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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별 의미없는 것

고등학교 때 벌 받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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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벌 받는 모습입니다. 대구 대건고등학교 2학년 4반 교실입니다. 때는 1980년이고요.

'우리 반'에는 별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괴짜들이었지요. 주먹 잘 쓰는 친구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대부분 '그 무엇'에 빠져 있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한 친구와 함께 글에 빠져 있었고, 김모 유모 두 친구는 그림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빠져 있었던 친구도 한 사람 있는데, 아쉽게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 사진이 그 친구가 찍어준 것이라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합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한테 들키면 혼이 날 수밖에 없는데도, 그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고 찍어줬습니다.

연극에 빠져 있는 친구도 있었는데요, 이 친구 관련해서는 학교 밖에서 연극 연습하다가 다리를 크게 다쳐서, 그랬는데도 그냥 빨간약(당시는 일본말 아까징끼라고들 했습니다만)만 바른 채로 바지를 둥둥 걷어올리고 다녔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제가 들고 있는 것은 조그만 계획표입니다. 무슨무슨 책방에서 나눠주는, 한 달 일정을 적어둘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여기다 우리 반 친구들의 갖은 악행과 추문을 제가 창작해서 뒤쪽 벽에다 붙여뒀다가 선생님한테 얻어걸리고 말았습니다요.

야간 학교 다니면서 우리 학교 교무실서 심부름하던 우리 또래 여자도 있었는데요, 그 이야기까지 여기에 같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우리 반 누구누구랑 어디서 만나 무엇무엇을 했다 등등 얄궂고 짖궂은...... 한 살 많은 통통한 누나는 제게 잘 대해 줬다는 기억이 나고, 좀 마르고 성질도 있는 동갑내기 아이는 아주 사나웠습니다요.(그 때는 철이 없어서, 그이들한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박양 누나, 조양, 이렇게 불러댄 잘못이 저희 모두에게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우리 학교는, 아예 보충수업이라든지가 없었습니다. 정규 수업 마친 뒤에는 그냥 교실 두 칸을 내어놓고 공부할 놈은 하고 가라, 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고3이 돼서도 수업 마친 오후 서너 시쯤부터 아이들끼리 '담배' 내기 축구나 야구 따위를 하곤 했습니다.

당시 <솔>과 <선>이 가장 고급으로 500원 했고, <거북선> <은하수> <한산도> 따위가 330원이었으며 <청자>가 200원, <환희>가 100원을 했습니다. <환희>는 필터가 종이였습니다. 필터가 아예 없는 <새마을>도 있었는데 10원이었는지 30원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제 친구들이 모여서 한 번씩 '육백(600) 화투'를 치곤 했던 학교 앞 가게서는, <솔>을 한 개비에 50원씩 팔아 엄청 이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유통 자체가 불법이던 <말보로>나 <팔말> 같은 양담배도 같은 값으로 내놓았습니다.

시중에서 한 갑씩 파는 가격은 양담배가 비쌌습니다. 우리는 무슨 '애국지사'라도 되는 양 양담배 말고 <솔> 담배를 주로 피웠습니다. "우리 입맛에 맞다." 어쩌구 하면서 말입니다.

한 때 추억거리로 이리 읊조리지만 지금 가장 큰 후회는 담배 피우기를 익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3짜리 아들이 지난해, 나중에 술은 좀 마시더라도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겠노라 스스로 다짐했다고 말하기에 제가 아주 장하다고 크게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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