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23년 전 읽다 만 박경리의 <토지>

김훤주 2008. 5. 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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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세상을 떠난 박경리에 대해 저는 별다른 느낌이 없습니다. 그이의 작품을 거의 전혀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풍문에 들려오는 얘기들은 남들 아는만큼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이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훌륭하다고 알려진 이가 세상을 뜨니 저도 그리 즐겁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숨을 거둘 수밖에 없다니까(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그렇지요.) 크게 흐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박경리 작품을 처음 만난 때는 23년 전인 85년입니다. 감방에 있을 때인데, 바깥에 있던 동료가 박경리의 작품 <토지> 1권을 넣어줬습니다. 당시 연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집으로 출판돼 있었습니다.

기억이 아슴아슴하긴 하지만 <토지>의 첫머리는 길상이 꿈길 같은 분위기에서 헤매는 것이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리 여겼습니다. 리얼리즘 문학이라더니 뭐 이래? 일단 들어온 책이니까 다 읽기는 했습니다만, 별로 흥미가 없어서 계속 넣어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일곱 권짜리 소설 <고요한 돈강>을 더없이 지겨워하며 읽은 뒤끝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읽지 않은 채 저는 86년 1월 출감을 했습니다. 출감한 뒤로, 한편으로는 바빠서 다른 한편으로는 ‘돈이 없어서’ <토지>를 읽지 못했습니다.(당시는 진짜 시내버스 타는 데 드는 단돈 500원이 없어서 마산-창원을 걸어다닌 적도 적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토지>의 줄거리는 잘 모르지만, <토지>의 생생한 문제의식은 익히지 못했지만, <토지>에서 제가 받은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제 머리에 남아 있는 두 가지 기억만으로도 <토지>는 제게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제가 85년에는 진짜 안목이 없었습니다. 스물세 살짜리 학생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었겠습니까만, 이제 와 보면 <토지>는 진정 리얼리즘 문학입니다. 들머리 몽환적 분위기도 전체 구성이 ‘리얼’하니까 성립이 됩니다. 제 단편 기억만으로도 이리 말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런 것입니다. 강청댁의 남편 용이가 평사리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읍내로 가고 있습니다. 때는 겨울이라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칩니다. 그런데 용이가 걸친 것은 삼베 홑옷뿐입니다. 당시 저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상황-아니 세상에 그리 추운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다니다니!-에 대해 <토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붙여줍니다.

용이가 다 떨어진 삼베옷을, 그것도 허리춤이 나올 만큼 짤따란 옷을 속옷도 없는 상태에서 걸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살뜰하게 제시해 거기에 필연을 불어넣어 줍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장롱에 변변한 옷 한 벌 마련해 두기 어려운 당시 농민의 실상을, <토지>는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싸늘한 냉방에서 지내야만 하는 사정도 읽어보면 ‘과연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여기도록 배경을 풍성하게 그려놓습니다. 산에 가면 언제나 나무가 있으니까 게으르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갖다 뗄 수 있으리라, 선험적으로 여기고 있던 제 뒤통수는 깨질 듯이 얻어터졌습니다.

아무리 산에 갈비가 많아도 소유 관계가 어찌 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점을 <토지>는 있는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바지게가 빠그라질 정도로 나무를 해다 나르고 바깥에 장작개비가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그것을 쓸 수 있는 사람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음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게다가 개의 밥그릇(소설에서는 죽사발이라 한 것 같은데)을 어린아이가 핥아먹는 장면이 나온 것도 지금 제 기억에 남아 있는데(너무 오래 된 일이라 다른 데서 읽은 내용이 엉뚱하게 겹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이 또한 터무니없는 우연이 아니라 치밀하게 짜인 필연으로 소설에서 제시돼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난-굉장한 흉년이 아닌데도 소작료 내고 나면 남는 식량이 없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먹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짜 콩 한 톨 집어 먹으려고 온갖 용을 다 쓰는 장면을 묘사한 끝에 이런 ‘개 같은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사람 새끼가 개 새끼 밥그릇을 넘볼 수밖에 없는 필연을 확보해 나가는 필력을 박경리는 어린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이런 것들이 당시 제게는 무엇이었겠느냐,  짐작대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제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때에 따라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이는 사건이 우연으로 이어지는 <춘향전> 같은 고전 소설에서는 얻을 수 없고, 인과관계가 치밀하게 맞물리는 근대소설에서나 얻을 수 있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스물세 살 철모르던 당시 저는, 여름이면 여름옷 입고 겨울이면 겨울옷 입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물론 80년대 중반 당시에도 겨울이지만 여름옷밖에 걸치지 못하고 지낸 사람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장면이 제 관념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토지>는 왕창 깨뜨렸습니다.

<토지>가 주는 충격은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몸소 장작을 패고 나무를 해 날라도 정작 자기네 집 방구들을 데우는 데는 조금도 쓸 수 없는 무리가 있음을, <토지>는 전혀 무리 없이 제시를 해줍니다. 이를 통해 저는, 어떤 국면을 마주하더라도 그 상황에 맞춰 생각을 해 볼 수 있게끔 머리가 바뀌었습니다.

보기를 들자면, 유성룡이 임진왜란 때 일을 적은 책 <징비록>을 보면, 명나라 군인이 술 마신 뒤끝에 내뱉은 토사물을 조선 백성들이 앞다퉈 주워 먹었다는데, 그 장면이 <토지> 1권을 읽은 뒤에는 전혀 과장도 무리도 없이 머리에 그려졌습니다. 당시 상황을 제게 맞추는 대신, 제 생각을 당시 상황에 맞출 수 있게 바뀐 것입니다.(그러니까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역사가 많았는데, <토지> 1권을 읽은 다음에는 이해할 수 있는 역사가 많아졌습니다.)

박경리의 <토지>가 이룩한 리얼리즘과 문학적 성과가 철부지 20대에게 역사적 상상력을 길러줬다고나 할 수 있겠습니다. 편하게 얘기하자면, 당대 경험밖에 하지 못한 데서 생긴 편협함을 떨쳐버리고, 당대에 걸맞게 사람 사는 실상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간접적이나마) 경험의 너비와 깊이를 크게 만들어줬습니다.

물론 그래도 저는 지금 <토지>를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겠습니다. 아마 조건이 되면 읽겠지만 사실은 그래도 읽지 않을 개연성이 오히려 클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갖고 있는, <토지>에서 느끼고 깨쳤다고 생각하는 바가, 새로 <토지>를 읽음으로써 망가질 수도 있겠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토지 (전21권) 상세보기
박경리 지음 | 나남 펴냄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무대로 하여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박경리 대하역사 장편소설. 1860년대부터 시작된 동학운동, 개항과 일본의 세력강화, 갑오개혁 등이 『토지』 전체의 구체적인 전사(前史)가 된다. 동학 장군 김개주와 윤씨 부인에 얽힌 비밀이 차차 풀려나가고, 신분문제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귀녀와 평산 등이 최치수를 살해하는데... 세트(전21권) ☞ 한국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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