 남자 아내 또는 다른 여자들 다리와는 그러지 않았겠느냐를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신라 시대 개념으로 보자면, 당연히 다른 여자 그리고 다른 남자 아내 다리와도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 이런 연상을 하다보니 시답잖은 옛날 잡담이 하나 생각납니다. 30년도 더 된, 고등학교 시절 주고받았던 시시껄렁한 얘기입니다.
산부인과 병원에 여자가 하나 찾아왔습니다. 남자 의사가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로 발가락 사이가 간지러워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남자 의사가 그러면 피부과에 가야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여자가 얼굴을 붉히면서, "오른쪽 엄지발가락과 왼쪽 엄지발가락 사이"라고 답했습니다.
다리와 다리 사이가, 때로는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가 될 수도 있답니다. 랄랄라.
김훤주
'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못 살고 힘들면 즐거움도 아예 없을까 (3) | 2011.01.31 |
---|---|
대통령 경호 규정이 헌법을 부정한다면 (3) | 2011.01.26 |
대나무에 얹혀 있는 이런저런 생각들 (4) | 2010.12.04 |
이렇게 딱 붙어 있으면 진짜 좋을까 (2) | 2010.12.03 |
소나무는 독야청청 아닌 생긴대로 사는 나무 (6) | 2010.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