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에서나 '개발'사업이 진행되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는 반면, '발전' 논리를 내세워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 경남 마산의 수정만 매립지의 조선기자재 공장 유치를 둘러싼 찬반논란도 그렇습니다. 반대주민들은 'STX유치반대 수정마을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싸우고 있고, 찬성주민들은 '수정뉴타운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유치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마을에 있는 트라피스트수녀원이 세계적으로 엄격하기로 유명한 봉쇄를 풀면서까지 반대주민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수녀원의 이같은 태도에 글로벌기업이라는 STX와 마산시, 그리고 찬성측 '뉴타운추진위'가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녀원만 가만히 있어주면 반대주민들을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찬성 측 주민들이 수녀원을 상대로 항의집회를 열고 있는 도로변 천막과 컨테이너.
그래서인지 '뉴타운추진위'는 한 달이 넘게 트라피스트수녀원이 마주 보이는 지방도에 컨테이너 사무실과 천막을 치고, 수녀원을 향해 '반야심경' 같은 불경과 온갖 시끄러운 유행가를 틀면서 수녀원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관련 글 : 수녀원 앞에서 불경 틀며 농성하는 사람들
※관련 글 : 봉쇄 수녀들, 수도원 박차고 나선 이유
어제(16일) 찾아간 농성현장에서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반야심경'과 유행가는 제가 들어도 고막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맞은편의 수녀원에 직접 올라가서 들어봐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소음이었습니다.
요세파 원장 수녀를 비롯한 수녀들은 "유행가와 독경 소리 때문에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지 못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집회에서 소음 규제기준이 있을텐데, 경찰에 호소해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규정상 지상 1.5m 높이에서 측정을 하는데, 그 기준에 약간 못미치더라는 겁니다. 문제는 2층 이상의 방에선 소음 기준을 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뉴타운추진위 측이 확성기를 통해 성직자인 수녀들을 성적으로 모욕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수녀원 측은 그런 노래를 모두 녹음, 녹화해두었지만 주민들과 갈등이 심화하는 것을 원치 않아 고소·고발까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녀원을 비난하기 위해 불렀다는 '남자 냄새' 운운하는 개사곡.
제가 봐도 그랬습니다. 트라피스트수녀원도 조선기자재공장이 들어오면 당장 수도생활이 불가능하게 되는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반대주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찬성 측 뉴타운추진위도 수녀원에 항의할 순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반야심경' 등 불경을 확성기에 대고 트는 것은 불교와 천주교를 동시에 욕보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고통받는 약자와 함께 하겠다며 봉쇄를 푼 수녀원을 향해 성적 모욕을 주는 행위까지 서슴치 않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좀 심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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