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때때로 조그맣고 자잘한 일에 신경을 꽤 쓰는 편입니다. 이를테면 글을 쓰면서는 내용 구성이 제대로 됐는지도 보기는 하지만, 아울러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데도 잘못이 있지 않나를 좀 더 살피는 편이거든요.
지금 인기를 얻고 있는 <선덕여왕>을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큰 줄거리를 따라 재미있게 보기는 하면서도, 전체 맥락이 어그러져서 맞지 않는 대목이나 엉뚱한 연출이나 대사로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곧잘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담당 PD가 조금만 더 보살피면 생기지 않을 일인데요, 이를테면 7회 째인가에서 어린 화랑 김유신에게 '지퍼'가 달린 군화를 신겨서 왔다갔다 하게 해 놓고는 다리 부분을 집중 촬영한 장면은 진짜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우리 딸이 보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곁눈질하다 또 이상한 광경을 눈에 담고 말았습니다. 진평왕이 을제대등을 두고 '봉고파직'하는 모습이 그것이었습니다.
과연 진평왕이 을제대등을 '봉고'하고 '파직'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봉고파직(封庫罷職)은, 알려진 그대로 '벼슬아치가 부정이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파면을 하고 창고를 걸어 잠그는 일'을 뜻합니다.
물론 여기서 창고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관가의 것, 그러니까 관고(官庫)를 말합니다. 관고를 봉하는 목적은,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해 놓고 창고 물품을 꼼꼼하게 따져 얼마나 많이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는지 밝혀내는 데 있습니다.
을제대등은 <선덕여왕> 드라마에서 왕궁 물품 출납을 한 적이 없습니다. 출납을 맡은 관리는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을제대등이 관리를 하는 관고가 있을 리 없습니다. 봉(封)할 고(庫)가 아예 없는 셈입니다.
게다가 대등이라는 관직은 어떤 직무를 맡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신라 중앙 귀족 가운데에서도 핵심으로, 화백회의 구성원으로서 왕위 계승이나 폐위, 선전포고 같은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참여할 뿐이었습니다.
이는 귀족의 권력이 왕권에 완전히 무릎 꿇은 상태가 아님을 뜻합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왕권이 귀족을 제압할 정도로 세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진흥왕 이후로 전제 왕권을 세워나가는 과정(그 앞선 시기 임금은 여러 귀족 가운데 으뜸인 귀족일 뿐이었지만)이기는 했지만, 어쩌면 진평왕의 권력이 을제에게서 대등 직위를 뺏고 말고 할만큼 충분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곁가지로 조금 새는 느낌이 있기는 합니다만, 또 하나 얘기드립니다. 진평왕 때는 중앙 귀족 아닌 지방관조차도 임금이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습니다. 겉으로는 임금이 임명하는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주요 거점만 지방관을 직접 임명해 파견하고 나머지는 해당 지역 토착 세력에게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중앙에서 대등 정도 되는 귀족이라면 어느만큼은 독자 세력이었으며 따라서 임금에게 파직당할만큼 얽매이는 지위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지방관처럼 독립된 재정을 운영하지도 않았으니까 창고가 따로 있었을 리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진평왕이 화난 표정으로 자기 편인 을제대등에게 '봉고파직한다'고 엄숙하게 명령하는 장면은 코믹스러운 시대착오였습니다. 저는 봉고파직이 전형적으로 적용됐던 시기는 고려도 아니고 조선 시대라 봅니다.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 암행어사가 남원 고을 변학도 사또를 봉고파직하는 장면 말입니다.
제가 그렇게 보는 까닭은, 고려가 망할 때까지 전제 왕권-중앙집권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독립 재정이 없는 중앙 관리에게는 파직이라면 몰라도 봉고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고, 호족이 장악한 지방은 왕권이 못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선덕여왕>의 해당 PD는 시대에 걸맞지 않게 조선 시대 '법률 용어'를 쓴 셈입니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신라 진평왕 때에도 중앙의 핵심 귀족조차 임금에게 꼼짝 못하고 '파직'은 물론 '봉고'까지 당하는 그런 절대 왕권이 있었다고 충분히 착각하도록 만들었다고 저는 본답니다.
<선덕여왕> 제작진이 이런 세세한 구석에 조금만 신경을 더 쓴다면, 그래서 대사를 두고 우리 역사 전공자에게 미리 검토하도록 한다든지 하면, 드라마 완성도가 크게 높아질 수 있을 것 같아서 퍽 아쉬웠습니다. PD의 무심함이 도드라져 보였다는 얘기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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