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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전국 놀라게 한 경상대생 고속도 가스차 탈취 시위 ◇태도 달라지기 시작한 경남신문 3만여 명이 참여한 마산 6·10대회를 사회면에 2단 짜리 기사로 보도하면서 '시민 반응 냉담'이라는 제목을 달아 시민의 분노를 샀던 도 15일 시위를 기점으로 보도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16일자 사회면에 가로 제목으로 뽑은 '전국 59개 대 격렬시위-경남·경상·창원대생 시가지 진출'이라는 기사를 통해 전국은 물론 마산과 창원·진주의 시위 소식을 비교적 자세히 전했다. 또 17일자 사회면은 처음으로 시위소식을 7단 사이드 톱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날 보도의 중심은 단연 16일의 진주 시위였다. '경상대생 2천여 명 진주시가지 격렬시위-파출소 등 6곳 기습 불태워-남해고속도 점거 한때 교통마비-시민 2명 최루탄 맞아 부상'이라는 자세한 제목과 함께 고속도로를 점거한 사진.. 더보기
4·19 이후 진주 최대 시위…항쟁 '재점화' 87년 6월 15일 시위 거점, 마산에서 진주로 6·10대회의 경남지역 거점은 마산이었지만, 진주·거창·진해에서도 소규모 집회가 있었다는 것은 앞에서도 썼던 바 있다. 이들 소규모 집회마저 원천봉쇄하려던 일선 공무원들의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었다. 물론 그 공무원들도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비애였다. 요즘 같으면 경찰 외에 행정직 공무원이나 농협 직원이 시위 저지에 나서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땐 그랬다. 87년 당시 거창군농민회(회장 표만수)가 발행한 (87년 7월 15일자) 창간호를 보면 그들이 거창 6·10대회를 막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공무원 6명이 농민 1명 감시 = 이 신문의 기록에 의하면 앞서.. 더보기
87년 6월 10일 경남엔 무슨 일이 있었나(1) 안기부와 시청 직원 염탐하다 발각 1987년 6·10대회의 날이 밝았다. '거사'의 시간은 오후 6시, 장소는 마산시 서성동 3·15의거탑 앞이었다. 대회 주관단체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경남본부(경남국본)이었지만, 각 대학의 학생운동세력들도 자체적으로 대회를 준비해오고 있었다. ◇ 도내 각 대학 사전집회 경남대와 경상대·창원대 총학생회장과 운동지도부는 6월초 경상대 17동 교양학관에서 만나 10일 마산대회에 역량을 집중할 것을 결의해둔 상태였다. 이들은 우선 학교 안에서부터 대회 분위기를 고조시켜 많은 학생들을 동참시키기 위해 각각 사전집회를 열었다. 특히 창원대는 이틀 전인 8일부터 총학생회장과 몇몇 간부들이 '호헌철폐와 군부독재 종식을 위한 삭발식'을 마치고 10일 오전 10시까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더보기
격동의 한국현대사와 함께 민주성지가 된 마산 주제어 : 민주화운동 | 3.15의거 | 4.19혁명 | 6월항쟁 마산이 ‘민주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시대적 사건과 배경 두 갈래로 나뉜 사회운동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서울에서는 여운형의 주도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조선건준)가 결성되었다. 8월 17일 발표된 조직 명단을 보면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안재홍, 총무부장 최근우, 재무부장 이규갑, 조직부장 정백, 선전부장 조동호, 무경부장 권대석 등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남에서도 17일 부산 동래온천장 동운관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도지부’(경남건준·위원장 노백용)가 결성되었고, 같은 날 마산 공락관(이후 시민극장으로 바뀜)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마산부위원회’(마산건준·위원장 명도석) 결성대회가 열렸다. 서울과 .. 더보기
6월항쟁이 서울에서만 진행되었다면? 서울 사람들에게 참으로 묘한 말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이외의 지역은 모두 ‘지방’이라 통칭하는 버릇이다. 부산에 출장을 가면서 ‘지방 출장 간다’ 하고, 창원에 와서 현지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전화가 걸려오면 ‘응, 지금 지방에 와 있어’라고 대답한다. 서울도 수많은 지역 중 하나일 뿐인데, 그들에겐 대한민국이 ‘서울+지방’으로만 보이는 걸까. 아니 서울이 곧 대한민국이고, 그 외에는 그냥 이름 없는 ‘부속 도서’ 쯤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서운하다. 민중의 힘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사건은 모두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시작됐다. 1948년 제주 4·3항쟁부터 1960년 이승만 독재에 맞서 일어선 2·28 대구항쟁이 그랬고,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 마산의거가 전국.. 더보기
항쟁의 계절, 다시 언론을 생각한다 올해 5월도 그냥 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서 3·4·5·6월은 민주항쟁의 계절이다. 3·15의거, 4·3항쟁, 4·19혁명, 5·18민중항쟁, 6월민주항쟁 등이 모두 이 계절에 일어났다. 지난 5월 16일 광주에서 '5·18 진실 왜곡과 언론의 역할'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인사말이 가슴을 저몄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사진 한 장이 신문에 보도되고, 전 세계 언론에 타전되면서 마산에서 시작된 항쟁이 4·19혁명으로 전국에 번질 수 있었다. 만일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시민을 학살하는 사진 다섯 장 정도만이라도 신문에 보도되었더라면, 과연 우리나라의 양심적 시민들이 가만히 있었겠느냐. 그게 광주만의 고립된 투쟁으로 끝났.. 더보기
자기 앞으로는 아무것도 쌓지 않은 사람 박영주(53)씨는 마산·창원 지역 역사학자랍니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해 그이처럼 풍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그이는 사회운동도 오래 했습니다. 지금도 6월항쟁정신계승 경남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또 걷기 바람이 일기 전인 2000년 '걷는 사람들' 모임을 뜻있는 이들과 만들어 카페(http://cafe.daum.net/mswalker)지기 노릇도 하고 있습니다. 박영주씨는 자기 앞으로 이루거나 가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습니다. 운동을 했지만 세력을 이루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소유 집도 없고 보증금이 몇 천만원씩 내고 전세를 얻은 그런 집에 살지도 않는답니다. 마산의 북카페 '시와 자작나무'가 있는 건물 한 켠이 그이가 혼자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 더보기
뭔가 아쉬운 지역 촛불집회, 이유는? 지금 이런 글을 쓰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의식하고 눈치보면서 블로그 글쓰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본대로, 느낀대로 씁니다. 10일 서울에서 6·10 범국민대회가 열린 비슷한 시간대에 전국의 각 시·군에서도 6월항쟁 계승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제가 사는 마산에서도 '6월항쟁 계승 민주주의 회복 마산시민 촛불문화제'가 '6월항쟁계승 마산시민촛불문화제 행사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습니다. 원래 공지된 집회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회사 일을 마치고 8시에 가까워서야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마산 창동 '차없는 거리'는 그야말로 철저히 고립된 지역입니다. 2차선 도로에, 아래로는 남성동파출소(지구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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