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떤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옛날에는 미국에도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있는 박노자가 쓴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 2>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제가 앞에서 쓴 글 <이런 따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에서 이어지는 얘기입니다.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라는 방직업 소도시가 배경입니다. 한 주에 8달러 하는 월급에다 작업 환경까지 아주 나빴답니다. 10대 후반에 취직하는 노동자 가운데 3분의1이 26살이 되기 전에 저승에서 안락을 찾는 수준이었다니 말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월급 삭감이라는 재앙이 닥쳤고, 그러다 보니 로렌스 노동자 전체가 동맹 파업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쪽으로 치달았다고 합니다.
박노자의 이 책을 보면, 당시 경찰은 야만적 구타로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임신부를 마구 때려 유산을 시켰으며, 여성 노동자를 숨지게 해 놓고는 파업 지도부에게 그 살인 혐의를 뒤집어 씌워 감옥에 보냈습니다.
파업은 자꾸 길어져서 집집마다 먹을거리가 떨어졌고 사람들은 영양실조 상태에 놓이게 됐으며, 경찰 폭력은 노동자뿐 아니라 자녀들조차 예외로 남겨놓지 않는 국면으로 넘어갔겠지요.
이런 조건에서 지역 한 신문이, 자녀들만이라도 여기서 벗어나게 해야겠다고, ‘궁여지책으로’ 임시로 맡아 기를 부모를 모집하는 공고를 내었는데, 뜻밖에도 다른 지역 노동자들이 많이 연락해 왔다는 것입니다.(노동조합 같은 조직의 지도나 개입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박노자는 덧붙이기를, 유럽 같으면 다른 도시 노동자들이 동료 자녀를 임시로 맡아 주는 관례가 있었지만 이기심 본위로 왜곡된 개인주의 풍토가 태심한 미국에는 그런 전례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또 경찰은, 이 같은 비(非)미국적인 일에 충격 받아 더욱 난폭하게 파업 노동자들을 다뤘지만, 총칼도 노동자 연대를 부수지는 못해 결국 파업은 임금 삭감을 저지하고 나아가 임금 인상까지 이룩했다고 합니다.
굶주림과 폭력 속에서 생존과 인권을 위해 파업하는 얼굴 모르는 여공의 아이를, 아무 조건 없이 같은 노동자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돌봐주겠다고 나서는 정신이야말로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아니겠느냐는 말로 박노자는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박노자는 이 얘기를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책에서 읽었다고 했습니다. 개인이 하는 따뜻함이 모인다면, 결국 세상까지 움직이도록 하는 따뜻함이 될 수 있음을, 남의 나라 역사에서 배웁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할까요?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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