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하면 거짓말이 떠오릅니다. 제가 겪은 거짓말 가운데 가장 생생한 기억인데 아마 어머니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만우절에 겪은 일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저만 이런 일을 겪지는 않았을 텝니다만.
어린 시절 ‘국민’학교 다닐 때 저희들은 창녕 옥만동 집에서 말흘리 창녕국민학교까지 걸어서 다녔습니다. 2킬로미터 남짓 되는 거리였는데 동네 형들이랑 동기들이랑 동생들이랑 무리지어 가면 때로는 1시간 가량 걸리기도 했습니다.
등굣길은 보통 예닐곱이 한데 몰려 다녔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논밭이 이어지는 시골길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장난을 치고 길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이것저것들을 건드리면서 가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지 싶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깨웠습니다. 날이 샌 지 오래 됐으니 빨리 학교 가라고 어머니 성화가 심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바로 가라고 그러셨습니다. 저는 서둘러 가방을 둘러메고 길을 나섰습니다. 어머니 입에 물린 한 조각 웃음을 의심해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등교 시간에서 아주 늦어 버렸으니 같이 가는 일행이 있을 리도 없었습니다. 혼자 서둘러 가는 길에서 학교 가는 학생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의 타는 속과는 반대로, 사람들 표정도 아주 느긋해 보였습니다. 어쨌든 모든 것이 보통보다 조금씩 느릿느릿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학교 정문에 들어섰습니다. 조용했습니다. 버릇처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1학년 2반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지각한 잘못이 있으니까, 아무 생각도 못하고 뒷구석에 있는 제 자리로 가 앉았습니다. 그 때도 저는 키가 큰 편이었으니까요.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오는 사람도 없었고 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오줌까지 마려워졌습니다. 행여나 싶어 교무실로 가 봤겠지요.
일직 서시던 선생님께서 “뭐 하고 있노? 빨리 집에 가거라!” 하셨습니다. 그제야 아침이 아닌 저녁 무렵인줄 알았습니다. 아마 조금 서러워졌지 싶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제게 거짓말을 했다는 조차도 까맣게 잊으신 채로 돼지우리에 가 계셨습니다.
그날 저는 학교 갔다 와서 엄마한테 안겨 낮잠을 자는 바람에 어머니 거짓말에 걸린 셈이었습니다. 제가 그 일로 어머니한테 성질을 부리거나 한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해코지를 당한 일도 전혀 없었으니까요. 나중에 어머니는 그냥 웃기만 하셨지 싶습니다.
지금은 학교 가는 길 풍경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어색하고 낯설었다는 기억만 뚜렷이 남았을 뿐입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돼지우리에 있던 어머니의, ‘니 뭐 하다 왔노?’ 하는 듯한 생뚱맞은 표정도, 기억에 새겨져 있습니다.
어머니는 스물두 해 전 제가 대학 4학년 복학한 해 5월 돌아가셨습니다. 자식들 임종도 못하게, 환갑을 한 해 앞두고 우물가에서 빨래하시다 갑작스레 행차하신 저승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3남2녀 자식 가운데 막내인 저를 무척 아끼셨습니다.
서른여섯 살 차이가 나서 같은 토끼띠인 어머니에게 저는 중학교 졸업 때까지 젖가슴을 만지게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어머니는 일찍부터 막내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 보시지는 못했지만, 당시로서도 이른 편이었는데, 스물여섯 살 되던 해 5월에 지금 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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