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펑펑 쏟아지고 바람에 휘날리던 눈이 그쳤습니다. 쨍쨍 햇살이 나오자 세상 곳곳 여기저기서 그야말로 눈물이 철철 흘러 나왔습니다.
저는 눈이 싫습니다. 비는 좋지만 말씀입니다. 한 때 그 하얀색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으나, 이제는 하얀색의 덧없음에 더없이 질렸습니다.
어제 저녁 나절, 아마 질린 그 마음이 시켰지 싶은데, 절간으로 한 번 가 보고 싶었습니다. 창원 성주사에 갈까 마산 광산사에 갈까 망설이다가, 좀더 산골스러운 광산사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저녁 일곱시를 살짝 넘은 무렵이었습니다. 많이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일주문 지나서도 눈이 치워져 있기에 자동차를 몰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중간 즈음에서 자동차 바퀴가 헛돌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건방짐을 탓하면서 자동차를 뒷걸음질쳐서 내려왔습니다.
차에서 내려 걸어올라갔습니다. 올라가면서 보니까, 어스럼에 묻힌 눈들이 가로등 아래에서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빛을 되쏘기도 할 것입니다만.
이튿날 아침 해가 나면서부터 다시 제 형체를 잃기 시작할 저 허망함 덩어리들을, 부질없게도 카메라로 담아봤습니다.
눈사람도 발자국도 녹고 거기 스며든 이런저런 사람들의 함성과 속삭임과 탄식과 재잘거림도 함께 스러질 것입니다.
발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기야, 눈 오는 날 산골짜기에 있는 조그만 절간을 찾는 발길이 잦았을 까닭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광산사 들머리에 있는 돌탑 위로도 허망함이 쌓여 있습니다. 저 허망함은, 얼마 안 가 줄줄 흘러내리는 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돌탑 건너편에 이렇게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가로등 아래 골짜기에 붙어서 나무도 한 그루 있었고요. 그런데 여기서 초점은 무성한 돌 무더기와 거기 내려 앉은 허망함들입니다.
절간 마당에 내려앉은 눈 위에는 발자국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왼쪽 위에는 조그만 눈사람이 하나 앉혀져 있었고요. 눈사람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방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을 왼쪽 위에다가 담아봤습니다. 그랬더니 마당에 흩어져 있는 발자국들에 방향(方向)이 생겨 났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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