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1박2일', 시골 향수 향하는 집단 가출

김훤주 2009. 9. 1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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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출>은 '시골 마을'과 '1박2일'을 짝지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이지요.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잘 알려진 마을로 이어지고 하나는 그렇지 않은 마을로 이어집니다. 이럴 때 대부분은 잘 알려진 마을로 가는 길에 몸을 싣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출>은 그렇게 하지 않았네요. 조건이나 상황이 같다면, 발길을 숨겨져 있는 마을로 향하게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시골스러운 마을을 골라잡는 것입니다. '시골 마을'을 미덕으로 삼은 때문이겠지요.

대부분 여행 안내 책자는 며칠씩 묵는 일정을 일러주더군요.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아무래도 그 쪽이 멋도 있고, 깊이도 있고, 느낌도 풍성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일상이 팍팍한 대다수에게는 그리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 그림입니다.

바쁜 나날에서 사나흘씩 시간을 빼 다녀오는 여행은 한 해 걸러 한 번 마련하기도 어렵습니다.(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부유하지 못한 대다수에게는 '1박2일'이 미덕입니다. 덧붙이자면 3박4일은, 환상입니다.

사진을 찍고 글까지 써낸 홍순응은 책머리에다 제작 과정을 밝혀 적었습니다. '출판 기획을 하면서 마을을 50군데 남짓 꼽은 다음, 이 가운데 30곳 정도를 다녀오고 그것을 다시 15개 마을로 압축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출판 업계 사정이 어렵다보니, 다녀왔다면 모든 장소를 책에 담거나 아니면 책에 담을 마을만 딱 집어 다녀오기 십상인데, 여기서는 한 번 더 걸러내는 품을 팔아 그만큼 더 믿음직해 보입니다.

'마을마다 낭만이 살아 숨쉬고 향수가 묻어나는 특색이 있었고, 몇몇 군데는 눌러앉아 살고 싶거나 나아가 아예 뼈까지 묻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합니다. "여행하는 동안 자연의 고마움과 인간미의 살아 있음을 경험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경남에서는 양산 어영마을과 남해 가천마을이 담겼습니다. 어영마을은 산골에 있고 가천마을은 바닷가에 있지만, 다랑이논(그리고 밭)이 멋지다는 점은 두 군데 다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프리윌 출판사 제공. 집과 논과 산과 바다가 모여 있습니다.


먼저 남해 가천. "바다 옆에 있지만 어촌이 아니어요. 온통 낭떠러지라서 고깃배를 댈만한 포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고기를 못 잡고 농사만 짓는 마을은 아마 우리 마을뿐일 겁니다." 엄청난 노력을 대대로 고되게 들여 다랭이논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프리윌출판사 제공. 어영마을 드나드는 대숲길. 바람소리 청신하게 울립니다.


다음 양산 어영. "밭은 모두 산비탈에다 사람 키 높이만큼 돌로 축대를 쌓아서 만들었고, 논은 그 밭이 끝나는 지점에 같은 방식으로 비늘을 달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집들도 논밭과 다를 바가 없다. 고기비늘처럼 층층이 집터를 만들고 그 위에 차례대로 집을 지은 것이 참 특이하다."

프리윌 출판사 제공. 왼쪽 위 바위 물그림자가 어려 있는 데가 가마소인가 봅니다.


강원도 강릉 부연동 마을은 이 책에서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살아 있는 구중심처'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지은이는 부연(釜淵)동이라고 부르게 한 가마(釜)소(淵)를 보고 높이 1000m에 이르는 높은 산골에 자리잡은 사정을 떠올렸답니다.

그랬더니, '선녀와 나무꾼'이 딱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가마소는 상당히 깊은 듯 물빛이 검푸르게 보였다." "그 깊음에 주눅이 들어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프리윌 출판사 제공. 생솟대가 있습니다. 얼기설기 전깃줄은 별로 어울리지 않네요. 하하.


'구름을 품고 사는 하늘 아래 첫 동네', 강원도 삼척 여삼마을에는 잎이 돋는 산(生) 솟대가 있습니다. "솟대 서 있는 곳에서 바라본 여삼마을은 두 군데로 나뉘어 있었다. 닭의 둥지처럼 생긴 곳에 집들은 달걀처럼 박혀 있어 더욱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두 개의 닭 둥지처럼 생긴 마을과 마을이 연결된 지점엔 푸른 밭이 초원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가출>은 집안 식구가 함께하는 '동반 가출'을 권장합니다. 그러면서 일러주는 마을마다 (다른 여느 여행 안내서와 마찬가지로) 찾아가는 길, 맛집, 숙박업소, 주변에 가볼만한 곳을 덧붙였습니다. 들른 마을에서 무엇을 살 수 있는지도 들려줍니다.

프리윌 출판사 제공. 녹차 마을은 보성 곳곳에 많은데, 여기 양동마을이 좀더 시골스러워 골랐답니다.


이밖에도, 전남 보성 양동마을과 장성 금곡마을, 충남 홍성 죽도, 충북 괴산 산막이·갈론마을과 제천 억수마을, 경북 의성 산수유마을과 봉화 승부마을과 상주 백련마을, 강원도 정선 물레방아마을, 경기도 양평 섬이마을을 골라 담았습니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돼 있는 현실이다보니 이 책도 서울에서만 가능한 '1박2일'을 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겠지만, 어쨌거나 곳곳에 놓여 있는 고속도로 때문이지 싶습니다.

책값이 비싸지 않습니다. 1만2000원입니다. 프리윌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270쪽 됩니다.

김훤주

아름다운 가출 - 10점
홍순응 글.사진/프리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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