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사람들,이라 말할 때 하고 '뜨거운' 사람들, 이라 말할 때 하고는 느낌이 다릅니다. 뜨거운 사람은 우리 일상에서 많이 보는데, 뜻밖에도 따뜻한 사람은 쉬 만나지지 않습니다. 희귀종, 멸종위기종이랄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멸종 위기에 빠진 '따뜻한' 사람을 몇몇 알고 있습니다. 저는 뜨겁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습니다만 말입니다. 오히려, 차갑다는 평을 저는 많이 받습니다만.
한 사람이 있습니다. 58년 개 띠입니다.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농부가 돼 있습니다. 이름을 대면 많은 이들이 아는, 꽤 이름난 시인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옛날 시내버스 승차권이 있던 시절입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꼭, 어떤 일이 있어도, 현금을 내고는 절대 시내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버스표 파는 데가 길 건너편에 있으면 건너가서 승차권을 샀고 심지어는 한 정거장씩 걸어가기까지 해서 승차권을 사서 탔습니다.
자기 아들이 이상하다는 눈길로 바라보기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들아, 가게에서 표를 파는 그 사람 생각을 한 번 해 보거라. 버스표를 팔고 그 얼마 안 되는 수수료로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리라 여겨지니 그냥 돈 내고 버스를 타지지가 않는구나."
한 노동자가 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다섯 살 정도 아래입니다. 그런데 하는 짓은 저보다 훨씬 윗길입니다. 이 사람은 바쁜 일이 있어 택시를 탈 때에도 절대 개인 택시를 타지 않습니다. 회사 택시만 골라 탑니다.
왜 그러느냐 묻는 제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개인 택시는 벌어서 혼자 먹지만 회사 택시는 사용자랑 나눠 먹잖아요?" 이어서 "어차피 같은 노동자니까. 혼자 먹어도 많지 않을 그 돈으로 사납금 내고 가스값 채워넣고 남은 돈이 얼마나 될까 헤아리면, 그 사람 집에 들어갈 때 식구들 눈동자가 아프게 밟힐 것 같아서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택시를 탔을 땐 동전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답니다. 왜냐 물었더니 택시 모는 이들은 단 돈 몇 백 원에도 '고맙습니다' 한답니다. 몇 백 원 더 받은 단 하루만이라도 세상을 좀더 좋게 보도록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 친구가 먹물이고, 아직 먹물 빼는 일이 진행되지 못해서 이리 <형이상학적으로> 설명을 했지 싶습니다. 구질구질한 차포 떼고 말하면,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서로서로 기분이 좋아지고 사람 인심 느껴지면 이보다 더 값진 일이 무엇 있겠느냐, 이거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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