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중2 아들과 큰일날 뻔했던 지리산 산행기

기록하는 사람 2010. 1. 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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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과 둘째날,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계기는 중 2학년 아들녀석이었습니다.

아내가 연말, 해외 캠프를 떠난 뒤 아들녀석과 둘만 남게 되자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번 연휴 기간동안 아버지와 어딜 간다면,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녀석은 "좀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께요"라고 뜸을 들이더니 한참 뒤 "지리산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물으면서도 '혹시 스키장이나 놀이공원 같은데 가자고 하면 어쩌지?'하고 걱정을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알았다"고 해놓고선 속으론 '짜~식, 분명히 지가 가자고 했겠다? 어디 고생 좀 해봐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그 나이에 힘든 경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새해 첫날 아들과 지리산으로 떠나다

코스는 아내와 결혼 전 겨울에 올랐던 지리산 삼신봉을 떠올렸습니다. 약 16~17년 전이었는데, 그 땐 하동 쌍계사를 거쳐 불일폭포 아래서 야영을 한 후, 아침에 상불재를 거쳐 삼신봉(1284m)에 오른 후, 청학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새해 첫날 우리가 갔던 코스입니다. 청학동-삼신봉-세석평전 10km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보다 좀 더 힘든 코스를 잡기로 했습니다. 동반자가 아내보다는 훨씬(?) 강인한 중2 아들녀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초 거림-세석평전-삼신봉-청학동(총 16km)를 잡았다가,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거꾸로 청학동-삼신봉-세석평전-거림으로 바꿨습니다. 거리는 똑 같은 16km였습니다.

계획으론 아침 9시 청학동을 출발해 2시간만에(11시) 삼신봉에 도착하고, 11시 30분쯤 세석으로 출발, 늦어도 4시까진 세석평전에 도달한 후, 2시간만에 거림으로 하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학동에서 삼신봉 등산로 입구.


그러나 약간 차질이 생겼습니다. 삼신봉에서 너무나 맑은 시야에 선명하게 보이는 천왕봉과 장터목, 촛대봉, 세석평전, 반야봉, 노고단 등 주요 봉우리의 풍경에 취해 낮 12시 10분에야 세석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삼신봉에서 세석까진 7.5km, 세석에서 거림까진 6km, 도합 13.5km를 오늘 중에 갈 수 있을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냥 불일폭포를 거쳐 쌍계사(8.9km)로 하산하는 게 옳을까? 순간, 저는 무리한 판단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쌍계사까지 8.9km라고 하지만 그쪽은 하산 길이어서 상대적으로 빠른 길입니다. 그쪽을 택했다면 무리 없이 쌍계사 근처 식당에서 뜨끈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삼신봉의 이정표. 쌍계사냐, 세석대피소냐를 놓고 고민 끝에 세석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석평전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능선을 타고 걷는 길이어서 그리 힘들진 않겠지 하는 생각도 작용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선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세석대피소에 하룻밤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왕 고생하러 온 것, 대피소에서 힘든 하루를 지내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삼신봉에서 부자의 인증샷.


그러나 삼신봉에서 세석에 이르는 7.5km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능선이라고는 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부자를 쉬이 지치게 했습니다.

세석대피소가 3.3km정도 남았을 때 벌써 오후 3시가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힘을 내기 위해 바위 아래에 앉아 생라면을 부숴 먹으며 소주도 한 잔 했습니다. 초컬릿과 오예스를 먹으며 칼로리도 보충했습니다.


덕분에 잠시 힘이 솟는 듯 했습니다. 걸음을 빨리 하면 4시 조금 넘어 도착할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계가 오후 4시를 넘기면서 제가 오히려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기온도 점점 떨어졌습니다. 저보다 먼저 지친 듯 보였던 아들녀석은 "우리 이러다 정말 죽는 것 아녜요?"라며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능선이라고 해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부자는 둘 다 등산에 능한 사람도 아닙니다.


오후 4시 27분에 만난 이정표는 세석대피소까지 2.7km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서쪽에 해는 남아 있지만 노을빛이 물들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탈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도 힘든 표정이 역력했지만, 오히려 제가 쉬려고 할 때마다 녀석이 빨리 가자고 채근했습니다. 그럴수록 거리는 기대만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오후 5시 16분에 만난 이정표는 아직도 1.7km나 남아 있었습니다. 약 50분동안 1km밖에 걷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들녀석 고생시키려다 내가 식겁했다

기온은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느낌으로 영하 20도쯤은 되는 듯 했습니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포감이 엄습했습니다. 아들은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면 울어버릴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를 채근하여 빨리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두터운 양말을 두 개나 신었지만 발가락이 시려왔습니다. 목장갑 위에 낀 가죽장갑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입은 얼어 발음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늬엿늬엿 넘어가고 있습니다. 기온도 급감했습니다.

멀리 보이는 세석대피소. 카메라가 심하게 떨렸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마침내 세석대피소 500m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났습니다. 희망이 생겼습니다. 눈은 많이 쌓여 있었지만 길도 한층 평탄하게 바뀌었습니다. 논덮힌 산죽을 헤치며 걷다보니 왼쪽 위에 대피소 건물이 보였습니다. "야, 저기 보인다." "어디요? 아, 있네요." 아들 녀석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뛰지 마라고 잡았습니다.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내쫓진 않았습니다. 담요를 받아들고 언 발을 감싸고 나니 이제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배가 고팠습니다. 남은 건 생라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버너와 코펠을 빼놓고 오는 바람에 끓여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세석대피소에서 부자가 저녁으로 먹은 햇반과 참치 캔.


할 수 없이 대피소에서 파는 햇반 두 개와 햄과 참치캔을 하나씩 사들고 취사실로 향했습니다. 바깥으로 나와 취사실을 찾으러 두리번 거리며 발을 떼는 순간, 그만 눈덮인 배수로에 발을 헛디디고 말았습니다. 몸이 보릿자루처럼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손을 받칠 틈도 없었습니다. 왼쪽 다리 정강이와 오른쪽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굶어죽지 않기 위해 아들과 억지로 캔에 든 햄을 반찬으로 하여 햇반 한 그릇씩을 비웠습니다.

가운데에 가로로 보이는 배수로에 빠져 갈비뼈를 다쳤습니다.


다음날 아침, 남은 생라면을 둘이서 부숴먹은 후, 거림계곡까지 6km 하산에 성공했습니다. 내려오는 동안 다친 갈비뼈가 계속 아팠지만 다행히 골절까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골절이었다면 하산도 어려웠을 지 모릅니다.


아들녀석 고생 한 번 시켜보려 했다가 제가 오히려 식겁(食怯)하고 말았던 1박 2일 산행이었습니다. 겨울 산행은 절대 무리하여 잡아선 안 됩니다. 신년 벽두부터 정말 큰 일 날뻔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하산하기 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녀석이 하산 후 식당에서 푸짐한 백숙을 먹으며 "봄 방학 때 한 번 더 와요. 그 땐 다른 코스로 가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삼신봉~세석 능선을 걸을 때 "내가 왜 지리산에 가자고 했는지 정말 후회돼요. 앞으론 절대 안 올 거예요"라고 했었거든요. 하하하~^^;

☞아들의 산행기 : 새해 첫날 지리산 가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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