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올라간 우리 딸 현지가 오늘 새벽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에부터 몸이 달아서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쁘던 애가 어제는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그렇답니다.

사실 따져 보니 현지가 어제말고 그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했습니다. 친구랑 둘이서, 걸어서 30분쯤 되는 이마트에 가서 커다란 봉지 가득 먹을거리랑 마실거리를 사 오더니 장딴지까지 오는 스타킹이 빠졌다고 다시 사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귄지는 한 달밖에 안 된 것 같지만, 어쨌든 친구들이랑 '나는 머리말리개 가져갈게 너는 머리 마는 기계 가져와.'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도 하고, 아이 선생님은 왜 귀고리를 못하게 하는지 몰라 투덜거리기도 해 대더니 새벽 3시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떠난 2박3일 수학여행입니다. 전날 "내일 새벽 아빠가 모이는 데까지 태워줄까?" 했더니, "됐어요. 친구랑 친구 아빠 차 타고 가기로 돼 있어요!" 했습니다. "너 김밥 사 가야 하잖아." 다시 물었는데, 친구에게 천화를 해 보더니, "가는 길에 김밥 가게 있으니까 (친구) 아빠한테 세워달라 하면 된데요." 했습니다. 말하자면, 아버지보다 친구가 좋다고 번역이 되는 대목입니다.

어쨌거나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 밥도 좀 먹이고 친구랑 약속한 6시 20분에 맞춰 내보냈습니다. 여느 때처럼 일터로 나와 일 보다가 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딸! 잘 가고 있니? 수학여행 즐겁게 재미나게 보람차게 보내셔! 사랑해. 모든 일 조심하고 건강 보살피고 꼭!?."

10분 가량 있다 답글이 왔습니다. "네. 사랑해요!" 물론 사랑한다는 하트는 무지 많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래 저도 같이 "사랑한다."고 찍어 보냈지요. 그러고 오후 3시 30분쯤 돼, 문자 보내지 않으면 딸이 섭섭해 하겠다 싶어, 민주노총 경남본부 걸어서 들어가는 길에 "현지! 아빤 딸이 무지 보고 싶으. 잘 지내다 몸 성히 돌아오셔."라고 다시 찍어 날렸겠지요. 답이 다시 왔습니다. "네." 이번에는 그 흔한 사랑표도 없었습니다.

밤 8시 30분 넘으니 딸이 전화를 해 왔습니다. 날마다 전화하겠다더니 과연 그리 하는구나, 싶었지요. 그러나 통화 시간은 딱 42초밖에 안 됩니다. "숙소 들어왔어요. 오늘 비 하고 눈이 와서 대관령 양떼목장에는 못 갔어요. 내일 간데요." "잘 지내? 괜찮아?" "네." 그러고는 "내일 또 전화할게요." 하고 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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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초등 1학년 운동회 때 현지.

바로 어제만 해도, 전화하다 제가 끊을까봐 조바심 내는 현지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저랑 전화를 하고 싶어 했지요. 문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오히려 간단하게 문자를 보내고 현지는 주렁주렁 문자를 매달아 보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말고 무리하지 마세요. 아빠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하루도 안 돼 처지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길어지고 현지가 짧아졌습니다. 그러나,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즐겁고 가슴이 벅찬 구석이 있습니다. 제 머리에는, 딸이 친구들이랑 얘기를 주고받거나 이런저런 놀이를 하면서 어울리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열다섯 나이에 가는 수학여행에서, 정동진 바다 풍경이나 강릉 오죽헌에 어린 신사임당 이야기가 기억에 더 남겠습니까? 아니면 친구랑 짖궂은 장난질치며 지낸 숙소가 더 기억에 남겠습니까?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숙소 쪽이지요.

이렇게 되면, 아빠랑 하는 전화질은 친구랑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이미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씨알이 이미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버이보다 친구 좋은 줄을, 저렇게 해서 체득해 나가겠지요. 뒤집어 따져보니 우리 딸이 어버이 품을 벗어날 때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5년입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은 모레입니다. 그날 우리 딸은 그 새 조금 더 자란 티를 팍팍 풍기며 문을 열고 들어오겠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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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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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 2008.04.03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들이 큰거예요
    부모님들이 애육하시는 분 같은데
    이런경우 둥지 증후군 앓으니 조심하시고
    자신의 취미라도 만들어서 홀로서기 하세요

  2. ^^ 2008.04.04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아빠도 이런 마음이셨을까요 ??^^ 쓰신 글을 보다보니 애틋한 마음이 드네요~ ㅎㅎ 앞으로는 사랑표현을 많이많이 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