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낙안읍성에 있는 실한 불알과 예쁜 젖꽃판

김훤주 2010. 3. 2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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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0년대 에로 영화에서 물펌프의 역할

80년대 에로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밤 방안 이부자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예사롭지 않은 눈길을 주고받으면서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러다 둘이 끌어안고 옆으로 드러누워 쓰러지면서 장면이 전환됩니다.

전환되고 나서는 대개 남자 주인공이 웃통을 벗고 펌프질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튿날 아침 세수를 하려고 물을 뽑아 올리는 것입지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하하' 웃습니다.

말하자면, 주인공 남자의 아래위로 울렁대는 몸통에서 어쩌면 성적(性的)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기도 하고 아니면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에서 그런 힘을 느낄는지도 모릅니다.

2. 디딜방앗간과 방앗공이와 방아확

옛날 청춘 남녀가 몰래 만나곤 했다는 장소 1순위가 바로 방앗간입니다. 곡식을 빻는 방아로는, 소가 힘을 쓰는 연자방아나 흐르는 물이 돌려주는 물레방아보다는 디딜방아가 많았습니다.

디딜방아는 I 또는 Y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즈음을 나무로 가로 질러 걸쳐 놓고서 뒷쪽에 있는 평편하게 깎아 놓은 부분을 발로 밟습니다.

그럴 때마다 앞쪽 방앗공이가 '화들짝' 들려 '덜썩' 올라갔다가 아래로 '쿵' 내려갑니다. 방앗공이가 내려낮는 자리에는 둥글게 파인 확이 있습니다. 돌로 만든 돌확이 많은 편입니다.

청춘 남녀가 만나는 장소로 방앗간이 꼽히는 까닭은 여기에도 있지 않을까요. 방앗공이는 남자를, 방아확은 여자를 표현합니다. '화들짝' '들썩' '쿵', '화들짝' '들썩' '쿵'……. 그러는 사이에 곡식은 제대로 빻아지고…….

디딜방아와 돌확.


3. 낙안읍성에 있는 확실한 불알 두 쪽

3월 12일 낙안읍성에서 이 녀석을 처음 봤을 때는 전혀 이런 따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다니다가 '확실한 불알 두 쪽'을 보고 나서는 이 예사롭게 놓인 모양이 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장치처럼 여겨졌습니다.

바로 이 녀석입니다.


처음에는 나무장승 아래쪽에 불쑥 튀어나온 물건에만 눈길이 갔습니다. 가만 내려다보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장승 양쪽에 놓인 동근 바위가 심상찮았습니다.

잘못 여겼는지는 모르지만, 바로 불알이었습니다. 나무장승 아래쪽 튀어나옴만으로는 어쩐지 좀 허전하고 기력이 없는데, 양쪽에 저렇게 불알을 닮은 둥근 바위 둘이 자리를 차고 있으니 문득 튼실해지고 말았습니다.


4. 여장군의 젖꼭지와 젖꽃판은 어떻고

다시 조금 걷다가 밖으로 나와 보니 낙안여장군이 옆으로 비껴 서 있었습니다. 여'장군'답지 않고 오히려 아지매 또는 할매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젖통이 짝짝이어서 그러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젖통이 짝짝이인 까닭이, 이 장승 가다듬은 이가 일부러 그리 솜씨를 부렸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재료가 되는 나무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 눈여겨 들여다 봤습니다. 젖통은 나무결따라 마감이 됐고, 그 위에다 젖꼭지와 젖꽃판을 오밀조밀 깎아 놓았습니다. 오똑 솟은 젖꼭지에는 젖구멍이 송송 났고요, 젖꽃판은 실제 꽃판처럼 새겼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가 몇 걸음 물러서서 다시 쳐다봤습니다.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승 젖통이 오동통하고 나아가 균형까지 갖춰져 있다면, 오히려 많은 이들이 겸연쩍어서 앞을 지나다니기 어려웠겠다는 그런 것을요.

(젖통 대신 유방乳房, 젖꼭지 대신 유두乳頭, 젖꽃판 대신 유륜乳輪이라 하면 좀 고상해 보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저는 우리 토종말이 좋아 그냥 이리 쓰고 말겠습니다. 하하.)

확실한 불알 두 쪽이 제대로 달라 붙어 단박에 튼실해진 남자 장승과,

짝짝이 젖통으로 크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젖꼭지와 젖꽃판만큼은 실제보다 더 예쁘게 가꾼 여자 장승이,

봄날 들머리 낙안읍성에 있었습니다.

김훤주

한국의 읍성(빛깔있는 책들 245)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허경진 (대원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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