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처음 만날 때 제게 나이를 물어오는 경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나이가 몇 살이오?” 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학번이 어떻게 됩니까?” 묻습니다.
‘간접화’가 원인입니다. 그대로 드러내면 불편하다 싶을 때, 이를테면 똥 대신 대변, 대변 대신 ‘큰 거’, 개장국 대신 보신탕, 보신탕 대신 사철탕…. 나이를 바로 물으면 다들 좀 민망하다 여기지 않습니까?
‘학번’은 대학의 그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학번을 묻는 배경에는 대학 진학이 일반화된 현실이 있다고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대학 못 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저는 “칠공(70) 학번입니다.” 그럽니다. 상대방은 ‘나이가 도대체 얼마야? 쉰을 훨씬 넘었다는 말이야?’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 재빨리, “국민학교 학번입니다. 대학 못 나온 이도 많으니까 대학 학번은 좀 맞지 않잖아요?” 덧붙입니다.
대부분 어리둥절해합니다. 다들 대학 다닌 사람들이고, 대학 못 다닌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이해를 잘 못합니다. 학번 운운이 학벌을 바탕삼은 차별과 배타라는 사실을요.
아침마다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찰을 받고 이상(異常)임을 알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도 아침 헛구역질을 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라 하지요.
저는 학번으로 상대를 어림짐작하는 치들을 보면 이 ‘헛구역질’이 떠오릅니다. 그들이 계속해 느끼밍밍한 얘기를 할 때는, 저도 모르게 제 몸이 앞장서 구역질을 하기도 합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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