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 대한 서울시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원래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서울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1593년 선조가 거처로 썼다. 광해군이 1611년(광해 3)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붙였으며 1615년 광해군이 재건한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별궁이 됐다."

이어집니다. "경운궁(=덕수궁)은 1897년 출범한 대한제국의 정궁이다. 그러다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일제가 고종을 쫓아내면서 경운궁은 선(先)황제가 머무는 궁이 됐고 이름도 일제가 덕수궁으로 바꿨다." 덕수는, 정치에서 손떼고 목숨 보전이나 해라 뭐 이런 뜻입지요.

서울에 가면 이 덕수궁(德壽宮)에 자주 들릅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다면, 시간이 어중간할 때 이리저리 보내기가 참 좋은 곳입니다. 그날도 덕수궁에 들러 둘러보다가 기와지붕 막새 무늬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습니다.

즉조당 일대 설명한 글.

즉조당(卽조堂)과 석어당(昔御堂), 그리고 준명당(浚明堂) 건물에서였습니다. 즉조당은 고종이 1897년부터 1902년 중화전이 들어설 때까지 정전으로 쓴 건물이고 준명당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편전이며 서로 복도로 이어져 있습니다.

석어당은 용도가 적혀 있지는 않은데 2층 건물입니다.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 같답니다. 이 건물들 셋은 1904년 불이 나는 바람에 한꺼번에 깡그리 타버렸는데 같은 해에 새로 지었답니다.

이상한 점은 이렇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막새기와의 무늬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어떤 규칙이 있나 싶어 여러 모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아무런 규칙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수막새의 무늬도 그렇고, 암막새의 무늬도 그렇습니다.

즉조당 뒤편 기와 무늬. 같습니다.

같은 즉조당 기와 무늬. 다릅니다.


둥근 암막새 무늬도 다르고 커다란 수막새 무늬도 다릅니다. 즉조당.


즉조당과 준명당을 잇는 복도 지붕. 수막새 무늬가 다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무슨 특별한 까닭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사정이 그것밖에 안 되니까 이렇게 마구잡이로 쓰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가난하니까, 나라 살림이 그렇게밖에 안 되니까 마구잡이로 올린 것 아닐까 싶었지요.

석어당.

수막새 무늬가 같은 듯 다릅니다.


마찬가지 같은 듯 다릅니다.


다릅니다.


1904년 새로 지었다니까, 당시 이름만 황제국이지 실제로는 일제를 비롯한 제국주의 나라들의 침략 앞에 벌벌 떨고 있는 불쌍한 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궁전을 짓는다 해도 쓸 수 있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덕수궁 즉조당과 석어당의 저 막새기와 무늬가 맞지 않은 까닭은 나라가 힘이 약한 데 있다고 내심 결론지었습니다. 통일성 있게 막새 무늬를 가려 쓸 처지가 못됐다는 말씀이지요. 이를 뒷받침하는 물건으로 즉조당과 준명당을 잇는 복도를 받치는 기둥을 꼽았습니다.

이 기둥은, 돌로 바탕을 깐 복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데 제 구실이 있습니다. 복도 바닥을 이루는 돌덩이가 금이 간 부분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황실이라면 이런 정도 보강 공사는 손쉽게 했을 텐데, 대한제국은 그럴 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가로로 놓인 돌덩이에 금간 자취가 뚜렷합니다.

이렇게 지붕을 보고 다니니까 다른 성과도 얻었습니다. 자세히 봐도 보이지 않는데요, 대한문 지붕에서 색다른 무엇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멀리서 찍으면 안 보입니다. 불꽃 무늬 장식 같기도 한데, 저는 피뢰침이라 여깁니다. 옆에 있는 시커먼 무리는 비둘기 같습니다만.

지붕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데 불꽃무늬 피뢰침이 있다.



서울 덕수궁에서, 망해가는 왕조의 슬픔을 봤습니다. 망해가는 왕조의 궁전 지붕 기와 무늬에서 백성 지지를 받지 못하고 헛소리만 크게 쳐대는 어리석은 황제의 슬픈 자화상을 봤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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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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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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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10.01.24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훤주 기자님은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스치는 법이 없군요.

    날씨가 좋은 일요일입니다.
    날씨에 부응하소서!^^

  2. 신삼호 2010.01.24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예리하게 잘 살펴보신것 같읍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이 목조주택자체가 100년이 경과한 건물입니다.
    그간에 전란을 통해 부분적인 손상도 있지 않았겠읍니까?
    아마 처음 중건시에는 같은 암막새, 숫막새 기와를 썼을 가능성이 높읍니다.
    도저히 다른 종류를 사용할 이유가 없거던요
    이후에 자연재해나 기타 이유로 보수를 할때
    초기에 사용한 기와는 보통 여분으로 남겨두기도 한답니다.
    아마 보수용으로 비축한 여유분이 없을 경우
    보수할 당시에 생산된 기와로 최대한 비숫한 형태로 원형을 맞춘듯 합니다.
    밑에서 4번째 사진을 보시면 추녀마루 기와가 흑색이 아닌 오지기와(오렌지색)를 사용한 흔적도 보입니다.
    요즘은 원형복원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만
    보수할 적에(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만큰 세심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닐 수도 있읍니다만.

    하지만 시력과 분별력 대단하십니다.
    그 높은곳에 모양을 어떻케 식별이 가능하셨는지,
    아마 깊은 관심이 이러한 분석으로 이어진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1.25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칭찬 고맙습니다. ^.^

      알차게 일러주신 내용도 참 고맙습니다. 그럴 개연성이 충분히 높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즉조당과 석어당은 이런 반면, 정전에 해당하는 '중화전'(안에 임금이 앉던 용상이 놓여 있지요^.^)은 이처럼 잡스럽게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져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어처구니'가 있는 아래로 늘어서 있는 막새 기와 무늬가 다른 것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중화전과 석어당-즉조당의 이런 차이=차별이 아마 제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부추겼나 봅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반이야 2010.01.24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세세한 것 까지 다 관찰하시다니... 대단하신거 같아요.
    덕수궁 곳곳에 숨겨진 망해가는 왕조의 슬픔.
    저 때를 상상해 보니까 정말 슬퍼지네요. 스스로 얼마나 비참했을까요ㅠㅠ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1.25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대단하다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만.

      스스로도 슬펐겠지요.

      그러나 그런 비루먹을 왕조에 자기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일반 백성들은 더욱 비참했을 것입니다.

  4. Favicon of http://naya7931.tistory.com 버드나무 2010.01.24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 덕수궁에 갈 때가 있었는데.. 전혀 몰랐던 내용이네요.

    대한제국의 초대황제 고종은 참 비운의 황제죠.. 그런 점에서 보면.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1.25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고종, 어릴 적 이름이 개똥이였던 이 사람은 개인 팔자로 보면 임금이 되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