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커피 잔이 일깨운 왼손잡이의 추억

김훤주 2010. 2. 2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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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찻집에 갔다가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주문을 하고는 옛날 80년대 초반 대학 시절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라면은 한 그릇에 300원 했고 커피는 한 잔에 500원 했습니다. 담배는 200원짜리 청자(솔이나 선은 500원 했고요)를 사 피웠습니다.

그 때 우리는 점심으로 라면을 사 먹고 '난다랑' 같은 찻집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서 청자를 피우곤 했습니다.

찻집에 앉아 "이런 사치가 어디 있냐" 이런 말을 궁시렁대기도 했습니다. 500원짜리 커피가 가당하기나 하느냐는 얘기였지요.

이처럼 옛 생각을 하는 사이에 주문한 커피가 나왔습니다. 나온 커피는 사진에 보이는 그런 찻잔에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한 번 보고 바로 알았지만- 아마도 다른 많은 이들은 한참 보고도 모르실 수 있지만 이것은 왼손잡이를 무시하는 오른손잡이용입니다.

오른손으로 잡으면 착착 바로 감기지만 왼손으로 잡으면 손과 사이가 얼뜰 수밖에 없는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니 제 지난 나날이 떠올랐습니다. 왼손잡이가 당할 수밖에 없는 고생이었습니다.

제가 지금은 수저질과 글쓰기는 오른손으로 하지만 원래는 완전한 왼손잡이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은 구박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막내라서 밥상에 밥이랑 반찬 놓고 수저 놓는 일은 제 몫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밥을 오른쪽에 놓고 수저를 왼쪽에 놓았습니다.

그래서 밥상에 식구들이 모이면 저는 맨날 구박을 받고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아가 우찌돼 갖고 숟가락도 하나 제댜로 못 놓노!"

어떤 때는 얻어터지기도 했지요. 꿀밤을 맞기도 하고 꼬집히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때는 폭력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 일상이었습니다.

국민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제일 처음 배운 것이 뭐냐면 오른손으로 연필 잡고 왼손으로 손을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왼손으로 "저요. 저요."

그런데 저는 그게 되지 않았습니다. 왼손잡이라서요. 줄지어 앉아서 선생님이 물으실 때 저요 저요 손을 드는데 저만 바깥으로 툭 튀어 나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기 손도 하나 제대로 못 드노!" 이러시면서 때립니다. 왼손잡이가, 덜 떨어진 인간으로 전락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으로 끝나면 좋을 텐데 바로 매로 이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책으로 머리를 맞기도 했고요 그냥 뺨따귀가 선생님 손에 유린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지요.

이밖에도 왼손잡이 오른손잡이에 대한 기억은 많습니다. 우리 집에 물을 끓이는 유리 냄비가 있습니다. 손잡이를 왼손잡이가 잡으면 팔을 비틀어야 따를 수 있도록 꼭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가위가 요즘에는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모두 쓸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이 나오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바지 지퍼도 왼손잡이는 비틀어서 내리고 올려야 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많습니다. 셔츠 단추도 그렇습니다. 수도 꼭지도 그렇습니다. 많이 쓰는 오른손이 닿기 쉬운  데는 많이 쓰는 찬 물이 나옵니다. 여닫이 문도 그렇습니다. 왼손으로는 열기 불편하게 돼 있습니다. 이런 불편은 알든 모르든 왼손잡이에 대한 세상의 차별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따위가 무엇일까요. 그냥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옛날 그런 구박이나 폭력이 지금 무슨 대수라고, 그냥 이러구러 살아가는데, 옛날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대로 풀어 놓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왼손잡이가 살기 힘들었던 한 시절을 그냥, 한 번, 추억해 보았습니다.

입 안에 머금어진 커피의 씁쓸한 향이 아주 좋았습니다. 향기가 가실까봐서, 물 한 모금도 입에 머금기가 싫은 순간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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